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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레오 Jan 19. 2020

당신이 살아가는 공간

'삶의 공간 속' 희망을 찾아야 할 때

작년 3월 서울로 발령을 받아 지난 10개월 동안 깨달은 바가 있어 정리해본다. 지방에 살 때는 ‘버스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출퇴근 버스 안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를 소재로 글을 썼었다. 다시 한번 그럴 요량이었지만 이곳의 공기는 사뭇 달랐다. 모두 신경이 날카롭다. 입석금지라고 적혀있지만 만원이 넘는 버스와 김밥 옆구리 터질 것 같은 지옥철을 겪어보니 ‘관찰의 인문학’ 따위는커녕 나의 신경 또한 날마다 날이 다듬어져가고 있었다. 1시간 동안 몸을 담아야 하는 버스 의자는 비좁아 몸을 구겨 넣는다는 표현이 적합했다. 서로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며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공간이 만드는 인간혐오

특히, 지하철 출퇴근길은 ‘헬조선’이라는 말을 실감케 했다. 아침마다 불쾌함에 서로 싸우는 모습 속에서 “인간혐오의 시발점은 지하철이다”는 극단적인 결론에 다다랐다. 작년 12월 기준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50%의 문턱을 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문뜩 20년 20일을 감옥에서 지낸 故 신영복 교수가 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떠올랐다. 그의 책에서는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은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라며 회고한다. 우리의 출퇴근길은 감옥 속의 열대야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한정적인 공간에 넘쳐나는 사람들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혐오’ 속에 서있는 것이다. 


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

파란 방과 빨간 방 실험이 있다. A팀과 B팀으로 그룹을 나누고, A팀은 빨간 방에 B팀은 파란 방에 들어가게 하고, 20분 정도가 지났다고 생각할 때 그 방을 나오라는 미션을 부여했다. A팀은 16분 만에 B팀은 24분이 지나서 방에서 나왔다. 빨간 방은 교감신경을 자극해 사람을 불안, 초조하게 만든다. 이는 좁은 공간 안에 있는 것과 같다. 파란 방은 부교감신경을 자극해 편암함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데 이는 넓은 공간에서 있는 것과 같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의 조앤 마이어스-레비 교수팀은 천장의 높이를 2m 40cm, 2m 70cm, 3m로 30cm씩 다르게 한 후 실험 참가자들에게 창의적 문제를 풀게 했다. 결론적으로 천장의 높이가 높을수록 창의적인 문제를 잘 풀었다. 책 <세상에 없던 생각>에서 건축가 김찬중은 “동그란 집에선 사람들이 동그래지고, 네모난 집에선 네모가 된다”며 공간이 사람을 바꾼다고 조언했다. 공간의 크기와 배치, 동선 등의 요소들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포항 지진 당시 좁은 한 칸의 방을 세 식구가 공유했다. ⓒ문쓰팩토리

지난 2017년 11월 포항 지진 당시 진앙지에서 불과 700m 정도 떨어진 곳에 살았던 우리 가족은 불행히 이재민 피난소로 갈 수 없는 상황이라 집 앞 슬레이트집으로 이동해 여진이 잠잠해지기를 바라며 한 달이 넘는 시간을 지냈다. 그 좁은 공간에 3집 식구 총 9명이 생활을 하면서 마치 빨간 방에 있는 것과 같이 불안과 초조로 신경체계는 공회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간이 영유해야 할 최소한의 주거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인간다운 공간의 조건

그릇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빈 공간’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있는 공간이다.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에서 공간과 희망이 일치했을 때, 그곳을 ‘집’이라 부를 수 있다 말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전국 주거빈곤 아동은 94만 4천 명(전체 아동의 9.7%), 그중에서 주택의 면적, 방 개수 등 최저 주거기준에 미달한 아동이 85만 8천 명이라고 한다. 이 아이들은 그 공간에 희망을 둘 수 있을까? 매일 아침 만원이 넘는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희망을 앉힐 자리가 있을까? 오늘의 칼럼은 어떠한 해답도 제시할 수 없는 푸념이 되고 말았다.


※육아 전문 No.1 언론사 베이비뉴스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아빠 칼럼니스트 문선종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를 두고 있다. 현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실에서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을 알리고 있다. 그는 실존주의를 기반한 인간의 주체성과 경험을 중심으로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moons8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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