<아빠는 떡볶이 밀키트를 왜 산 걸까?>
코로나로 설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기로 결심한 뒤, 남편은 각종 밀키트를 주문했다.
그중 첫 번째는 떡볶이였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인가 중학교쯤인가 실습 시간인가 떡볶이 만드는 방법이 교과서에 나온 적이 있었다.
주는 밥만 먹었던 나로서는 요리를 해 먹는다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물론 계란 후란이 와 밥하기 라면 끓이기는 했었던 것 같다.)
나의 첫 요리 도전은 떡볶이였다.
나의 요리 실력을 들키고 싶지 않아 만들자마자 부엌에서 혼자 만들고 혼자 먹었다.
고추장과 간장과 설탕을 조금 넣었나? 파도 없고 어묵도 없고
고추장 소스가 묻은 가래떡 맛(?)이었다.

지금도 굳이 다른 가족과 나눠먹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일을 두고 엄마는 지금까지도 혼자 먹으려고 부엌에서 먹었다며 나를 놀렸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물이나 채소는 많이 먹이는 편이었지만 매운 것은 굳이 많이 안 먹였던 것 같다.
첫째가 매운 것을 잘 못 먹다 보니 둘째까지 매운 것을 먹을 기회가 없었다.
남편은 떡볶이 밀키트가 아이용이니 같이 먹기에 덜 맵거니 하고 주문했다고 했다.
떡볶이는 재료 사서 하면 되는데 무슨 밀키트까지 구입한 것일까...
(남편은 아이들과 자신만의 비밀 만들기를 좋아한다. 이 밀키트는 딸들을 위한 아빠의 깜짝 선물용이었다.)
어찌 됐던 아이들을 생각하는 아빠의 마음을 생각해서 아이들과 만들어보기로 했다.
준비물 : 밀키트 (떡볶이 떡 + 양배추, 파, 당근, 양념소스)
추가 사리 (모둠 어묵, 메추리알, 양배추, 치즈 떡사리) / 순대 1인분
아이들과 4인 가족이 먹기엔 좀 모지랄 것 같아 급하게 아빠가 집 근처 가게에서 치즈떡볶이 떡을 사 왔다.
어묵도 사 와서 반봉지 정도 먹기 좋게 썰고, 메추리알도 1판 사 와서 삶은 뒤 식혀서 깠다. 마침 냉장고에 있던 양배추도 추가했다. 결론은 당근하고 양념 빼고는 대부분 추가한 것이라는 것.
참고로 양념도 모자라서 추가했다 (고추장 1스푼 +간장 1스푼 + 물엿 1+ 설탕 반 스푼을 섞어서 만듦)

<만드는 방법>
1) 메추리알을 강불에 5분 정도 삶아서 찬물로 식힌 다음 껍질을 깐다.
2) 양배추와 어묵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준비한다.
3) 떡볶이 떡은 물에 살짝 불린다.
4) 물과 양념소스를 먼저 끓인 다음, 떡볶이 떡과 채소, 어묵을 함께 넣는다.
5) 떡이 익을 때까지 끓여준다 (대략 5~6분 정도)
6) 치즈가 있으면 마지막에 뿌려서 맛있게 먹는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음식 재료 만지는 것을 좋아한다.
물에 넣어서 말랑말랑해진 떡을 만져보고 싶어 하는 딸들.
어묵을 써는 눈빛은 한 땀 한 땀 장인(?)의 느낌까지 난다.
메추리알은 반은 까고, 반은 입으로 들어간다.
많은 메추리알을 재료로 넣고 싶다면 엄마가 아빠가 열심히 까면 된다.
아이들이 까는 메추리알은 본인의 입으로 들어간다고 봐야 한다.
밀 키트의 핵심인 떡볶이 양념을 투하!
재료를 많이 첨가했더니 맛이 생각보다 싱거워서 추가로 양념을 더 만들어서 넣었다.
(고추장, 간장, 물엿은 1:1:1 고춧가루 아주 조금, 설탕은 취향대로 첨가)
끓는 물에 넣는 건 뜨거울 수 있으므로 옆에서 함께 부모가 도와주는 것이 좋다.
보통은 인덕션에서 작업을 하는데, 색다른 기분을 내기 위해 휴대용 인덕션을 꺼내왔다.
준비된 재료를 수북하게 담아서 끓여준다.
아이들은 떡볶이가 익어가는 동안 남은 재료를 먹으며 기다린다.
떡볶이의 비주얼이 딱히 훌륭한 것도,
맛이 엄청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아이들과 함께 만들고 먹는다는 데 의미를 두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그런데 이렇게 재료를 다 추가할 거면 밀키트는 왜 산 거예요?"
떡볶이 떡, 어묵, 양배추, 메추리알...
심지어 떡볶이 소스도 추가했다.

신랑은 부끄러운 듯 수줍게 웃어 보였다.
남편이 바란 것은 '아이들과 만들기'였고
나는 밀키트가 있어서 떡볶이 만들기를 시작한 거다.
어찌 됐든!
떡볶이! / 만들기! / 성공적!?
다음엔 블로그 뒤져서 소스만 만들고, 재료는 사서 따로 만들어야겠다.
밀키트 + 추가 재료 + 사온 순대까지 해서 4인 가족이 분식으로 한 끼를 해결했다.
집에서 만드는 분식!
사 먹는 거보다 비싸다. 거기에 우리의 노동력과 시간도 추가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무척 즐거워하고,
예의상 본인들이 만들어서 열심히 먹는 척한다.
치즈 떡볶이 떡은 신의 한 수였다.
그냥 밀 키트 떡만 있었으면 아쉬울 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