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느린 정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shine Apr 10. 2022

나이 든 엄마, 그리고 나의 오랜 꿈

느린 정원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기도 어렵고, 그 많은 걸 모두 퀄리티 있게 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진짜 원하는 것이 뭔지,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하는지, 살아가는 동안 늘 선택과 집중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결혼을 늦게 하고 아이를 늦게 낳는 것에 장점도 많다고 생각했더랬다. 아무래도 나의 인격이 20~30대때보다는 조금이나마 더 성장을 했을 것이고, 회사 일도 정말 지겹도록 해 봤기 때문에 회사에서 더 위로 올라가는 것에 대한 미련이 손톱만큼도 없어 육아와 커리어를 두고 고민한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다.


그런 반면 당연히 단점도 많다.

친구들의 아이들은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평균적으로 초등학생 나이에 접어 들었다. 그렇다보니 내 아이의 나이에 맞는 조언을 듣기에는 친구들의 기억이 많이 흐려졌고, 아이 물품을 물려받기에도 한계가 있더라.


그것에 최근 느끼는 또 하나의 단점은 친구들이 바쁜 육아에서 이제 슬슬 벗어나 제 2의 삶을 살기 시작했는데, 친구들을 응원하는 마음 한켠에 내심 부러움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 주변에는 그렇게 공부를 사랑했던 친구들이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남들 공부할 때 안하더니 늙으막에 무슨 공부를 하겠다고 그렇게들 대학원을 진학한다. 자격증을 준비하는 친구들도 많다. 어쨌든 결과와 상관없이 육아를 잠시 벗어나 자기개발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살림에 육아에 자기개발까지. 대단한 친구들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회사에서 욕먹기 싫어서, 진급에 누락되지 않기 위해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지나고 보니 내 손에 남은 것은 하나도 없더라. 직장생활의 수명은 점점 더 짧아지는 시대에 살면서, 마음 편히 오롯이 아기와의 시간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귀한 이 시기에,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머릿속이 복잡한 내 자신이 안쓰럽기도 하고 한심스러워지기도 한다.

내 아이가 대학생이 되면 나는 환갑잔치를 하겠지. 대학교 등록금은 지원해 주고 싶은데, 도대체 나는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나를 받아줄 곳은 있을까.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마음을 누르고 현실에 타협하여 결국엔 돈 버는 일에 내 청춘을 바쳤는데, 왜 돈을 벌어도 벌어도 수중에 남는 것은 없는 것일까?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쓰는 느낌이다. 철저히 계획된 자본주의의 늪에 빠진 노예가 된 것 같다.


날 좋은 봄, 갓난 아이를 들쳐 업고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전시회를 다녀왔다. 마침 작가의 팬사인회가 계획되어 있었고, 전시회 뒷켠에는 이미 도착한 작가의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장거리 이동에 칭얼대는 아이를 두고 편안하게 그림을 감상하지도 사인회를 기다리지도 못하고 부랴부랴 인증샷만 남기고 집으로 복귀했다.

아쉬운 마음에 작가에게 DM을 보냈다. 당신의 그림을 보면서 잠시나마 어렸을 적 꿈으로 돌아갔다고,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나는 다시 대학생이 된 것 같았다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짧은 순간 다시 꿈꿀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나의 옛 그림들과 함께).


자고 일어났더니 그녀에게서 답장이 와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작가라 내 글을 볼까 기대조차 없었는데 이렇게 친히 답장까지 해 주다니.


"Thank you for your message! Your works are beautiful. It's ok to take a break when life demands other things of you, you will go back to it eventually. Take care (with heart)."


아마 난 평생 예술가는 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어릴 적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을 때 아빠가 그랬다. 예술가는 딱 빌어먹기 좋다고.

시대가 바뀌었지만 지금의 기준에서도 일부 동의하는 바가 있다. 내가 그렇게 재능이 뛰어나지 않으면서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또 다시 그동안 타협하며 살았던 삶의 궤적과 동일한 생각으로 귀결한다. 돈은 회사에서 벌고 좋아하는 일은 돈을 내고 취미로 즐기자고. 자연스럽게 내 인생은 흘러갈테니.



매거진의 이전글 예술가로 사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