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운 물건은 어떻게 하지?
'오지랖이 넓다'는 칭찬일까? 욕일까?
나는 오지라퍼이다. (오지랖+er = 오지랖 떠는 사람)
남의 일에 관심이 많고, 도와주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작은 조언이나 도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이익이 될 때, 혹은 그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들을 때 행복함과 보람을 느낀다. 그런 나를 누군가는 '호인'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오지라퍼'라고 부른다.
살다 보면 오지랖을 떠는 경우가 참 많은데, 오늘도 딱 그런 날이다.
나는 소리를 잘 듣는다. (안 물어본 것도 대답해줌)
나는 시력도 좋은 편이다. (남이 못 보는 거 대신 보고 알려줌)
나는 잡다한 지식이 많은 편이다. (아는 것은 모르는 사람에게도 알려줌)
난 시간에 많이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다. (약속 없을 때는 스스로 시간 조율 가능)
나의 몇 가지 조건과 '오지랖'이 만났다.
물론 내가 행한 행동들이 나쁜 일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결과는 좋았지만 왠지 모를 마음의 무게가 무겁다는 것이다.
나는 '선의'로 '호의'로 해준 일이 그 사람들에게는 '귀찮은 참견'이 아닐까 늘 고민한다.
어린 시절, 나는 주운 물건은 항상 주인을 찾아주곤 했다. 주인의 흔적을 다 뒤지고 작은 단서라도 찾으면 물건의 주인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냈다. 실내화 한 짝을 주워도, 가방 하나를 주워도 대부분 주인을 찾아주거나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보관함이나 관리실 등에 물건을 맡겨 주인이 꼭 찾아갈 수 있도록 했다. 당시엔 내가 '탐정'이 된 듯 찾아낼 때마다 쾌감을 느꼈다. (탐정, 추리물을 좋아했다.)
'주운 물건을 꼭 돌려줘야 할까?' 물론 잠깐 유혹에 흔들린 경우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 지갑을 주워 경찰서에 갖다 준 일도 있었고, 전자사전, 핸드폰, 도서관에서 흘린 지갑을 사서에게 전달하기도 했었다.
특히 지갑의 경우 신분증도 없었고, 현금이 20만 원(당시엔 꽤 큰돈이었다.) 가까이 들어있었다. 주인을 돌려줄 방법은 없고, 누군가에게 대신 찾아달라고 준다고 해도 당사자가 그냥 꿀꺽해버릴 수도 있었다.
내가 직접 주인에게 돌려주고 싶었지만, 그 지갑에 처음부터 20만 원이 있었는지, 도중에 누가 카드는 버린 건 아닌 지 그런 의심도 있었다. 하지만 지갑은 꼭 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일하고 있는 담당 사서에게 그 지갑을 전달했다. 내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나를 '바보'라고 놀렸다. 물론 그 지갑이 주인에게 갔는지는 그 뒤로도 알 수 없었다. 친구들은 중간에 누가 돈만 가로채고 지갑 주운 걸로 신고하면 나만 범법자가 되는 거라고 겁을 줬다. 슬슬 주운 물건 자체를 만진 거 자체가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다행히 누가 나를 신고하거나 나에게 따로 연락이 오진 않았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는 돈이 있는 물건은 함부로 만지지 말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오지랖은 그치지 않았다. 그 뒤에도 나는 지갑, 고가의 명품 가방, 핸드폰, 전자사전, 모자, 킥보드 등을 무수히 주웠다. 나는 습관처럼 그 물건들을 주워, 지하철 분실센터, 학교 교무실, 아파트 경비실, 고객센터, 관리소, 경찰서 등에 갖다 주었다.
하지만 주운 물건을 갖다 주고도 추후에 '내 물건을 주웠으니 보따리 내놔라!' 하는 사람이 나타날까 늘 두려움에 떨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면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는 속담이 제일 무섭다.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보따리 내놓으라고 할까 봐 못 구해준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혹시 오해할까 봐...]
초등학교 4~5학년 때의 일이었다. 경찰서에 주운 지갑을 가져다준 적이 있었다. 지갑은 텅 비어있었다. 하지만 지갑엔 신분증과 여러 다른 자료들은 있었다. 누가 봐도 소매치기나 도둑맞은 지갑이었다. 하지만 지갑의 주인은 지갑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내가 경찰서에 가지고 가면 내가 범인으로 의심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고민했다.
'내가 훔쳤다고 의심받으면 어쩌지?'
'훔친 게 아니라고 해도 지갑에 돈이 들어있었다고 하면?'
'내가 돈을 훔친 거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난생처음 경찰서 앞에 혼자 갔다. 경찰서 앞에서 10여 분을 망설였다. 그 전엔 만나면 반가운 경찰 아저씨였는데... 내가 '도둑'으로 몰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다행히 경찰 아저씨는 초등학생인 나의 말을 들어주었다. 나는 어디 어디에서 주웠으며, 지갑에 물건엔 손 데지 않았다고 얘기하고 경찰서에서 도망 나오듯이 빠져나오려고 했다. 그때 경찰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혹시 모르니 전화번호를 적어달라고 했다. 초등학생인 나에게 개인 연락처는 만무했으니 집 전화번호를 적어놓고 나왔다. 그날 밤 나는 경찰서에서 집으로 전화가 올까 봐 밤새 한 숨을 못 잤다. 그리고 날이 밝은 다음 날 다시는 물건을 줍지 말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다짐만 하고 잘 지키지 않는 나의 성격상 그 버릇은 아직도 고치지 못했다.
예전엔 놀이터 벤치에 놓고 간 아이 가방을 뒤져서 아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돌려줬다.(가방에 핸드폰이 있는데 최신 목록에 보통 엄마가 있었다.) 또 다른 어느 날은 놀이터 나무에 걸린 학교 가방을 보고 가방 안을 보니 아이 공책에 학년 반 이름이 있어서 해당 초등학교를 찾아가 그 반에 돌려줬다. 다행히 비싸고 귀중한 물건이 없었고 또는 좁은 동네에 오며 가며 만나는 지인인 경우도 많아서 일은 항상 잘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돌려주고도 항상 뒤에 혹시 모를 '보따리'타령이 두려웠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나는 잃어버린 물건이 주인에게 꼭 돌아갔으면 좋겠다. 물건을 잃어버릴 때마다 초조함과 불안함 때문에 괴로웠던 적이 많았다. 나는 남들도 나와 비슷한 심정으로 물건을 애타게 찾을 거라 생각하는 것 같다.
'남은 내가 아닌데... 그래도 나쁜 일은 아니잖아...'
'물건 찾으면 좋은 거 아닌가? 그런데, 호의로 했던 일이 안 좋게 돌아오면 어쩌지?'
늘 고민한다.
집 앞 놀이터에는 아이들의 천국이다.
시간별로 노는 아이들이 다르다. 먼저 오후 2시가 넘으면 유치원 아이들이 하원을 하고 놀이터에서 논다.
그러면 차례대로 초등 아이들이 하원을 하면서 놀이터에서 잠시 놀다 간다. 그리고 오후 4~5시가 넘으면 어린이집이 끝난 유아들이 가끔 놀이터로 온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중, 고등학교 학생들이 학원 끝나고 집에 가기 전에 잠깐 와서 놀 다간다.
아이들이 놀다간 자리를 살펴보면 뭘 자꾸 두고 간다. 핸드폰, 가방, 모자, 잠바, 킥보드 종류가 참 다양하다. 그중에 이름이 있는 것은 그래도 주인을 찾아주는데, 이름조차 없는 물건은 답답하다.
'이 잠바 주인의 엄마는 이 잠바를 무척 찾고 있을 텐데...'
나는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편이다. 잘 두고 다니고, 잘 놓고 다니고, 잘 잃어버린다. 어릴 때 그래서 고생은 했지만, 남보다 물건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기에 대부분의 잃어버린 물건은 다시 다 되찾았다.
나를 닮은 아이가 간혹 나처럼 물건을 잃어버리고 올 때마다 나는 멘붕(멘털붕괴) 상태가 된다.
어릴 때 그랬듯이 '탐정'이 된 듯, 아이와 함께 나는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다닌다. 아이가 다녔던 곳을 되짚으면서 물건을 찾아다닌다. 다행히 빨리 발견하면 찾기도 하고, 간혹 못 찾기도 한다. 다시 사면되는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잃어버린 물건에 집착이 많은 편이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잃어버린 물건을 보면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의 엄마가 걱정되어 사진을 찍어 아파트 커뮤니티나 맘 카페에 사진을 올린다. 운 좋게 주인을 찾아가는 경우도 있고, 그냥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아침 등굣길에 놀이터를 지나다 보면 가끔 정체모를 물건들이 걸려있다.
'잃어버린 사람 찾아가시오!'
마치 주인을 찾듯이 가장 잘 보이는 장소에 물건이 매달려 있다. 아마 물건을 주운 사람도 주인이 찾아가길 바라는 마음에 물건을 걸어놨을 것이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쯤의 일이었다. 금요일에 놀이터에서 놀고 일요일에 가방 정리를 하다가 물건을 잃어버린 것을 알고 밤늦게 놀이터에 가서 찾아온 적이 있었다. 매번 왜 그리 놀이터에 가방을 두고 가나 했는데, 마침 그 두고 간 사람이 내가 된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았고, 집에 급하게 가다 보니 깜빡했다. 그런데 다른 일상이 바빠서 물건을 잃어버린 줄도 몰랐다.'
그제야 물건을 잃어버리고 놀이터에서 계속 기다리는 정체모를 물건들의 주인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그럴 수도 있겠네.'
천주머니 가방이었던 아이의 가방은 밤새 비인지 이슬에 쫄딱 젖었다가 마른(?) 흔적이 있었다. 가방은 2일 동안이나 주인을 기다리며 벤치에 있었다. 나는 별 필요 없는 가방이었지만 아무도 가져가 주지 않은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다.(가방엔 피아노 악보랑 연습장이 들어 있었다.)
등교 길에 놀이터에 학교 가방이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누가 놓고 잠시 집에 올라간 걸까? 아니면 이전에 잃어버린 가방이 아직도 주인을 못 찾은 것일까?
마음이 불편하다. 저 아이는 학교에 있을 텐데... 왜 가방은 놀이터에 있을까?
불편한 마음에 나는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 가방을 뒤진다. 아이들의 가방엔 보통 아이들의 학년 반 이름이 적혀 있다. 그리고 주인을 찾으면 다시 고민한다.
'관리 사무소에 맡겨서 아이 엄마가 찾아가게 해야 하는 걸까?'
'저 아이의 엄마는 가방을 잃어버린 것은 알고 있을까?'
'아침에 가방 잃어버려서 혼났으려나?'
'잃어버린 가방 때문에 엄청 속상해하며 학교에 갔겠지?'
초등학교 2학년 남학생의 가방이었다. 내 아이보다 한 살 더 많은 얼굴도 모르는 아이의 아침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집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가방 주인의 초등학교로 간다. 해당 학교 교실로 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의 책가방을 아이의 친구들을 통해 전달한다.
가방을 돌려줄 때 당사자는 만나지 못했다.
'아직 학교에 안 온 건가?' '왔는데 잠시 다른 데로 간 건가?'
굳이 물어보지 않아야 할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닌다.
아이의 친구들과 선생님께 가방을 전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괜히 가방을 학교에 갔다 줬나?'
'선생님에게 혼나려나? 집에 갖다 주는 게 나았을까?'
'조용히 두면 알아서 가져갈 걸 내가 일을 크게 만든 건 아닐까?'
온갖 잡다한 생각에 그날 하루의 발목을 잡는다.
물론 다행히 주운 물건에 대한 아직까지 단 한 번의 '추궁'은 없었다.
하지만 늘 주운 물건을 돌려주고는 불안한 마음은 매한가지였다.
왜 불편하면서도 그 물건을 주인에게 돌려주려는 걸까?
그건 내 마음이었다. 내 마음의 오지랖이 그렇게 만들었다.
어릴 적 물건을 잃어버릴 때마다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던 어린 시절의 내가 있었다.
그래서 잃어버린 물건을 보면 나는 물건을 줍는다.
물건이 하나씩 주인에게 돌아갈 때마다
나는 내 물건이 나에게 돌아왔다는 착각을 하는 것 같다.
잃어버린 물건이 다시 돌아오는 건 참 기쁜 일이다.
오늘은 초등학생인 아이들의 개학 날이었다.
4학년인 첫째 아이를 먼저 보내고, 1학년인 둘째와 함께 학교로 가는 길에 또 낯선 가방을 발견했다.
'이 시간에 놀이터에 가방이 있으면 안 되는데....'
"누가 가방을 놓고 갔네.. 잃어버렸나?"
아이를 데리고 학교로 가며 혼자 중얼거린다. 아이를 보내고 오는 길에 가방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이 불편하다. 개학 날인데, 도대체 이 가방은 왜 여기 있단 말인가!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의 아침을 상상한다.
'가방이 없는 건 알았을까? 언제 알았을까? 이미 학교는 갔겠지? 가방을 잠깐 두고 화장실 간 건가?'
고민하는 사이, 비가 내린다.
가방 앞에 아이의 신분을 알 수 있는 종이쪽지를 찾았다.
'갖다 줘 줄까? 아니면 '비라도 안 맞게 경비실에 둘까?'
보통 분실물을 발견하면 경비실을 가장 많이 찾으니 경비실 앞에 가방을 둔다.
집에 올라와서 소파에 앉았는데, 마음이 불편하다.
'내가 혹시 잠깐 집에 올라간 아이의 가방을 손 데서 아이가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찾고 있는 건 아닐까?'
우산을 가지고 다시 경비실로 내려와 보니 가방은 그대로 있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주운 가방을 들고 낯선 중학교로 간다.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의 가방에는 문제지 하나, 책 한 권이 들어있었다. 딱히 중요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쨌든 가방은 주인을 잃었고, 주인은 가방을 잃은 거니까.
낯선 중학교에 올라가 낯선 중학생들을 헤치고 해당 교실로 갔다. 다행히 수업 시간 전이어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놀고 있었다. 선생님께 전달할까 하다가 착하고 똘똘해 보이는(?) 남학생이 내 말을 잘 들어주어서 그 학생에게 가방 주인에게 돌려달라고 가방을 전달하고 후다닥 학교에서 나왔다.
수업을 시작하는 종이 울렸다. 가방은 주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무거웠던 마음은 가벼워졌다.
'그런데 그 학생은 학교에 간 건가? 안 간 건가?'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어찌 됐든 가방을 전달했으니 후련한 마음으로 관리사무실에 들렀다가 경비 아저씨를 만났다.
만난 김에 '주운 가방'에 대해 설명해드렸더니 아저씨도 가방에 대해서 알고 계셨다. 다시 주인에게 돌려줬다는 말과 함께 누군가 가방을 찾는 사람이 있으면 근처 중학교 3학년 교실로 전달했다는 말도 꼭 좀 전해달라고 말씀드렸다.
경비아저씨는 '좋은 일 하셨네요.'라고 말했다. 사실 좋은 일을 하려고 한 게 아니라 '내 마음의 불편함'을 없애고 싶었다. 그냥 지나쳐도 되는 일에 왜 굳이 과한 행동(?)을 덧붙이는 걸까? 그냥 가방을 찾아가게 두면 되지 않았을까? 경비실 앞에 뒀으면 되지 않았을까? 지나간 행동을 되짚어보기만 한다.
가방을 돌려주고 한 30분이 지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학생 한 명이 가방과 실내화(?)로 보이는 물건을 들고 학교로 급하게 뛰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초등학교는 넘어 보이는 중1~2학년 정도의 남자아이였다. (가방 주인은 중학교 3학년)
'아뿔싸, 혹시 가방 주인?'
'아님 그냥 지각한 학생?'
바쁘게 뛰어가는 학생을 차마 잡을 수 없었다. 어차피 그 학생이 가방의 주인이라면 가방은 이미 교실에 가 있을 테니까...
나쁜 일은 아닌데, 왜 이리 마음이 찝찝한 지 모르겠다.
(15분 동안 가방은 제자리에 있었고, 5분 동안 경비실 앞에 있었다. 아이가 20분 동안 집에 올라갔다 올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나의 착각일까?)
선의의 행동이 '오지랖'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심한 오지라퍼는 고민한다. 그리고 빌어본다.
'나의 오지랖이 남에게 피해가 되지는 말게 하소서.'
'잃어버린 물건은 모두 주인에게 돌아갈 수 있게 하소서.'
'내가 잃어버린 물건도 내게 다시 돌아오게 해 주소서.'
잃어버린 가방을 돌려주고 불편한 마음으로 일기를 적는다.
소심한 오지라퍼는 참 별걸 다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