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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숙정 Apr 05. 2021

선생님! 저 담배 못 끊어요

요양보호사 자격증 서류 때문에 종합병원에서 건강 검진받은 결과가 나왔는데 혈압이 180이었다. 5~6년 전 혈압약을 먹다가 내 맘대로 끊었던 탓이리라. 혈압 관리에 대한 무지의 결과다. 별일 없을 줄로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서둘러 동네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이 깜짝 놀라더니 본격적으로 야단을 쳤다.


“술 담배 하세요? 직업은 뭐예요?”

“직업은 없고 요양보호사 하려고 해요.”

“자식은 몇 명 두셨어요?”

“둘이요.”

“남편은요?”

“없어요.”


한참을 호통을 치더니 일전에 다녀간 어르신은 나이가 팔순인데 ‘내가 나를 위해 병원 다니는 게 아니에요. 자식들이 나 때문에 고생할까 봐 시키는 대로 하는 거예요’ 했다며 엄마가 되어서 어떻게 이렇게 막 살 수 있느냐, 흡연자는 요양보호사를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거다.


하도 정신없이 야단을 맞아서 그다음 이야기는 생각이 잘 안 난다. 약 처방받으러 간 거지, 야단맞으러 간 게 아닌데.

동네 병원은 보통 검사나 받고 약 처방을 받는 곳이라고, 옛날에 끊었던 약이나 받으러 갔다가 호랑이 선생님을 만나 버린 것이다.

좀 특이한 의사임에는 틀림없다. 50~6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나이가 가늠 안 될 정도로 한눈에 봐도 관리를 잘한 것 같다.

그러니 건강 관리를 엉망으로 하고 살고 있는 나를 보면 화가 날 만도 하다고 이해가 갔다. 아무리 그래도 야단만 맞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하여 대뜸 대들었다.


“살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요!”


그때는 정말 그랬다. 나이 육십 줄에 알량한 재산도 다 털어먹고서 서울에서 경기도로, 그것도 반지하 방으로 이사해 날마다 술이며 담배에 찌들어 한숨만 쉬며 지내고 있었으니까.

그러던 차에 딸아이가 요양보호사 교육이라도 받아 봐라 권해서 마지못해 학원을 꾸역꾸역 다녔다. 노인 질환을 앓는 엄마(80대)를 위해 정신을 차린 것이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이 호통 치던 걸 중지하고 “아, 뭐. 요즘 의사들도 종종 자살한다”면서 흐지부지했다.


혈액검사, 심전도 검사에 초음파 등 3~4가지 검사를 차례로 받았다. 혈압이 하도 높으니 뭔가 다른 질환은 없나 찾아내려는 것 같았다. 결국 당뇨가 약간 진행되고 있다는 걸 찾아냈다.

참고로 이 병원 의사는 모르는 내가 봐도 실력 있는 의사다. 실제로도 환자가 끊이지를 않으니 이 동네에서는 A급 의사이다.


문제는 담배를 끊으라는 전제로 치료를 하겠다는 거였다.

담배를 끊으면 몸에 좋다는 거야 누구나 다 아는 진리다. 스트레스 해소를 할 다른 수단도 없고, 의지가 약한 나로서는 그것만은 못하겠어서 병원을 옮겨 버렸다.


나는 다른 병원에서 받은 약으로 혈압 관리를 하고 운동도 하며 지냈다.

흡연자는 요양보호사를 하면 안 된다는 그 말대로 청소일을 하면서 세월을 보내던 중 딸애가 직장에서 전화를 걸어서 ‘심장이 이상하다’ 하는데 딸아이가 평소 다니는 내과가 하필이면 그 병원이다.

자식 일에는 부모가 물불을 가리지 않듯이 나도 그랬다. 딸아이가 평소에도 심장이 자주 아프다 얘기를 했고(나중에 큰 병원에 가 보니 스트레스성이었다), 엄마도 협심증이 있었다.


용기를 쥐어짜 그 병원에 찾아가 상의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 눈매가 묘해지더니 이 병원 온 적이 있느냐 묻는다. 순간 거짓말로 둘러대려다가 뭐 내가 죽을죄 지었나? 당당히 그렇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의사 선생님이 차트를 찾는 것이다.

아뿔싸! 또 한바탕 야단이 시작됐다. 내용은 이러하다.


“도망가셨군! 담배는 끊었습니까?”

“아뇨.”

“술은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요.”

“요양보호사 일은 하고 있어요?”

“선생님이 하지 말라 해서 안 하고 다른 일 하다가 어깨 다리가 아파서 그만뒀어요.”

“지금 다니는 병원에서는 담배 끊으라는 말은 안 합니까?”

“거긴 아예 물어보지도 않던데요.”

“의사가 피우니까 끊으라고 안 하는 거 아녜요? 오전에 남자 환자 하나는 나한테 야단 맞고 엉엉 울고 갔어요.”

“선생님! 술 담배도 안 하고 사람이 무슨 재미로 살아요?”

“아저씨는 안 계세요?”

“죽었어요.”


그 뒤로도 한참을 야단을 맞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선생님, 자꾸 그러시니까 식은땀이 줄줄 흐르네요.”

“왜 자식만 챙기고 본인은 안 챙겨요? 건강 상태가 나빠지면 후회할 텐데.”


의사 선생님은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 듯 뜸을 들이다가 그냥 “가세요” 했다.


나도 안다. 살고 싶지 않아 자포자기까지 했던 사람 하나 회생시키려는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모르긴 해도 그 양반 신조가 ‘내 병원에 오는 환자 모두 건강하게 만들겠다’ 같다.


나도 마음 같아서야 그 병원에 계속 가고 싶다. 담배 끊으라는 말만 안 한다면. 담배 때문에 뭔 일이 나면 그건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내 나름은 담배를 줄이려고 노력 중이고 약도 열심히 먹고 운동도 한다.


그래도 선생님! 저 담배는 못 끊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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