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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레오 Mar 13. 2020

실존의 망각자 다스만(Das Man)으로 키우지 않기

스펙이 아닌 실존을 키워야 할 때

“제가 말이죠. 요즘 너무 일을 퍼질러놔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이러다 보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밑에 후배들도 힘들어해요. 뭔가 한 가지를 집중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를 하는 성향이라 고민이 많아요”


앞서 한 말은 대학시절 교수님께 고민상담을 한 내용이다. 젊은 시절 한 이야기가 복선이 되어 돌아왔다. 첫째가 나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시절 비영리단체에서 많은 일을 했다. 담당교수에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지역사회를 종횡무진하며 활동했다. 지역의 기관들이 나를 통하지 않고는 자원봉사자를 구할 수 없을 정도로 광폭의 활동을 보이며 그 바닥을 접수했고, 새로운 사업을 펼치기 바빴다. 나는 기본적으로 글을 썼고, 후배들을 즐겨 상담을 했으며, 아마추어 사진작가를 자청하며 웹디자인기능사를 따기도 했다. 학술제가 다가오면 술 약속을 빌미로 포스터를 만들고, 영상을 제작해주기도 했다. 이런 나를 보고 아버지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사람이 재주가 많으면 굶어 죽는다’고 말이다. 지금도 이렇게 살고 있지만 굶지는 않고, 근근이 입에 풀칠은 하고 있다. 하지만 2020년 인생계획을 정리하면서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의 필살기는 뭐지?’ 나는 뭘 잘하지? 그렇다. 마르틴 하이데거가 말한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선택하지 못하는 ‘다스 만(Das Man)’인 것이다. ‘다스 만(Das Man)’은 애매함 속에서 자기와 직면하지 않고, 다수의 익명으로 살아가는 실존의 망각자를 일컫는다. 이것이 좋아 보여 이것을 하고, 저것이 좋아 보여 저것을 하는 방황을 해온 것이다. 


37세에 맞은 질풍노도의 시기

이것저것 많은 것을 하려는 첫째로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 ⓒ문선종

24살 아직 꿈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나와 8살 서율이의 모습이 닮았다. 13년 전 내 삶의 무의미함과 함께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건가?’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살아야 하나?’ 늦깎이 사춘기가 나를 삼킨 것이다. 다스만과 같이 애매함 속에서 실존을 망각하며 살아간다면 인생의 매 순간이 질풍노도의 시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아이가 해보고 싶은 것은 최대한 할 수 있도록 조력하고 있다. 경험이 곧 실존이라는 믿음으로 자신의 주관의 세계에 다양한 관점들을 불어넣고 싶은 아빠의 마음이다. 나는 군대를 전역한 24세까지 뚜렷한 꿈이 없었다. 막연하게 '공무원' 시험을 봐야지 하며 복학했다. 소중한 인생을 왜 이렇게 무책임하게 끌고 온 것인가? 인생에서 많은 경험을 쌓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모험과 탐험이 필요했던 것이다. 어릴 적 많은 경험을 해보지 못한 것과 견문을 넓힐 수 있는 독서와는 담을 쌓고 살아온 것을 후회했다. 이런 자각 후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닥치는 대로 한 것이다. 이것은 스펙을 쌓는 일과는 차원이 다른 실존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으며 ‘이것이냐? 저것이냐?’ 중 오직 나의 선택으로 한 걸음 나아갈 삶의 북극성을 찾는 일이었다.     


지금의 경험으로 실존은 만들어진다.

집중하면 엄마, 아빠도 몰라본다. ⓒ문선종

무언가를 깊게 파기 위해서는 우선 넓게 파야한다. 그 넓은 범위 가운데 자신이 재미있는 분야가 있으면 스스로 파게 만들어야 한다. 서율이는 최근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미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며 통섭해 나가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화가가 되고 싶다고 거기에 방점을 찍어 버리면 안 된다. 좋아하는 분야를 중심으로 다른 학문을 넓게 접할 수 있도록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     


서율이도 언젠가 2차 성징과 함께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을 것이다. 이 시기의 뇌는 변곡점을 맞아 그동안 뇌에서 만들어온 신경망들이 재편성한다. 내가 재미없었던 분야는 탄탄한 시냅스 연결망을 만들지 못해 해체되는 것이다. 어릴 적 피아노를 잘 치던 사람이 성인이 돼서 못 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를 직관적으로 만드는 기반이 형성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분야는 시냅스가 탄탄하게 연결돼 나이를 먹더라도 더 강화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내 몸과 뇌가 기억하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즐겁게 만들어 실존적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아빠 칼럼니스트 문선종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를 두고 있다. 현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실에서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을 알리고 있다. 그는 실존주의를 기반한 인간의 주체성과 경험을 중심으로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moons84@naver.com


※유튜브에서 문쓰팩토리 채널을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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