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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레오 Feb 10. 2017

[아빠정명학] 깨어있는 아빠가 아이를 밝힌다.

"우리가 깨어 있을 때만 날이 밝는다." 헨리 데이빗 소루우 인용 ⓒ문선종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방바닥과 한 몸이 되는 나에게 아내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주말이라도 아이랑 같이 놀아줘야지 뭐하는 짓이야?” 저 세렝게티 초원의 숫 사자들이 언덕에서 광야를 바라보는 것처럼 아빠들의 TV시청도 그와 다를 바 없다며 스스로를 대변했었다. 하지만 마음 한 편으로 내가 아이와 정말 잘 마주하고 있는 건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퇴근길, 정말 재미있게 놀아줘야지 늘 다짐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우리가 깨어 있을 때만 날이 밝는다.”는 소로우의 말처럼 아이와 함께 있다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듯 깨어있는 아빠가 돼야 아이와 밝은 날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기에 그런 아빠가 되자고 생각을 고쳤다. 그렇다면 깨어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깨어있는 아빠란 무엇인가?


책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우리가 어떠한 공간에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 공간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신체기능이 작동하고, 같은 공간에 숨 쉬고 있다고 해서 정말로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당신 앞에서 아빠정명학 강의를 한다고 했을 때 당신의 육체는 앉아 있지만 “오늘 저녁에는 뭘 먹지?”라며 관념이 다른 곳에 있다면 나는 당신과 함께 있지 않는 것이다. 사실 퇴근길에 “집에 가면 서율이랑 신나게 놀아줘야지!” 다짐하지만 막상 집에 오면 집안일 생각, 내일까지 제출해야 할 업무생각, 얼른 아이를 재우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메운다. 즉, 매 순간 아이를 대하면서 시공간을 초월해 다른 곳에서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이 과거든 미래든 우리는 바로 지금 아이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 아마 그것이 깨어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과 ‘나’ 자신이라는 두 가지가 만났을 때 비로소 깨어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깨어있는 아빠, 아이를 밝힌다.

서율이와 엄마.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추구한다는 것은 기적같은 일이다. ⓒ문선종


가족들과 함께 간 삼겹살집. 역시나 서율이는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런 녀석을 그윽한 눈길로 지켜보는 아이가 있었으니 딸 아이보다 2살 정도 많은 오빠다. 두 손으로는 무언가 만지 작 거라며 거리를 좁혀온다. 그리고 서율이의 환심을 사려는 듯 손에 있는 물건으로 유혹한다. 그게 뭐냐는 질문에 아이는 “할머니가 사준 자동차”라고 짧게 답했다. 서율이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남자아이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버튼을 누르더니 돌아가는 바퀴를 내보이며 자랑한다. 서율이가 관심을 보이자 남자아이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장난감을 건낸다. 서율이가 남자아이의 장난감을 받아들고 호기심 어린 눈빛과 손짓으로 장난감을 탐색하자 잠시 후 남자아이의 미소는 사라지고 장난감을 낚아챘다. 서율이의 울음소리가 삼겹살 굽는 냄새와 함께 진동했다. 


고기가 무르익어가는 군침 도는 불편한 상황 속에서 남자아이의 순수한 마음에 감탄을 했다. 서율이에게 장난감을 준 본질적인 이유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 누군가 자신을 좋아해주기를 갈망한데서 기인한 행동이었다. 장난감이 좋아? 내가 좋아? 서율이가 장난감에 신경을 쏟게 되자, 자신이 받아야 할 관심을 장난감이 가져갔기에 도로 빼앗은 것이다. 나는 남자아이에게 “아기가 장난감에만 관심 가져서 네가 속상했구나. 네가 우리 서율이를 즐겁게 해주려고 그랬는데 말이야. 고마워.” 라고 말했다. 그리고 서율이에게는 오빠가 장난감을 빼앗은 이유를 일러주었다. “네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장난감에만 너무 관심을 가져서 질투가 났데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빼앗은 거래.”


모든 아이들은 이 남자아이와 같다. 관심 받는 것은 아이들에게 생존과 직결된 것이기에 중요하다. 이는 발달의 신호탄이다. 우리가 깨어있다면 전지적 작가시점까지는 아니어도 못 봤던 부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아동 발달단계를 공부하지 않아도 내 아이가 스스로 이렇게 크고 있구나! 발달의 문턱을 넘나들 때 감탄사를 날리는 순간들 있지않는가? 깨어있는 아빠라면 아아의 힘을 확인하고 더 한 걸음 내딛게 할 수 있지 않을까? 1세에서 1세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이 흉내다. 복사기처럼 따라하는데 이를 귀찮게 여길 것인지? 깨어있음으로 마주 할 것인지? 무릇 아빠란 지금 깨어있는 자신을 아이와 마주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아빠는 가히 아이의 삶을 곳곳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여기서 아이의 그림자를 쫒아보자.


깨어있다는 것은 매순간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아빠의 3분육아' 저자 오타토시마사는  단 3분이면 된다고 한다. 아이의 집중력은 오래되지 않기에 짧은 시간 집중해서 아이와 대면하라고 조언하는데 좋은 방법이다.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면 말이다. 모든 상념을 잠시 접어두고, 온전한 지금의 나를 아이와 마주하게 해보자. 그리고 아이의 그림자를 쫓아가보자. 아이의 모든 행동과 말, 생각 등의 이면에는 목적이 숨어 있다. 아이들의 모습을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보는 것이다.

서율이의 관심법은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 깨어있는 아빠라면 이를 기뻐하며 받아들일 수 있다. ⓒ문선종


한번은 서율이가 자고 있는 나의 얼굴에 요구르트를 쏟아 부은 적이 있다. 자다가 봉변을 당해 짜증을 냈는데 알고 보니 아빠 입에 넣어 주려다 그렇게 된 것이었다. 나는 아이의 발걸음과 몸짓만 봐도 그림자를 쫓을 수 있는 아빠를 꿈꾸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캄캄한 어둠속에서 아이의 울음소리로 분유, 기저귀, 잠투정인지를 필터링하는 귀신같은 엄마들을 뛰어 넘어서기 위해서는 우리 아빠들도 지금 여기서 아이의 그림자를 발 빠르게 쫓을 필요가 있다. 아빠란 지금 깨어있는 자신을 아이와 마주하게 하는 사람이다.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공주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입사해 포항 구룡포 어촌마을에서「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마을 만들기」를 수행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이다. 외동아들인 탓일까?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활 4년 동안 비영리민간단체를 이끌며 아이들을 돌봤다. 그리고 유치원교사와 결혼해 딸 바보가 된 그는 “한 아이를 키우는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철학을 현장에서 녹여내는 사회사업가이기도 하다. 앞으로 아이와 함께 유쾌한 모험을 기대해 볼 만한 아빠유망주. 
 

칼럼니스트 문선종 moonsj8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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