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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Aug 01. 2022

영유, 나는 안보내련다.

노산일기

얼집 같은 반에 다문화가정 아이가 있다. 요즘은 혼혈이라는 단어는 좀 무식한 단어인가 싶어 다른 단어로 가려 쓰려는데 참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질 않는다. 영어로 번역하면 더 가관이다. 우리나라가 말처럼 단일화 민족은 절대 아니라는데 아직도 외양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눈길이 한 번 더 가는 건 사실이라 나와 다름이라는 규정을 어떻게 부셔나갈지가 고민이다.


여튼, 엄마가 우크라이나 사람이란다. 우크라이나는 김태희가 밭을 맨다더니 아이가 이렇게 이쁠 수가 없다. 아이에게 약간의 신체적 장애가 있어 우리 아이보다 한 살이 많지만 부득이 같은 반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 이래저래 한국에서 살아가려면 현지인의 많은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아이 엄마를 한 번은 만나고 싶었는데 계속 일정이 안 맞더니 동사무소 가는 길에 우연히 하원길의 엄마와 마주쳤다.


한국말로 인사를 하니 잘 못 알아 듣기에 영어로 대화를 시도했다. 꼭 한 번 보고 싶었다고.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당장 다음날 등원 후에 커피 한 잔 할 수 있냐고 하길래 반가운 마음에 그러자고 했다.


일단 우크라이나 사정이 걱정이 된 나는 가족들은 우크라이나에 있는지, 상황은 어떤지 먼저 물어보았다. 아빠 집은 폭격으로 무너졌고 할머니 집은 폭격의 직접 피해는 없었지만 근방에 떨어진 폭탄 때문에 창문이 날아가고 유리창 파편에 조금 상처가 생겼다고 했다. 현재 가족들은 우크라이나 내 다른 지역으로 갔거나 부다페스트에 가 있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별 감흥 없이 덤덤하게 하는 엄마를 보니 남북으로 대치한 상황에 이미 감흥이 없어진 우리나라 사람들을 외국인들이 보면 이런 모습일까 싶었다.


2014년 여행 중 파리의 6인실 도미토리에서 난생 처음 우크라이나 사람을 만났다. 무식하기 짝이 없던 나는 그저 말 한 번 걸어보겠다고 난 너네 나라 가본 적이 없는데 어디가 관광하기 좋아? 라는 질문을 던졌고, 옆에 있던 미국 친구가 근데 너네 나라 내전 중 아니니? 여행하기 안전해? 라고 질문을 이었다. 동쪽이 내전 중이고 그 외 지역은 안전하다고 하며 어디어디가 아름다우니 그곳을 여행하라는 추천을 받았다. 그로부터 우크라이나 내전의 역사에 대해 미국인과 우크라인이 밤새 대화를 나누는데 아는 것이 없던 나는 말 한 마디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 대화라는 것은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지적 수준의 문제이다 라고.


여튼, 그녀는 1년 반 전에 한국으로 처음 왔고 남편 외에 대화를 나눈 것은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남편이 한국인들은 다 영어를 잘 한다기에 별 걱정없이 왔는데 막상 의사소통이 잘 안되어 외롭다고 했다. 언어교육원 같은데서 친구를 만날 수 있지 않냐고 했더니 남편이 외벌이라 학교를 다니기에 여유롭지 않아 혼자 유튜브를 통해 한국어를 독학 중이라고 한다. 아직 한국어가 너무 서툴러 직업을 찾기도 쉽지 않고. 얼집 엄마들이랑 몇 번 얘기를 해 보려했으나 대화를 피하는 것 같아 포기했다는 얘기도 했다.


얼마나 대화가 고팠던지 말이 속사포처럼 쏟아져 1/3의 내용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흘려보내야 했지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 마음 편히 시간을 함께 했다.

책도 좋아하는데 한국에서는 영어책이 너무 비싸다기에 동네 도서관에 데려가 회원증 발급을 함께 알아보기도 했다. 이 곳 도서관은 아이들 책을 상당히 많이 보유하고 있어서 아이 키우기 너무 좋은 곳이기에 꼭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그녀는 헤어진 후 카톡으로 한국에 온 이래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했다. 주변에는 조리원에서부터 친구가 생긴다는데 나로서는 공식적으로 생긴 첫 얼집 친구인 셈이라 나도 굉장히 기쁜 날이었다. 아이들끼리도 좋은 친구로 발전하면 더할나위 없겠다 싶었다.


그리곤 내심 궁금해졌다. 영유, 국제학교 보내려고 그렇게들 난리라는데 왜 주변에 있는 좋은 기회들은 그냥 흘려보내는걸까.

다들 자기만의 가치관대로 살아가는 거니 남의 가치관에 가타부타 할 필요도 없고 내 생각이 고리타분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영유나 국제학교는 안 보낼꺼다 생각했다. 공부라는게 우리도 다 해보지 않았나. 사교육 돈 퍼붓는다고 해결되는 일도 아니고 공부 잘한다고 인생이 완벽해지는 것도 아니고.


아이는 그저 세상을 편견없는 넓고 예쁜 눈으로 보면서 몸과 마음 건강히 주어지는 순간들을 충실히 살아가면 그만이다.


나의 결핍을 아이를 통해 해소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내가 결핍을 가지지 않도록 하나하나 내실을 쌓아야 한다고 다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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