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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Apr 27. 2022

팔할의 중요성

노산일기

모유수유를 끝내고(끝냄을 당하고) 정말 오랜만에 음식과 술, 약에 자유로워졌다. 결혼 전 1~2년은 대학생활을 제외하고 가장 큰 술독에 빠져 원없이 마셨어서 그런지 임신때나 출산 후나 술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더랬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은 어쩜 그렇게 한여름마냥 푹푹 찌고 덥던지 시원한 맥주 한 모금 먹고 싶다 생각했는데 센스있는 남편이 제로알콜 맥주를 냉동실에 얼려두었더라.


살얼음이 몽글몽글 얼어있는 맥주의 맛은 진정 천국의 맛이었다!

(여기서 잠깐 무알콜이라고 해도 알코올이 0%인 것은 아니더라. 딱 한가지 종류가 무알콜이고 나머지는 모두 소량의 알콜이 포함되어 있으니 임산부들은 캔에 기재된 성분을 잘 확인해 보아야 한다.)


오랜만에 술이 너무 맛있어서 캔 하나를 원샷하고(나는 증류주파라 원래 발효주는 잘 못마시는데도!) 남편 맥주까지 뺏아먹고 또 냉동실에 맥주를 보관했다.


그렇게 일요일 밤을 보내고 맞은 월요일.

우리 아기씨는 어찌나 부지런하신지 새벽5시부터 밥달라고 투정이시다. 비록 무알콜 한 캔과 유알콜 몇 모금이었지만 오랜만의 술이어서 그런지 아침의 몸이 뻐근하고 무겁다. 이것도 숙취라고 해야하는지 하루가 너무너무 피곤하다.


참 신기하게도 주말이 지나면 아기가 아빠 자리의 공백을 느끼는 것 같다. 유난히 징징거리고 치근댄다고 해야하나. 애써 잠에도 들지 않으려고 한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가보다(주말에 아빠 다리에 찌그러진 모습으로 기대 잠든 너는 어디갔니).

몸이 개운하지 않으니 육아도 수월하지가 않아 징징거리는 아이에게,

“얘,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아. 졸리면 자고 아니면 말아. 엄마 그냥 너 거실에 둘꺼야. 엄마도 할 일이 많아.”

아이가 그 얘기를 이해하든 말든 푸념을 늘어놓고 집안일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생각이 들었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뭐든 너무 목에 차게 하지 말아야겠다. 80% 정도만 해주고 나 스스로가 여유가 있어야 다른 사람의 마음도 받아주고 도움도 주고 하는거다. 극한까지 나를 몰아부친 것은 나인데 누군가의 손을 잡아줘야 하는 상황이 오면 감당할 수 없음으로 인한 분노 혹은 짜증이 상대방에게 전가된다. 일할 때도 그랬고 육아도 마찬가지다. 엄마의 몸과 마음이 편안해야 아이도 행복할 것이다.

그러려면 내 자신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하겠지. 나의 한계선에 대한 인지.


본인의 일에 열정적인 친구가 토로했다. 친구의 지인들 왈, 그렇게 일로 시간을 보내면 나중에 아이의 공부와 성장을 봐주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할  것이다 라고 했다고 한다. 내가 아는 친구는 일에도 열정적이지만 퇴근 이후의 아이와의 시간에도 열과 성을 쏟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냥 너 답게 살고 너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더 좋은 교육일 것이라고 했다. 어차피 사람마다 각자의 그릇은 다 타고 나니까.

나에게 복귀를 할꺼냐고 물어봤다. 육아가 체질인 것 같아 복귀를 안하고 싶어할 것 같다고.

친구야, 나는 반드시 복귀할꺼야. 사람이 일도 하고 해야 사람들과 교류도 하고 심신이 더 건강해지는 것 같아.


세상의 수많은 워킹맘, 부디 죄책감 갖지 말아요. 다만 내가 돈 때문에 목이 죄여 회사를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요. 현실이 비록 그럴지라도 당신은 가정의 경제를 도맡는 또 한 명의 기둥이니까 당당하고 자신있게! (물론 육아만 전담하는 엄마들도 마찬가지! 그것이 얼마나 정신을 갉아먹는 일인지 안해보면 모르지!!)


그나저나 나는 잠이 많고 술은 잘 못먹는 사람이다. 객기와 자존심에 취한 모습 보이기 싫어서 악으로 깡으로 버텨서 그렇지 실제로 술은 세지 않다.

모유수유가 끝났지만 내 주제 파악하고 술은 자제해야겠다. 시간 날때마다 맘 편히 잠도 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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