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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씨앗 Jan 07. 2022

[주제글] 지금 환승하시겠습니까?

주제 : 지하철


나는 약속 장소로 빨리 가고 싶었다.

집에서 일찍 나온 날보다 집에서 늦게 나온 , 일이  이는 법이다. 아마 그날도 그런 날이었던  같다.


친구와 종로 3가에서 약속이 있었다. 나는 종로 3가로 가기 위해 지하철 노선도를 검색했고, 가장 빠른 길을 찾아냈다.

종로 3가로 갈 수 있는 많은 지하철 노선 중 하나인 1호선만 쭉 타고 가도 약속 장소인 종로 3가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그날은 왠지 다른 생각이 들었다. 문득 많은 역을 지나기도 하고 다른 열차보다는 느린 1호선 대신 다른 열차를 갈아타고 가면 대충 약속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는 핸드폰 어플을 이용하면 어떤 경로가 가장 빠른 지 어느 역 몇 번 출구에서 갈아타면 되는지 정확하게 검색되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시간을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기에 지하철 노선표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빨리 가기 위한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한 나는 환승역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빠르게 걸었다. 환승이라는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나의 몸은 조금 더 피곤하겠지만, 약속 장소에 조금 더 빨리 갈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들지 않았다.


지하철 지하도 풍경


나는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하며  계속 이어지는 긴 지하도를 따라 빠르게 걸었다.

환승역을 통하면 약속시간을 10분 정도는 앞당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운이 좋았을까?

승강장에 막 도착했을 때 열차가 도착했고, 나는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을 따라 서둘러 열차에 올라탔다.

빨리 걸은 탓인 지 숨이 가빴다. 숨을 고르며 휴대폰으로 이동 시간을 체크했다. 그 사이 열차는 터널을 지나 다음 역에 도착했다.

"이번에 내리실 역은........"

도착역을 알리는 안내방송을 듣고서야 내가 반대 방향 열차에 타버린 것을 깨달았다.

'아뿔싸, 망했다.'

너무 급한 나머지 어느 방향으로 가는 열차인 지 제대로 확인조차 못한 것이었다.

나는 다음 역에 내려 반대편 탑승 구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빨리 걸었다. 오랜만에 신은 구두 때문인지 허벅지와 종아리가 당겼다. 걸음이 빨라지자 숨이 더 가빠졌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이구나.'

나는 괜스레 죄 없는 머리를 두세 번 쥐어박았다.

죄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환승을 선택한 것도, 열차 확인을 안 한 것도, 모두 머리의 잘못이었다.


반대편 탑승 구역에 도착해서 열차 방향을 확인한 후 이번엔 제대로 올라탔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열차는 다음 정거장에서 멈춰 섰다.

앞에 달리던 열차의 출발이 지연되는 바람에 잠시 정차하겠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나는 기다리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엉망인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해야만 했다.

"근데 왜 그걸 타고 있어? 너네 집에서는 그냥 쭉 오면 되잖아..."

"조금 빨리 가려고 갈아탔는데... 갈아타는 일이 만만치가 않네."

"거기서 왜 갈아타. 그냥 쭉 앉아서 오면 되는데... 거기서 걸어서 이동하는 시간이 더 걸리겠다."

친구의 말이 맞았다. 걸어서 이동하는 시간이 더 걸렸고 10분 빨리 가려던 나는 10분 더 지각하고 말았다.


서울을 지나는 지하철들은 각양각색이었다. 서울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연결된 지하철은 같은 호선에도 어느 역은 지상에 어느 역은 지하에 위치하고 있었다. 또한 반대편으로 갈아탈 때도 어느 역은 열차에서 내려 바로 반대편 열차로 올라타는 곳도 있고, 어느 역은  뛰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겨우 환승열차를 제시간에 탈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조금 더 빨리 가기 위해 '환승'이라는 방법을 선택했지만 그날 나의 선택은 실패했다.

처음에 지하철을 반대로 타지 않았더라면, 지연된 열차가 아니라 그 앞에 열차를 탔더라면 나는 제시간에 도착했고 내가 선택한 환승에 만족했을까?

 정답은 알 수 없다. 그날의 지하철 상황은 내가 예측할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목적지가 같다고 하여 모든 사람들이 같은 지하철을 타는 것은 아니다.

강남으로 가기 위해 누군가는 2호선으로 누군가는 7호선을 탈 것이며 종로로 가기 위해 누군가는 1호선을 다른 누군가는 5호선으로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누구의 방법이 맞고 누구의 방법이 틀린 것은 아니다.

 빨리 가고 싶어 환승을 선택했다고 어리석은 것은 아니며, 갈아타기 귀찮아서 오래 걸리더라도 한 열차만 쭉 탄 것도 잘 못된 것은 아니다.

 나는 갈아타기 귀찮아한 열차를 오래 타고 온 친구보다 더 오래 걸려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천천히 가더라도 그 방향만 제대로 간다면 언젠가는 도착지점에 도착하게 된다.

환승이 아무리 빠른 방법이라지만 반대로 가면 영영 되돌리기가 어려워질 때도 있다.


우리의 인생에도 목적지가 있고 '환승'이라는 빠른 길이 있다면 어떨까?

 나는 지하철에서 헤매듯이 여전히 인생의 갈림길에서도 헤매고 있다.

조금 더 빨리 갈 것인가? 조금 느리지만 편하게 갈 것인가?

정답은 없다. 그때그때마다 상황이 다를 테니까...


목적지만 확실하다면 돌고돌아 언젠가 갈 수 있지 않을까?


#목적지만 확실하다면 조금 늦어도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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