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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May 13. 2022

울타리 너머

노산일기

요즘 그림책 관련 수업이 대세인지 이름만 다른 여러 종류의 수업들이 종종  눈에 띄곤 한다. 딸에게 읽어줄 동화책을 고르는 눈을  쌓아볼까 싶어 그림책심리치료사 자격증 수업이라는 것을 등록했다. 민간자격증,  직업적으로 그다지 효용성은 없다는 얘긴데  그런 것에  속는다. 차가운 인상 덕에 다단계 관련인들이 나에게 직접 접근한 적은 없는데  발로 걸어들어간 적은 많다. 외모만 차가운 호구다.


어쨌든 이런저런 과정 끝에 (나에겐) 큰 돈을 지불하고 강의를 듣게 되었고, 수업 중간중간 여러 불편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일단 마음에 와닿는? 심금을 울리는? 책이 없었다. 무슨 사연들이 그렇게 많으신지 수업마다 우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내 mbti를 돌이키곤 했다(intp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기계랍니다).

또한 크리스찬분들이 많아서인지 집단상담이 굉장히 자연스러웠는데 외톨이 불교신자인 나는 그 시간들이 왜 그렇게 가시방석이던지.


그럼에도 남편이 지원을 해 주지 않아 100% 내 돈을 부어 듣는 수업이었던지라 단 한 번 결석이나 지각 없이 수업에 참석했고, 어느새 이 과정도 막바지를 향해 갔다.


그러던 어느 수업 날 ‘울타리 너머’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책을 읽는+그림을 보는 도중 갑자기 가슴이 먹먹하고 목이 콱 막히더라.

결국 책의 내용과 나의 감상을 접목해서 설명하던 와중에 눈물이 터져버렸다.


‘사람들이 그 대학 갈려고 서울 보냈냐 라고 해서 니 어디 갔는지 얘기 안한다’

‘얘기해봤자 그게 무슨 회산지 모르니 니 취업했다는 소리도 안했다’

‘돈 들여서 대학 보내놨더니 그따위 생각밖에 못하냐(집 경매에 대해 얘기했음)’


미리 얘기하건데 부모님이 절대 나쁜 분들은 아니었는데 워낙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분들인데다 경상도 특유의 모진 말투 때문에 가슴에 상처가 난 적이 종종 있었더랬다.

30살을 넘어 부모의 인간적인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면서 내 안의 상처들이 자가치유를 통해 많이 나아졌고 지금은 다 잊혀졌다 생각했었는데 아니 그 때의 감정들이 갑자기 터져 나온 것이다.

10분 남짓의 아주 잠깐 시간이었지만 어찌나 꺽꺽거리며 울었던지 그 날 하루종일 열이 나고 몸이 아프더랬다.


그리곤 생각했다. 아직도 난 따뜻한 말을 해주는 부모님의 모습을 갈망하고 있었구나.

하지만 두 분 모두 80년을 넘게 사신 분들이라 이제 와 그 분들을 바꿀 수도 없을 뿐더러 갑자기 바뀌면 그게 더 무서울 것 같았다.


대신 내가 듣고 싶었던 말들을 내 딸에게는 직접 내 입으로 해주자.

어떤 말이 듣고 싶었는지 글로 써 보자.


사랑한다.

응원한다.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이다.

잘하고 있다, 잘 될꺼다.

괜찮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쓰고 보니 별거 아닌 말들인 것 같은데 왜 부모님은 이 말 한 번 해 주시지 않았을까 의미없는 원망도 해 본다.

공자께서 타인의 좋은 점도 배우고 나쁜 점도 고쳐 배워 세상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삼으라 하셨다. 이제 고작 6개월인 딸이 말을 이해할리 없겠지만, 매일 딸의 귀에 속삭여줘야겠다.


딸이 크면 해 주고 싶은 이야기도 잊지 않게 적어둬야지.


딸아,

살아가는 중에 가끔씩 겪게될 실패와 고난은 네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란다. 엄마가 항상 네 곁에 있으니 마음놓고 최선을 다해 재밌게 인생을 살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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