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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Aug 30. 2022

둘째가 태어날 계획입니다.

노산일기

아직 고작 6주라 입밖에 내기도 위험한 시기긴 하지만.. 출산 연령도 그렇고, 휴직 복직을 반복하기에 부담스러운 나이도 감안하고 여차저차 둘을 연달아 놓고 휴직을 이어서 써 버리면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운 좋게 성공을 했다.

(참 금슬이 좋아보이겠지만 정작 남편과 나는 어안이 벙벙했고 남편이 나에게 성모마리아시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몸 조심을 해야 할 시기에 온통 내 신경은 회사에 가 있었다. 빨리 소식을 전해야 조직운영계획에 차질이 없을텐데, 혹시 나의 휴직 연장으로 아예 나의 자리가 없어져버리는 건 아닐까, 벌써 일이 머리에서 잊혀지는데 더 휴직을 하면 머리가 아주 리셋이 되겠구나.. 등등

머리 복잡한 걸 담아두고 있지 못하는 나는 급한 성질을 못 이기고 직속상사(회장 아드님)와의 약속도 잡지 않은 채 가는 날짜를 잡아버렸고 역시나 그는 출장 중이라 얼굴을 보고 소식을 전하지 못한 채 편지만 전달하고 왔다.


요즘 시대에 손편지라니 주변 사람들이 조금 비웃었지만 막상 화술이 딸리는 나로서는 글로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훨씬 편하기 때문에 아직도 종종 편지를 쓰곤 한다.

혹시 나도 모르게 감상에 젖어 헛소리를 적었을까 싶어 사진을 찍어 두었는데 얼마나 손글씨를 안썼던지 악필도 이런 악필이 없다.


회사에 지분도 없는 주제에 나는 왜 이렇게 항상 사측의 사고를 가지고 있는건지, 짤리지 않게 바짓가랭이 붙잡아야 할 판에 치솟는 인건비가 먼저 걱정이 되었다. 그러면서 시킨 일만 반복하는 직원은 가성비로 승부해야 할 것이고 근속과 급여 상승을 보장받고 싶은 직원은 회사의 발전에 기여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 어느 쪽도 쉬운 선택은 없겠지만 점차 도태되는 화석같은 직원이고 싶지는 않다 라고 썼다. 꼴에 자존심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진심이기도 했다.


휴직 이래 단 한순간도 고민을 하지 않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무엇을 준비해야 굶어죽지 않을 것인가.


막상 돈 버는 법은 쉽다고 한다. 나의 부모는 공부가 모든 걸 해결해 준다고 믿는 부류였고 그 덕에 나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책부터 펴게 되었다. 학교를 다닐때는 그 방법이 잘 통한다. 그런데 학생신분을 벗어나면 좀 다르다. 내가 영원히 학계에 남지 않는 이상은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데 아직도 뭔가 헛물을 켜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알량한 자존심도 한 몫한다. 세상이 다단계로 보인다. 결국 돈 내고 돈 먹기 하는 거잖아 라는 생각이고 돈 몇 푼 벌자고 남의 지갑을 불필요하게 열게 하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그동안 그렇게 몸을 갈아 회사에 충성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방법 외에 아는 것도 없었을 것이고…


이런 저런 고민이 이어지니 당장 코 앞에 닥칠 애 키울 걱정은 안드로메다이다. 양가 손 벌릴 데도 없는데 뭐 어떻게 되겠지 싶다. 남 일은 그렇게 충성스럽게 하면서 내 일은 대충대충이다.


아기는 정말 혼자서 알아서 큰다. 돌도 안 된 아기를 너무 방치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혼자 잘놀고 잘먹고 잘잔다. 너무 먼 미래를 대비하겠답시고 현실의 엄마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건 아닌가 끝도 없는 자책감과 걱정. 애가 수월하게 잘 커도 걱정 키우기 까다로워도 걱정.


엄마라는 자리는 그래서 어려운가보다. 그러면서 둘째라니. 참 대책도 없지.



** 혹시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을까봐. 코로나 때 이미 임신 사실을 알고 있었어서 해열제 두 알로 버텼다. 가정의 위기에는 엄마가 가장이라 정말 정신력으로 이겨내게 되더라는…. 눈물 한 방울 또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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