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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Mar 07. 2021

엄마, 약이 왜 이렇게 많아졌어?

늦둥이가 부모님 약 서랍을 만든 이유

늦둥이로 부모님과 함께 병원에 다닌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우리 부모님의 병원 이력은 화려하다. 대강 적어보자면 이렇다.


엄마(41년생) - 뇌경색 두 번 앓음 (스탠트 시술 받음) / 심장 혈관 약해져 스탠트 시술 받음 / 고혈압 / 허리에 고질병이 있고 재작년에 허리 쪽 뼈가 부스러져 입원한 적 있음. 현재 보행기가 있어야 다닐 수 있음 / 한쪽 귀의 급격한 청력 저하로 보청기 착용함.  2021년 3월 1주 기준으로 몇 주 후 귀 천공 수술 예정 / 그 외 - 눈 (2020년 백내장 수술) / 골다공증 약 복용 (정형외과 정기적으로 방문) / 역류성 식도염 등등 기억조차 나지 않는 여러 다양한 질병을 앓고 병원을 자주 드나드심 / ** 현재 외래 진료를 주기적으로 가는 과는 신경외과 (뇌와 허리 따로 봄) / 순환기내과 (심장) / 안과 / 이비인후과 / 정형외과
아버지(40년생) - 2021년 3월 치매 진단 받음 / 당뇨, 고혈압 있음. / 치아 관리가 잘 안 돼서 2020년에 치과에서 대대적으로 치료 받음. 2021년 4월부터 또 5-6주간 치료 예정 / 2021년 3월에 대상포진 앓았음 / **현재 주기적으로 가는 과는 신경과 / 내분비내과 / 치과


대충 짐작할 수 있겠지만 병원 갈 일, 참 많다. 대충 어디가 어딘지 다 안다.


엄마는 한쪽 귀가 안 들리시다 보니 잘 못 들으시고, 아버지는 치매 초기인만큼 이해력이 떨어지신다. 몇 년 전만 해도 두분은 각자, 병원에 가실 수 있었다. 최근까지는 두 분이 같이 가시면 그래도 괜찮았다. 그러나.. 이제 두 분만 보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병원이란 곳은 불친절하다. 말도 어려워서 분명 아는 병인데 한참 들어도 모르겠는 경우도 있다. 검사실은 왜 그리 많고 모두 흩어져 있는지.. 어르신들은 길을 잃기 일쑤다. 직원들은 늘 너무나도 바쁘다. 물론 갈수록 좋아지고 있고, 친절하고 좋은 분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어르신들에게 병원은 어려운 곳이다. 젊은 사람에게도 병원은 어렵고, 견디기 힘든 곳인데 어르신들에겐 오죽할까. 그런 이유로 우리 부모님에겐 병원 갈 때 꼭 보호자가 필요하고 그건 내 몫이기에 대체 휴가를 쓰고 병원에 가는 일이 잦다.  


최근엔 코로나 때문에 병원 가는 일이  쉽지 않다. 들어갈 때마다 출입증을 끊어야 하고, 어르신들끼리 가면 들어갈 때부터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다. 코로나로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 가는  위험하기도 해서 약만 타도   같은 경우엔 내가 가족관계증명서와  신분증, 부모님 신분증을 들고 가서 보호자 대진을 받는다. 정기적으로 드시는 약만 타가면 되는 경우엔 해당 과에 전화로 문의하면 보호자 대진 시에 필요한 준비물, 서류를 알려준다.


그렇게 진료를 받고 약을 타오면서 먼저 드는 생각은... '많다'.


약이.. 점점 더 많아진다. 엄마도, 아버지도.


이게 다 맛있는 음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한테 농담으로 엄마는 약 부자네, 아버지도 약 부자네, 약만 드셔도 배부르겠어, 하면서 무거움을 덜어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가슴 한 켠의 씁쓸함마저 덜어내기는 어렵더라.


아무튼, 약이 정말 많다.


정기적으로 가는 과도 많고 각 과마다 약도 많다. 한 봉지에 같이 포장돼 있으면 좋은데 따로 통으로 줘서 별도로 챙겨 먹어야 하는 약들도 있다. 나도 헷갈리는데 부모님은 오죽할까. 중복해서 먹으면 안 되는 약도 많기에 신경이 쓰였다.


"내가 오늘 약을 먹었나, 안 먹었나." 부모님이 이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가슴이 콕콕 쑤셨다.


고민하다가 이런 약서랍을 집에 만들었다.

엄마의 약서랍. 서랍을 열어 때마다 꺼내 드시면 되고 드셨는지 안 드셨는지도 확인 가능하다.
약서랍 맨 위에는 때마다 어떤 과의 약을 먹어야 하는지 적어두었다.

투명한 서랍장을 사서 만든 요일과 식사 때를 나누어서 서랍에 정리했다. 병원에 동행하는 날이나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내가 약을 서랍에 전부 정리한다. 그러면 요일과 식사 시간을 고려해 꺼내 드시면 된다. 이런 식으로 약을 분류해두면 그때그때 서랍을 열어서 약을 드시면 되고,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도 서랍을 열어보면 확인 가능하다. 서랍장 맨 위에는 누구의 것인지, 때마다 어떤 과의 약을 먹어야 하는지 적혀있다. 드실 때 혹시 약이 부족하거나 뭔가 잘못 놓인 것 같으면 약봉지에 있는 과 이름과 대조해보면 된다.


어떻게 약을 잊지 않고 드시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만든 서랍인데, 꽤 유용하다. 우리 부모님처럼 약이 너무 많아지신 분들을 돌보고 계신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시중에 약달력 같은 것들도 나와있어서 처음에는 사려고 했는데, 우리 부모님의 경우는 약달력에 끼워두기엔 약이 너무 많고 이게 더 직관적이어서 이 방식으로 드시게 하고 있다. 혹시 주변에 돌보고 계신 분이 드시는 약이 너무 많아졌다면, 그래서 헷갈린다면 이렇게 해보시길 추천드린다.


늦둥이는 오늘도 부모님 약 챙기기에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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