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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노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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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Sep 13. 2022

안녕

노산일기


어떻게 글을 시작해야 할지 한참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지난 몇 주간은 행복과 괴로움이 뒤섞였던 시간이었지만 행복이 너무 커서 때때로 괴로움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추석이 왔고 드디어 아빠를 보러 갔다. 아빠는 중병에 걸린 노인처럼 누워만 계셨고 온 몸에서 기가 다 빠져나가 본인의 몸 하나를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시는 듯 했다. 더욱이 신체를 압도하는 우울과 무기력함에 말끝마다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며 죽을 날만을 세고 계신 것 같았다.


사실 마음이 아프기보다 분통이 터졌다. 평생을 남을 위해 사시더니 정작 책임져야 할 가족들 앞에서는 남은 본인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이렇게 다 놓아버리시는구나 싶었다. 나는 딸을 낳으며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었다. 수명이 길고 짧음과 상관이 없이 ‘잘 죽는 법’에 대해 정말 진지해졌더랬다. 마지막 날까지 꼿꼿하게 잘 죽는 법. 어렵더라도 남은 자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짐을 지우는 법.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동안 잘 살아야 한다는 것. 그런데 아빠라는 사람이 딸과 손녀 앞에서 이렇게 무너지신다니.


둘째 임신 문제로 시댁에서 배려를 해 주셔서 이번 추석에도 친정에만 일주일 가량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든 씩씩한 모습을 보여드려 아빠도 기운을 내시게 해 드리고 싶었고, 내일 지구에 종말이 와도 제사는 지내겠다는 아빠의 신념을 위해, 아빠만큼이나 몸이 성치않은 엄마를 위해 체력이 날로 좋아지는 아기를 들쳐업고 제사 준비에도 몸바쳤다.

환경이 낯설었던 아기는 내내 내 다리통에 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고 하루의 절반을 울어대는 통에 사실상 내가 드러누울 지경이었다.

또한 상노인인데도 성격들이 만만치 않은 부모님들이라 일주일이라는 시간동안에도 잡음이 많았지만 그래도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 했다. 늘 그렇듯이. 그래봤자 결국 지나면 후회가 남겠지만.


남편의 주말근무 문제로 병원 정기 검진일을 조금 당겨 오늘 병원을 다녀오기로 해서 상경 후 곧 병원을 찾았다.

초음파를 하는데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고 며칠분의 약처방을 해 주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고 어안이 벙벙하더니 약을 먹으려니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진짜 헤어지는구나. 의사 선생님은 초기 자연 유산의 경우는 구체적인 이유가 딱히 없다고 했지만 내가 뭘 잘 못 한건지 지나간 시간들만 복기할 따름이었다. 초기에는 어찌될지 모른다고 다들 쉬쉬한다는데 그런 것도 모르고 브런치 같은 공적인 장소에 너무 떠든 것은 아닌가 싶고 몸 조심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기쁨에 젖어있었던 것이 아닌가 여러 복잡한 생각들만 지나갔다.


소식을 전해들은 부모님은 더욱 큰 상실감에 빠지셨다. 애써 거실에 나와계시던 아빠는 내 소식을 듣고 다시 침대에 가서 누우셨다고 했다. 딸 때문에 아빠 더 안좋아졌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으니 기력 차리시라고 괜히 모진 소리를 했지만 솔직히 아이나 내 마음 보다도 부모님 걱정이 너무 되었다. 조금이라도 기력을 차리시라 싶어 기쁜 소식 너무 빨리 전해드린 것이 아닌가 후회도 되었다.


쏟아지는 피로감과 약 때문인지 어쩐지 모를 떨어진 체력에 빨리 잠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나보다 더 기뻐했던 남편에게도 미안하고 부모님도 아른거린다. 뭐라도 토해내야겠다 싶어 글을 쓴다.


좋은 일은 행복에 취해 그저 내 기분을 따라 써 내려 갔다면 나쁜 일은 이런 일을 겪은 사람도 있으니 조심하시고 힘내시라 라는 마음으로 써야 겠다 싶어진다.


이번 한 주는 쉽지 않은 주간이 될 듯 한데 에너지 넘치는 우리 딸은 어떻게 케어를 해야 할지. 이럴 때 손벌릴데 없는 상황도 답답해진다.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겠다고 내심 자부심을 가졌었는데 어려운 상황이 닥치니 이러면서 무슨 출산률을 높이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누우면 눈물이 나니 내일은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다.


잘가, 다시 곧 만나자. 너무나도 행복한 하루하루 선물로 줘서 고마워. 꼭 다시 만나.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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