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원래 그런 아이가 아니었어.
서율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했을 때 그리고 의도하는 것이 제지되었을 때 울거나 보챕니다. 아이들의 이러한 경향성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처음에는 혈액형과 같이 아이들의 타고난 성향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서율이를 두고 “고집이 보통이 넘네.” 철학관에서 이름을 지었을 때는 “고집이 장난이 아닐 겁니다.” 관상을 볼 줄 아는 아버지도 “곳간이 가득 차도 나오지 않겠다. 고집도 있고, 욕심도 많은 상이야.”라고 했지요.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건 아니지만 고집스럽다는 이야기가 귀에 딱지가 앉을 무렵 저는 그렇게 믿으며 매일 아이를 만났습니다. “그래 서율이는 원래 그런 아이야.”
마트 장난감 코너에 가면 정말 혼이 쏙 빠집니다. 그 코너를 피해갈 수도 있지만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아이와의 담판이기에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혔지요. 카트에서 내려와 장난감 코너를 종횡무진하며 장난감 박스를 들고 다니다 다른 관심거리가 생기자 내팽개치고 다른 물건을 집어 들고 난장판을 만들었습니다. “서율아 이건 너의 것이 아니야. 눈으로만 보도록 하자.”라고 부탁했지만 뒤로 나자빠졌지요. 양육서에서 배운 대로 나자빠진 아이로부터 떨어져봤지만 오히려 신이나 더 활개를 치고 다녔습니다. 이런 사태를 겪고 있으니 ‘우리 아이만 그런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원래 그런 아이가 맞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생득적 경향, 부모의 길들임 속에서 싹튼다.
태어난 순간 결정돼 바꿀 수 없는 아이의 성향이 생물학적 경향성이라고 한다면 생득적 경향성, 즉 살면서 득한 삶의 경향성이 아이를 바꿀 순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빠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면서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이었지요. 지금도 엄마들 사이에서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것 중 정해진 시간에만 수유를 하는 것이 좋은지? 아기가 배가 고플 때마다 줘야 할지? 에 대해 고민은 해보지도 않았습니다. 배고픈 낌새가 보이면 그냥 입에 갖다 꽂았습니다.
책 「프랑스 아이처럼」의 저자도 저와 같았는데 이는 아이에게 차키를 넘겨 준 것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아이가 절제할 수 있는 기회를 부모가 박탈하는 것이라는 거지요. 프랑스 아이들은 통상 오전 8시, 정오, 오후 4시, 오후 8시에 먹는다고 합니다. ‘먹이기(feeds)’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수유가 아닌 식사라고 하며 생후 4개월 무렵부터 평생 맞춰 살아갈 식사 일정을 따르게 합니다. 즉, 아이들은 생득적 경향성을 가지는 것이죠.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월터 미셸 박사의 마시멜로 실험을 잠시 보겠습니다. 네다섯 살 아이를 탁자 위에 마시멜로가 놓은 방으로 데리고 가서 ‘잠깐 자리를 비울 것이며 돌아 올 때 까지 마사멜로를 먹지 않으면 하나 더 주겠다,’고 하는 실험인데요. 6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 실험에 참가한 653명의 아이들 중 참아낸 아이는 1/3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이 실험의 백미는 역추적인데 즉각적 만족지연능력이 있는 아이들은 집중과 추론능력이 우수했고, 스트레스 상황 대처능력이 뛰어나며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갖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서 수유시간이 정해져있고, 절제를 통해 그것을 극복할 기회를 부여 받은 아이들의 경우 원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얻지 못해도 신기할 만큼 침착하다고 하는데 공공장소에서 어른들과 함께 식사하고, 차분한 아이들을 보면 그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식당에 놀이방이 있는 우리나라와는 상당히 비교되지요. 우리나라 육아 방식이 우수한 면도 있겠지만 이 절제 면에서는 열등감이 느껴집니다.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주는 것이 보통 우리나라의 방식이니 말이죠.
말랑말랑한 생득적 경향성
내가 아이를 정말 잘못 키웠다며 좌절하고 있을 무렵 ‘아니야. 늦지 않았어.’라는 내면의 울림으로 식사시간을 통제하고 밤중에 먹는 우유를 없애버렸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3일 밤을 울어 아내와 저는 잠을 설쳤지만 아이는 적응했습니다. 강압적이기보다는 부탁에 가까웠지요. 그 이후 자기 전 냉장고를 열고,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빼앗고, 마트에서 산 물건을 계산하기 전 먹어야 한다는 서율이에게 정중히 부탁하고 왜 안 되는지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퇴적된 삶의 단층이 겹겹이 쌓여 삶의 무게에 짓이겨지면 그래도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지 않을까요? 아이를 망치고 싶다면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릇 아빠란 약간의 좌절의 경험을 통해 바닥을 치고 더 높이 올라 갈 수 있는 저항력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아닐까요?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공주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입사해 포항 구룡포 어촌마을에서「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마을 만들기」를 수행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이다. 외동아들인 탓일까?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활 4년 동안 비영리민간단체를 이끌며 아이들을 돌봤다. 그리고 유치원교사와 결혼해 딸 바보가 된 그는 “한 아이를 키우는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철학을 현장에서 녹여내는 사회사업가이기도 하다. 앞으로 아이와 함께 유쾌한 모험을 기대해 볼 만한 아빠유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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