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일기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결혼을 한 우리는 여태 해외여행 한 번을 못해봤다는 아쉬움을 마음 속에 가지고 있었는데, 휴직도 끝나가고 남편의 22년 연차도 소진해야 하는 여러 조건들이 쌓여 가족 해외여행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돌아기와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마음에 상당한 부담이 있었기 때문에 가급적 비행시간이 가장 짧은 곳으로 검색하다 후쿠오카로 결정했다. 일본을 여러 차례 다녀온 나도 후쿠오카는 처음이라 설레임 반 걱정 반이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어보았으나 렌트를 하지 않는 우리로서는 여행지 접점이 거의 없다. 아기를 데려가는 여행이니 최대한 욕심을 버리고 맛있는 거나 먹고 쉬다 오자 라고 결심.
코로나가 점점 일상화 되어감에 따라 눌러왔던 여행 욕망이 폭발하여 해외여행객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뉴스를 보아 지레 겁먹고 공항에 일찍 나갔는데 생각보다는 여행객이 많지 않았다. 다만 항공사들의 직원정리해고 후 재충원이 쉽지 않다고 들었는데 그러한 이유였는지 항공사가 작은 곳이어서 그런지 부스가 적어 체크인에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정말 오랜만에 라운지를 방문해서 끼니도 때우고 술도 마셨다. 육아 때문에 술은 입에도 대지 않던 나인데 왠지 오늘은 마음에 나사가 하나 풀린다. 우리 딸도 이유식만 먹다가 이번 여행을 계기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단짠의 세계에 입문.
장시간 공항에서의 체류와 비행기 이륙 지연으로 답답해진 아기씨는 비행기에서 진상을 부리기 시작했다. 평소 체면을 중시하여 밖에서는 꽤나 얌전한 아기씨인데 오늘따라 난리법석이니 나도 당황하여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은 그나마 양해를 해 주시지만 결혼 전의 젊은 커플 여행객들은 너무 대놓고 눈으로 레이저를 쏴 주셔서 짧은 비행시간이 체감 4시간 정도로 느껴졌다.
낮 3시 출발 비행기였는데 이륙 지연 및 공항 버스 지연으로 숙소에 도착하니 깜깜한 밤이다.
높은 침대가 있는 호텔 숙소는 아기 때매 불가능 하고 료칸은 이미 다 만실이라 아파트 형식의 작은 숙소를 예약했다. 소파 의자가 베드로 변신하는 곳이고 작은 평수에도 있을 것이 모두 있는 알찬 곳이라 료칸을 가지 못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일단 배가 고프니 먹으러 나가야겠다. 숙소가 하카타역 근처여서 일단 역근처로 향했다. 일본의 줄서기 문화를 처음 접한 남편은 미리 예고를 했음에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또한 허기가 져서 웨이팅을 감내하기도 힘들었기에 곱창나베는 포기하고 아무 식당이나 찾아 들어갔다. 역시 간판에서부터 맛없음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지만 도심 한복판이어서인지 손님은 가득하다.
꼬치구이와 달걀말이를 시켰는데 사진을 찍을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맛이 없었다…. 우리는 대충 허기만 때우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하게 숙소에서 야식을 먹자며.
일본은 우리보다 주류세가 낮은 듯 하다. 모든 술이 우리나라의 절반 가격이었다. 나보다 술을 더 사랑하는 우리 남편은 아주 신이났다. 우리나라 편의점은 하루에 두 번 음식이 입고 되는데 일본은 세 번 입고 되기 때문에 삼각김밥이나 기타 여러 편의점 음식들이 우리나라보다 맛이 있고 신선도가 높은 것이라고 한다. 사진에는 미처 남기지 못하고 뱃 속으로 넣어버린 여러 맛있는 편의점 음식들을 뒤로 하고 잠깐 부부싸움을 해 주고 불편한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