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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레오 Feb 28. 2020

코로나19 위기, 그래도 아이들과 사과나무를 심습니다.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일상'의 과업들을 늘 이어나가는 것

코로나 19 감염증 확산 우려로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은 연기되고, 둘째의 어린이집은 운영은 멈췄다. 학교에서는 긴급 돌봄 공지와 함께 가족 돌봄 휴가제가 있다며 최장 10일 무급휴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2017년 5.4 포항 지진 재난을 겪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지진 당시 아수라장이 된 집. 재난은 가장 먼저 일상을 파괴한다. ⓒ문선종

지난 2017년 11월 포항 지진 당시 첫째가 다니던 어린이집이 완파돼 갈 곳을 잃었다. 집안에 연로한 어른들이 계셔서 대피소로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 사회적 고립과 서비스 단절로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가장 극심한 정서적 불안을 보인 첫째는 당시 여섯 살로, 여진에 대한 불안으로 손가락 빨기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코로나19로 아이들은 꼼짝없이 집에 갇혀 지내야 하는 상황이라 답답함을 호소하는 가정이 많다. 확진자와 자가격리자가 계속해서 늘고 있고, 상황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에 따라 기존에 긴밀하게 유지되고 있던 관계망이 멈추고 일상이 마비됐다.


사회적 단절로 인한 고립감이 가장 큰 정서적 어려움이다. 우울과 불안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된다면 트라우마로 자리 잡을 수 있어 지혜롭게 위기를 맞을 필요가 있다. 포항 지진 재난 당시 가장 힘들었던 일은, 긍정적인 태도로 일상적인 일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일상생활에 반드시 복귀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 위한 아빠의 역할이었지만, 고백하자면 나조차도 두렵고 무서웠다.      



가장 보통의 일상이 코로나19로 흔들리면서, 심하면 세상과 ‘단절’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 수준이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감염에 대한 불안과 걱정, 바이러스 전파자에 대한 분노와 소외, 특정 지역을 명명하며 발생하는 사회적 낙인, 고립에 대한 우울과 같이 입체적인 정서적 어려움이 발생한다. 이런 감정들이 장기화되면 내재화되고, 심하면 행동과 증상으로 나타난다.


◇ 오늘 우리가 심어야 하는 '사과나무'는 무엇인가?

지난 22일 3돌을 맞은 둘째는 조용한 생일을 보냈다. ⓒ문선종

재난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우리가 늘 마주하던 가장 보통의 지루한 일상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새삼 느낄 것이다. 심리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늘 해오던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상황에 휩쓸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재난 뉴스를 쉴 틈 없이 보는 사람이 있다. 후자는 재난 상황에서도 '루틴'한 일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취미든 공부든 업무이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아이들이 중요하다. 학교와 어린이집에서 늘 하던 것들을 집에서 이어가야 한다. 하루 시간표를 만들고,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을 만들어 놀이와 과업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그 속에서 잠깐의 몰입으로 탈선한 우리의 일상을 평행선의 선로 위로 옮겨 한 걸음씩 나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언론보도에 집중하다 보면 극단적인 생각과 증오감이 올라온다. 전체적인 상황과 지역적인 상황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모니터링하는 시간을 따로 두고, 과장된 소식과 '가짜 뉴스'가 일상의 주도권을 빼앗아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늘 해오던 일상적인 일들을 하며 양질의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격리돼 있다면 단절감을 차단하는 SNS 활동이나 지인과의 통화, 필요하다면 상담가들과의 대화도 필요하다.


포항 재난 당시 가장 큰 두려움은 진도 7 이상의 지진이 올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주장이었다. 코로나19에 대해서 나오는 전망도 명과 암이 있다. 중요한 것은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 것처럼, 지금 우리 삶에서 그 '사과나무'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과나무까지는 아니지만... 아이들과 방울토마토와 오이를 심었다. ⓒ문선종

지금 정부와 지자체는 촌각을 다투며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들이 있기에 아이들의 두 눈망울에서 내일 있을 가장 보통의 일상을 그릴 수 있다. 다음 주 아이들의 교육과 돌봄 체계에 공백이 생겨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다시 맞이할 일상을 위해 기꺼이 아이들을 돌보며 묵묵히 우리의 자리를 지켜나가기를 다짐해본다. 


아빠 칼럼니스트 문선종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를 두고 있다. 현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실에서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을 알리고 있다. 그는 실존주의를 기반한 인간의 주체성과 경험을 중심으로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moons8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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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전문 No.1 언론사 베이비뉴스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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