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에 놓이다

‘한국 출산 공사’의 출범을 잠시 상상해 봤다.

by moonshot

‘임산부 전용 ∆∆’, ‘아기 전용 □□’, 이런 표기가 붙은 물건을 사게 된다면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는 만족감은 기대하기 힘들다. 임신 15주를 전후해 아내의 체형이 조금씩 변하면서부터 쌓인 경험이다.


아내는 잘 때 몸통이 불편하다며 안고 잘 수 있는 바디필로우를 하나 사겠다고 했다. 총각 시절 자취방에 만 오천 원인가를 주고 그런 물건을 사 둔 적이 있었다. 뭐 그런 걸 물어보고 사냐고 쿨 하게 말했다. ‘비싸지 않은’ 걸로 샀다는데, 9만 원이었다.


조금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검색을 해 봤다. 여러 제품들이 각자의 구구절절한 개발 사연을 풀어놓고 있었다. 차별화된 소재와 디자인에서부터 유명인 누군가가 사용했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은 강렬했다. 허술하게 돈 쓰는 편이 아니라고 자평 하는 우리 방어 기제는 금세 무너졌다. ‘첫 출산을 앞두고, 평생에 몇 번이나 이런데 돈 쓴다고, 꽤 괜찮은 걸로 장만하지 않으면 나중에 아이한테 미안할 거라’는 의식의 흐름에 떠밀려서다.

바디필로우.jpg


이 무렵 두 번째 입체 초음파를 봤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의 길이가 15센티미터를 넘어 있었다. 4주 만에 두 배로 커지다니, 그야말로 폭풍성장! 워낙 많이 움직여서 손발을 촬영하기 힘들었다는 얘길 들으니 그간의 걱정이 싹 가셨다. 이 틈을 타 또 한 번의 ‘뽐뿌’가 왔다. 정확도 99% 이상이라는 기형아 검사가 있다며 소개하는데, 60만 원에 달하는 비용은 또 한 번 방어 기제를 냉큼 뛰어넘었다. ‘도입 초기에 비하면 절반 정도 저렴해진 거래’라고 검색 엔진이 속삭여 줬다.


‘조리원 투어’도 했다. 아내는 나의 출퇴근 경로에 있는 두 군데 정도만 가 보자고 했다. 손 소독제를 바르고 멸균 가운을 걸친 뒤 에어 샤워실을 지나 상담실에 도달했다. 소중한 내 새끼들과 생에 가장 예민한 시기를 지나는 여성들이 모여 있는 공간 이어서일까? 두 곳의 상담 실장님들로부터 태어나서 가장 유려한 수준의 언변을 보았다. 참고로 나는 아내의 옷 쇼핑에 따라나서는 것을 그리 힘들어하지 않는 편이다. 보통의 남자들이 점원의 쉴 새 없는 언변과 여러 번의 환복을 못 견뎌 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리원 상담실에서의 배석 경험은 30분을 지날 무렵부터 굉장한 피로감을 선사했다. 인근의 다른 조리원들을 ‘디스’하면서 자기 조리원을 추켜세우는 대목에서부터 그랬던 것 같다.


신생아를 라이브로 생중계해 주는 CCTV가 전자파를 발생시켜 건강에 해로우니, 카메라가 없는 자기 조리원을 선택하라는 ‘드립’은 결정타였다.


‘실장님, 하루 종일 스마트폰 갖고 다니시면 몸이 녹아 없어지지 않을까요?’.


물론 속으로 꾹 삼킨 얘기다. 각 장소에서 한 시간 가까운 맹공을 받아 내는 것은 힘들었지만, 시설을 구경하는 재미는 쏠쏠했다. 맛깔스럽게 보이는 음식에서부터 정갈한 침구, 마사지 시설 같은 것들을 보니 내가 며칠 쉬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할인 받아 3백 몇 십 만원이라는 비용을 지불했다. 이천 만원이 넘는 호사스러운 곳도 있다 하니 ‘쪼는’ 내색은 할 수 없었다.


궁금했다. 출산율이 떨어지니 시장이 양극화되는 걸까? 한국에만 있다는 조리원 산업은 어떤 계기로 성장 일로에 놓였을까? 우린 그나마 지불 여력이 있어서 다행인데, 그렇지 못한 경우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해소될 수 있을까? 보편적 필요가 형성된 것이라면 나라가 어느 정도 책임을 져 주면 좋겠다.


‘한국 출산 공사’의 출범을 잠시 상상해 봤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