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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노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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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Aug 23. 2022

우울증과 무력감

노산일기

이렇게 짧은 기간 안에 아빠의 이야기가 많이 쏟아지게 될 줄은 몰랐다.


아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엄마의 전화가 왔다. 침대가 침으로 다 젖어있고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코만 골고 깨시지 않는다고 했다. 수면제 과다복용이다 싶었다. 바로 응급실 가시라고 했다. 좁은 나라 살면서도 이동이 쉽지가 않고 코로나 격리기간까지 겹치니 환장할 노릇이다.


반나절을 넘게 병원에 계시는데도 약기운은 떨어질줄 모르고 자꾸 중증 치매환자처럼 정신없는 소리를 하셨다. 몸도 의지대로 움직여지지가 않는지 대소변 실수도 하신다.


평소 자존심이 하늘과 같으신 꼬장꼬장한 분들이라 노후에도 몸관리 마음관리를 잘 하실 줄 알았는데 멘탈이 한 번 망가지니 모든 것이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렸다. 이것도 이곳에 나를 실제로 아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임금님 귀 당나귀귀 심정으로 토하는 글이다.


조금 의식을 찾으시자 지나가듯 이야기 하시기를, 약통에 있는 약을 다 드셨고 살아서 뭐하겠나 하는 생각이셨다고 했다.


최근 심리학 공부도 하고 책도 많이 읽었는데 역시 현실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력하다. 내 자신 또한 그렇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내가 아빠의 인생을 구제할 수 없고 방법 또한 알 수 없다.


아이의 격리기간이 끝나면 아빠를 찾아 뵙겠지만, 밑빠진 독으로 인생이 다 쓸려나가버린 아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럴 때 일수록 더 형제 없음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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