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 Cafe,비 오는날

2.비 오는날에는 카페를 간다.

by 연두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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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나는 카페에 간다. 날씨만큼이나 사람들의 마음도 굳어지는 날이면 그녀를 만나러 간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녀가 나를 향해 돌아본다. 긴 머리를 하나로 올려 묶어 한층 발랄해 보인다. 그녀가 웃으면서 인사를 건넨다.

“창가 자리 있나요?”

내 물음에 그녀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비 오는 정원’ 입구 옆의 자리로 나를 안내한다. 그녀를 따라 비어있는 창가로 가 앉으면, 그녀는 들고 있던 메뉴판을 탁자 위에 올려두고 뒤 돌아간다. 창 밖에는 어김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녀가 놓고 간 메뉴판을 열어본다. 그녀는 오늘도 내가 에스프레소를 주문할 것이란 걸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가져다준 메뉴판을 차례대로 훑어본다. 그녀의 발소리가 들린다. 예의상 보고 있던 메뉴판을 덮고,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여전히 밝은 얼굴이다. 이곳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왠지 이곳에 <카페, 비 오는 날>이라는 이름처럼 아련한 추억 하나쯤을 안고 사는 눈이 깊은 여자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그녀가 이곳 <비 오는 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은 눅눅하고 어두운 카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밝게 해주는 그녀의 환한 미소가 오히려 이 카페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하시겠어요?"

"에스프레소요."

그녀는 생긋 미소를 짓고는 메뉴판을 들고 카운터 쪽으로 걸어간다. 이곳을 알게 된지는 꽤 됐지만 이제껏 에스프레소 이외의 다른 커피나 음료를 마셔본 일은 없다. <cafe, 비 오는 날>의 이름에선 왠지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가 떠오른다. 문득 창가로 시선을 돌린다. 아담하게 꾸며진 정원에 비가 내리고 있다. 창가의 빗소리가 가슴 한구석을 시원스레 훑고 지나간다. 오늘은 비 오는 날이라서 아마 인공 정원의 지붕을 걷었으리라. 그렇다면 지금 내리고 있는 것은 인공의 비가 아닌 진짜 비일 것이다. 이 카페의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이 ‘비 오는 정원’이란 이름을 가진 인공정원이다. 인위적으로 꾸며놓은 정원에서 무슨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냐고 내게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곳에 직접 와 보기를 권하고 싶다.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아본다. 통통거리는 빗소리와 어우러진 음악이 카페 분위기를 더욱 매력적이게 만든다.

"아, 우중충해. 날씨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왠지 울적해지려고 그러네."

나는 대화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뒤쪽에 커플 한 쌍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 마주 보고만 있어도 좋아 보이는 저 커플에게는 이 카페가 제 역할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 카페를 둘러본다. 손님 중에 웃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뒤에 앉은 커플밖에 없었다. 다들 혼자, 혹은 두 사람이 각자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곳은 혼자 오기에 좋은 곳이다. 비 오는 날, 혹은 빗소리가 듣고 싶은 날 누구나 가볍게 와서 쉬어갈 수 있다. 카페의 주인이 어느 정도의 재력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덕분에 나는 언제든지 비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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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나왔습니다."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 아까와는 달리 그녀의 머리카락이 젖어있었다.

"비 맞았어요?"

"잠깐, 정원에 좀 나갔다 왔어요."

“비에도 면역력이 생기나요?”

그녀가 어리둥절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재빨리 엉뚱한 질문을 무마시키기 위한 말을 덧붙였다.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날마다 비를 봐도 아무렇지도 않느냐고요.”

정리되지 않는 말들이 제멋대로 입에서 튀어나와 버렸다. 그녀는 잠시 고민가 싶더니 이내 대답한다.

“뭐든 오래되면 면역력이 생기겠죠. 그게 뭔지 저는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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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여느 때처럼 활짝 한번 웃어 보이고는 카운터로 가버렸다. 다시 혼자 남겨졌다. 창가에 커피 잔을 가져다 대본다. 커피의 뜨거운 김이 창가에 서린다. 나는 다시 창가에 입김을 불어 김이 서리게 하고, 손가락으로 끄적거린다. ‘정. 연. 수.’ 그리고는 무심결에 쓴 이름을 재빨리 지워버린다. 핸드폰을 열어 날짜를 확인해 본다. 6월 12일 오후 4시 03분이라는 문구가 뜬다. 가방에서 오늘 아침 우편함에서 꺼내온 흰 봉투를 다시 열어본다. 그 안에는 초대의 글이 적혀 있다.

‘항상 베풀어주신 사랑과 관심에 감사드리며, 한 쌍의 젊음이 사랑과 믿음으로 인생의 반려자가 되려고 합니다. 이제 시작하는 새 인생의 첫걸음에 가까이하시어 축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영서, 정윤주 올림.’

낯선 여자의 이름에서 왜 그녀를 떠올렸던 걸까. 그녀가 좋아했던 빗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이 에스프레소 때문에? 괜히 웃음이 나왔다. 언제부터 내가 비와 에스프레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던 걸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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