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코로나 19 달라진 명절-2

21년 설 명절, 랜선 세배에 도전~

by 연두씨앗

"여보, 올 명절에는 우리 여행 갈까?"

여행을 좋아하던 남편은 몇 달에 한 번씩 여행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코로나 이후 여행이 줄면서 그 얘기는 많이 줄었지만

그럴 때마다 은근 나는 '명절에 시댁에 안 가겠다고? 어련하실까...'

말로 안 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막상 그 상황이 오면 안 가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명절에 이동하지 마세요.>


정부의 방침과 연이은 매스컴의 광고들...

자주 가는 맘 카페에도 "명절에 내려가시나요?"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여보, 우리는 이번에 내려갈 거예요?"

최근 시댁에 이사와 리모델링 건으로 자주 시골집을 방문했던 터라 궁금했었다.

'다녀온 지는 얼마 되지 않는데... 명절인데 안 내려가기도 그렇고...'

곧 시어머니 생신도 돌아오는데 그때 봐도 괜찮을 것 같은데...

'명절인데 안 가도 되나?' 이건 큰 걱정이었다.


2주 전에 봤는데 명절이니깐 또 가고, 명절 지나고 2주 후에 볼일 보러 또 가고...


"여보, 나라에서도 거리두기 강화하는데... 우리 명절 끝나고 내려가는 건 어때요?"

언젠가는 거쳐야 할 관문...

괜히 화를 낼까 조마조마하며 남편에게 물었다.

딱히 시댁에 가기 싫어서는 아니었다.

코로나 때문에 분위기가 너무 강압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어차피 갈 사람들은 다 가는데..."

"공무원들이 명절에 나와서 단속할 거 같아?"

처음에 남편은 무척 회의적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처음엔 안 갈 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해서 속으로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었으나,

그런 얘기를 듣고 나니 안 가기도 뭐했다.

나는 언제든 갈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내려가기 전에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안부 인사를 하며 내려가는 걸 여쭤보는데...

"요즘 여기 분위도 심상치 않다. 모이지 말라고, 파파라치도 막 돌아다니고 한다더라.

너네도 오기 힘들면 무리하지 마라."


어머니의 근심스러운 목소리에

'어? 어머니가 오라고 하신 건 아니구나.'

깨달았다. 남편이 가고 싶은 거였다.


어찌 됐든 출발 전까지...

간다, 안 간다, 간다, 가지 말까, 그냥 가자, 그냥 가지 말까? 짐 싸, 에이 가지 말자.

사실 남편이 어머니께 안 간다고 전화를 드리는 것을 보고도 살짝 믿을 수 없었다.

'저러다가 갑자기 밤중에 짐 싸라는 건 아닐까?'


그런데....

정말 설날 오후에 나는 집에서 브런치를 작성 중이다.

내가 결혼 10년 만에 집에서 설 명절을 보내게 된 것이다.

물론 코로나라는 국가적 위기 사태라는 명분은 있지만

이것은 분명 의미가 있는 일이다.


우리 남편의 장점은

'듣는다, 생각한다, 고친다. 행동한다'

물론 한 번에 되지는 않는다.

무엇이 남편의 마음을 바꾼 건 지 모르지만 나는 새로운 경험이 하나 추가가 됐다.


나는 남편에게 말한다.

"내 일상이 결국 여보의 딸들의 인생이야, 엄마 인생 고대로 닮는다고...

우리 엄마가 나 어릴 때 그 말했는데 살아보니 똑같진 않은데... 비슷해.

내가 편하게 사는 만큼. 여보 딸들도 편하게 산다니까~"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괘변처럼 들리지만, 결국 딸은 엄마를 보고 닮는 건 맞으니깐

나는 적어도 우리 딸들은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엄마의 삶보다 내 삶이 훨씬 수월하듯이

나의 삶보다 나의 아이들의 삶이 더 수월하길 바란다.


어쩌면 적어도 우리 딸들은

명절 스트레스를 덜 받는 날이 올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게 하루 이틀에 바뀌지 않겠지만

우리가 나이 들면 또 윗세대가 되면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외며느리로 20년 가까이 지내온 엄마는

보기 드는 '신세대 시어머니'역할을 쿨하게 잘 해내고 계신다.

"난 나중에 우리 아들 장가가도 안 그럴 거다."

"어디 보자. 그러나 안 그러나. 시어머니 되면 더 할 걸.."


나와 언니의 생각은 보기 좋게 비켜나갔다.

올케와 남동생에게 카카오 영상통화로 새해인사가 왔다.

나도 영상통화로 시 어르신과 친정에 새해 인사를 드렸다.

랜선 세배....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우리 집은 올해 실현했다.



울 아빠의 랜선 세뱃돈

의미가 깊다.

신랑에게 고맙다.

앞으로 나는 시댁에 더 잘할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일기] 코로나 19 달라진 명절-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