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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그림자 Jul 12. 2024

ᴇᴘ. 88 책의 기록

[그리움]



마음은 어디에 사는가를 두고 혼자 심각해졌다 마음이 뇌에 사는지 심장에 사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어느 때는 한없이 뜨겁다가 어느 때는 무서울 만큼 냉정해지는 마음의 정체가 일평생 궁금했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마음도 외로워서 저물 무렵에는 심장으로 거처를 옮기기도 한다는 것으로 마음이 세 든 집에 가보았다 마음은 보이지 않고 그리움만 독거하고 있었다 그리움이란 무엇일까 하고 혼자 궁리해 보았다


글과 그림과 그리움이 한 엄마에서 나온 자녀들이라고 들었다 동사 ’ 긁다 ‘가 그들을 낳은 어미라고 했다 나무껍질에든 동판에든 그 위에 긁어 새기는 것이 글과 그림이 되었고 마음에 긁어 새기는 것은 그리움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이 아름답다고 여겨졌고 쉽게 수긍되었다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일은 없는 것들에 대한 열망과 사라져 갈 것들에 대한 연민이다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욕망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그림으로 표출되고 시로 읊어진다


그리움의 원천은 마음의 교환 결핍의 틈새를 메울 사귐이다 사귐도 ’ 새기다 ‘에서 왔다 벽에 암각화를 새기듯 자신의 존재를 상대의 심장에 돋을새김해 두는 게 사귐이다 그러므로 사귄다는 것은 필시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하는 마음과 잇닿아 있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의 공허와 상실의 운명으로부터 그리움은 서로의 부재를 견디는 방식이다 견디는 동안 서로의 형상은 돌올하게 가슴에 새겨진다 그러므로 삶이라는 추상이 느낌으로 감각되는 생의 유효기간은 무언가를 그리워하기 시작해서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게 된 동안까지이다 곁에 있을 때는 가장 기쁜 기쁨으로 사랑하고 곁에 없을 때는 심장에 동판화를 새기듯 죽을 것처럼 그리워하면 될 일이다


사람이 시를 쓰는 이유는 마음을 숨겨둘 언어가 그곳에 많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마음을 감춰둘 여백이 그곳에 많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굳이 그리움이라는 말로 부르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일평생 복무하는 일의 전부라서 그렇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움에 종사하다 그리움에서 퇴직하는 일이다 죽은 이들을 해부해 보면 마음자리가 늘 비어 있다 그리움 세포가 마음을 가장 먼저 괴사시키고 온 장기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그 붉은 종양의 발원지가 마음이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미치도록 그리워해 본 사람들은 안다 세포가 분열하듯이 그리워하면 그리워할수록 마음의 우주가 팽창한다는 걸,


_림태주, 그리움에 대한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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