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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사생활] 구피와 반려 화분

구피는 죽으면 어디로 가요?

by 연두씨앗 김세정




주말 분갈이에 나선 꼬마 식물관리사들!


주말을 맞아 남편과 아이들이 식물 분갈이를 한다며 밖으로 나갔다.

설거지를 끝내고 급히 따라간 나를 보자마자 남편은 급히 화분 하나를 건네며

"빨리 집으로 올라가"라며 소리쳤다.

"갑자기 왜?"

"엄마, 급해요. 빨리 올라가요."

아이들도 덩달아 서두르는 바람에 화분 하나만 달랑 들고 집으로 올라왔다.

이윽고 아이들이 두 번째 화분을 들고 집으로 올라왔다.


"엄마, 사랑이가 죽었어."

둘째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4월말에 심은 사랑이와 5월 초에 심은 콩이




사랑이는 둘째가 키우던 강낭콩 화분의 이름이었다. 아까까지도 멀쩡하게 잘 크고 있던 사랑이가 왜 죽었단 말인가. 아이의 말을 들어보니 사건은 간단했다. 남편과 아이들이 화단에서 화분 정리를 하는데 갑자기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단다. 그래서 강낭콩 화분이 넘어졌고, 연약한 줄기가 댕강 끊어진 것이었다.



왼 : 콩이 오른: 사랑이

강낭콩 2알 중 하나였던 강낭콩 줄기가 사라지고, 외줄기 하나만 덩그러니 돌아왔다. 분갈이를 마치고 돌아온 남편에게 한소리 했다.

"애들 화분은 놔두지. 왜 들고 가서 멀쩡한 강낭콩을 죽여요?"

"내가 일부로 그랬나? 바람이 불 줄 몰랐지."


식물 키우는 걸 좋아하는 남편과 식물 보는 것만 좋아하는 나는 신혼 때부터 쭉 화분을 키워왔다. 한 때는 사람이 사는 공간을 넘어서서 화분이 내 공간을 위협해서 싫은 티도 내지만, 남편의 화분 사랑은 진심이었다. 그런 남편이 강낭콩을 일부로 죽였을 리는 없었다.

죽는 화분보다 사는 화분이 많고, 기존 화분은 죽지 않으니... 감당불가!

"엄마 우리가 사랑이를 화단에 잘 심어주고 왔어요. 잘하면 화단에서 다시 살아날 수도 있대요"

아이는 뿌리가 잘린 강낭콩을 화단에 꽂아두고 온 모양이었다.

"그래, 정말 사랑이가 살아났으면 좋겠네."

아이들이 화단에 심어준 사랑이 2!

"엄마, 사랑이는 죽으면 어디로 가요?"

"글쎄..."

"사랑이는 죽으면 땅으로 가요? 아니면 하늘나라로 가요?"

어려운 질문이었다.

"엄마도 잘 모르겠는데..."

둘째의 질문이 끝나자, 첫째가 쪼르르 달려와서 연이어 질문을 해댄다.



"엄마, 그럼 우리 집 구피도 죽었잖아요. 그 죽은 구피는 하늘나라로 가요? 아니면 용궁으로 가요? 구피는 물고기니깐 용궁으로 가는 거 아니에요?"

"용궁.....? 물고기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엄마는 아직 생각 안 해봐서... 잘 모르겠네."


대충 둘러대며 알려줄까 하다가 말았다. 사실 나도 궁금하다. 구피는 죽으면 용궁으로 갈까? 하늘로 갈까? 아니면 땅으로 갈까?


어릴 적 강아지와 햄스터와 병아리, 애완새 등을 키운 적이 있었다. 몇 달을 함께한 동물은 있었지만 아주 오랜 시간은 함께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동물과의 이별이 힘든 나는 '살아있는 생물'은 키우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왜 우리 집에 오면 모두 죽을까? 내가 동물과 맞지 않을까? 그렇다면 동물을 키우지 않는 것이 동물에게는 더 좋은 것이 아닐까?'

그 전에는 동물을 키울 상황이 안 되었고, 아이들을 키우기에도 버거워서 포기했었고, 동물을 좋아하지만 키우는 것은 늘 반대를 해왔다. 어쩔 수 없이 달팽이도 잠깐, 올챙이도 잠깐 키워봤지만 살아있는 생물을 키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어릴 적 화단에 땅을 파고 혹시라도 추울까 봐 부드러운 크리넥스 휴지를 몇 겹을 깔고 사랑했던 애완동물을 묻어준 적이 있었다.

혹시라도 누가 걸어가다 밝을까 봐, 돌로 둥글게 표시를 하고 나뭇가지를 세워놓기도 했었다.


아이들에게는 없는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이다. 지금은 키우던 생물이 죽으면 엄마나 아빠인 우리가 직접 처리한다.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아이의 말을 듣고, 요즘 내가 참 생물의 죽음에 무뎌졌구나 싶었다. 잠시 허전해졌던 집안에 식물들이 다시 자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식물을 이고 산다. 가끔은 식물 대신 다른 물건으로 채우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살아있는 식물'에 대한 남편의 진심을 알기에, 또 공감하기에 꾹꾹 눌러 담고 있다.


올 봄에 우리집에 들인 1인 1화분들 (미스김라일락, 올리브, 철쭉, 로벨리아)


지난 달, 근처 꽃가게에 들러 반려 화분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화분을 사 왔지만, 아이들은 도통 관리를 하지않는다. 결국 관리는 항상 엄마 아빠의 몫이다. 그래서 반려동물은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어릴 때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도 '절대 반대'를 외치는 엄마가 야속할 것이다. 귀여운 강아지를 귀여운 고양이를 키울 수 없게 하는 엄마가 밉겠지만, 어쩔 수 없다.

사실 아이 키우기도 나는 버겁다. 그런 나에게 화분이나 물고기는 그나마 감당이 가능하지만, 그 보다 더 자주 관리해줘야 하는 애완동물은 좀 버거운 게 사실이다.


우리 집 어항에는 두 마리의 구피가 산다.

첫째 4살 때, 친척집에서 어항과 함께 4마리의 수놈을 얻어왔고, 5마리의 구피를 친구네서 분양받아서 키웠다. 한 때는 셀 수 없이 늘어나서 30마리가 넘었지만, 한 두 마리씩 사라지고, 현재는 4마리에서 최근 두 마리가 죽었다. 몇 년생인 지 알 수 없는 구피.... 하지만 구피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다고 하니 그 두 마리의 생명도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015년에 받아왔던 구피들은 이미 죽었을 것이고...)

생존중인 구피 2마리 (2015~ ing)

어느 세 날마다 구피 밥을 챙겨주다가 정이 들었나 보다. 두 마리의 구피 중 한 마리가 안 보이면 혹시 죽은 건 아닐까 어항을 살펴보게 된다. 밥 먹는 시기에 움직이지 않으면 혹시라도 못 먹을까 봐 바로 근처까지 가서 기어이 밥 먹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여보, 우리 저 구피가 죽으면, 새로 키울 거예요? 아니면 어항 정리할 거예요?"

"글쎄... 잘 모르겠네."


남편은 물고기도 좋아한다. 키우는 것도 잡는 것도, 보는 것도 좋아한다. 나는 물고기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키우는 것도, 잡는 것도 싫어하고 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몇 년간 '저 어항을 치워버릴 거야'하고 외쳤는데... 드디어 어항을 치울 수 있는 기회가 오고 있는데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하지만 이제 그만 키우고 싶다.

생명을 키우는 것은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람도 동물도 물고기도 식물도 모두 모두 소중하다. 그렇기에 쉽게 키우자고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가지치기 당한 홍콩야자잎!

식물 키우기 지긋지긋하다고 외치면서 봄이 되면 우리는 꽃가게에 간다. 그리고 1인 1 화분을 산다. 화분이 지긋지긋하고 너무 많아서 싫지만, 그래도 나도 식물을 좋아하고, 사고 싶은 화분은 있기에 내 것도 같이 산다. 분갈이를 하면서 잘라서 버린 가지들이 예쁘고 귀여워서 (안 해도 되는) 물꽂이를 해놨다. 나중에 뿌리가 나면 남편은 또 키우겠다며 화분에 심어댈 것이다. 그런 것들이 조금 겁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귀여운 식물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행복이다.

아이들도 엄마와 아빠처럼 식물도, 동물도, 자연도 사랑하는 아이들도 자라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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