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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Jul 05. 2022

늙어가는 강아지를 보며

노산일기

형제가 없어 외로워보였던 이유였는지 부모님은 가끔씩 동물을 키웠다.

여러 곤충부터 카나리아, 강아지까지. 곤충이나 카나리아는 본연의 이유와 양육자의 서투름 탓에 생각보다는 빨리 죽었고 감정적으로 교류하기가 어려웠던 반면, 강아지는 처음보는 순간 사랑에 빠져버렸었다.

너무 정붙이면 안된다고 3년을 키우고 다른 집에 입양보내기를 두세차례 하셨고 어린 나는 헤어짐을 겪을 때마다 며칠간 대성통곡을 했었다. 내가 크면  강아지가 명을 다해 죽을 때까지 함께  것이다 다짐을 하면서.


사람마다 성향이 다른 것이겠지만 외동으로 자란 나는 확실히 사람을 대하는 것보다는 동물들과 지내는 것이 편했다. 해치지 않을 것이 느껴진 것인지 어쩐지 신기하게 야산에서 만난 들개나 들고양이들도 나한테는 경계심이 없이 잘 다가왔고 외로웠던 나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집에 너무 데려와서 문제였지만…


여차저차 조금은 늦은 나이에 회사에 취직을 했다. 내가 입사한 업계는 엄청난 노동강도를 자랑하는 곳이었고, 25명의 공채 입사 동기는 1년 뒤 5명으로 줄어있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매출이 급상승한 신규바이어 팀에 속해 있어서 새벽별보고 출근해서 새벽별보며 퇴근하는 일이 일 년 넘게 지속되었다. 열 시에 집에 도착하면 아 오늘 일 빨리 끝났다 하는 정도였으니. 그런 며칠 안되는 어떤 빠른(?) 퇴근일 집으로 가는 길에 애견샵 유리벽을 통해 우연히 어떤 강아지와 눈이 마주쳤는데, 사람이 이럴 수가 있구나. 그 강아지를 본 순간 사랑에 빠져버려서 무언가에 홀린 듯이 애견샵 문을 열었다.


마침 문을 닫으려던 차에 지치고 얼빠진 고객이 들어와서 신이 난 주인은 샵에 있던 강아지들을 다 꺼내놓았다. 사람 간에도 운명이란게 있지만 나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도 운명이 있다고 느꼈던 것이, 열 댓마리 정도의 작고 꼬물거리는 강아지들 중에서 내가 반했던 바로 그 강아지만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꼬리를 흔들며 나에게 다가와 품에 안기더라. 나는 그 강아지와 같은 케이지에 함께 있던 친구 강아지까지 두 마리를 그 자리에서 대금을 지불하고 집으로 데려왔다. 그렇게 바쁜 업무를 하면서 무슨 생각으로 그랬던건지 그 당시 같이 살고 있던 친척 언니가 아니었음 강아지들은 정말 방치되어 있을 뻔 했다. 한국도 외국처럼 몇 년간의 교육을 이수해야 강아지를 입양할 자격이 주어지도록 해야 한다.


문제는 그 때부터였다. 같이 데려온 강아지는 데려온 날부터 뭔가 시름시름 앓고 있었고 호흡을 힘들어 했다.  3일 정도를 데리고 있다가 샵에 갔더니 레블라이저를 좀 해 주고는 다 나았으니 데려가라고 했다. 그런데 상태는 더더욱 악화되어 밤에도 잠을 못 잘 정도로 숨을 제대로 못 쉬기에 일주일이 지나 다시 샵에 데려갔더니 조금은 불친절한 느낌으로 그럼 다른 개로 바꿔가란다.

막상 교환이나 환불같은 조건을 들이미니  강아지를 물건 취급하는 기분이들어 그냥 다시 가게를 되돌아 나왔다.


데려올 때부터 몸이 약했던 강아지는 결국 길게 살지 못했다. 6살의 어느 한 겨울, 멀쩡히 잘 놀다가 갑자기 경련을 했다. 그렇게 병원 입원 퇴원을 반복하다 새해를 맞은지 6일째 되는 날 별나라로 갔다. 그간 깨진 병원비만 몇 천이었지만 그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강아지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이나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임을 알지만 막상 생명체에 정을 붙이면 그 생명체는 그냥 가족이다.


떠난 강아지를 가슴에 묻었다. 남들 시집가서 아이를 낳을 때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해서 강아지를 내 딸처럼 키웠던 나는 후유증을 정말 심하게 겪었다. 남은 한마리가 없었다면 우울증이 왔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남은 강아지는 오래도록 내 곁을 지켜주었고 곧 16번째 생일을 맞는다. 그간 강아지는 자궁도 신장 하나도 떼어냈고 심장 비대증에 잇몸도 무너졌다. 호흡이 거칠어 숨쉬는 것도 버거워하고 배의 종양은 느린 속도이지만 조금씩 커져 간다.


엄마에게 그냥 지나가는 별 것 아닌 얘기처럼 얘기를 흘렸다.

“어느 날 우리 영심이가 심하게 아파 입원하는 일이 생기면 영심이 힘들게 하지 말고 안락사 시켜주자. 지금까지 산 것도 기적이고 정말 잘 버텨줬어.”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는 안락사라는 단어가 가슴에 맺혀 한참을 울었더랬다.


회사 일로 지쳐 있던 시절, 유일하게 늦잠을 자는 일요일  12 쯤에나 눈을 뜨면 머리 맡에서 눈을 말똥말똥 뜨고 턱을 괴어 내가 일어나기를 조용히 기다려주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순간 예쁘고 고마웠던 기억으로만  시간을 채워주었다.

내가 참 자식 복이 많다 했다.


그저 부디 살아있는 날까지 아프지만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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