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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Feb 28. 2022

아버지의 목욕

"깃털같이 날아갈 것 같으다."

올해 첫날,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막내 동생이셨다.


원래도 파킨슨병을 앓고 계시긴 했지만,

워낙 예전부터 운동을 하시던 분이라

그래도 관리를 잘 해오셨고,

인지기능도 괜찮으셨기 때문에

오래 사실 거라 생각했었다.

그렇게 갑자기 상태가 악화돼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퇴원 소식만 기다리던 우리 가족은

작은 아버지가 갑자기 '오늘,내일' 하신다는 소식에 아득해졌다.


결국 새해 첫날. 오후 5시쯤,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급히 부모님을 모시고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겨울이라 날은 벌써 어둑어둑해진 새해 첫날 저녁이었다.


택시 안은 침통한 분위기로 가득 찼다.

동생을 잃어버린 아버지는 아이처럼 우셨다.


“가만히 있는데도, 아무 생각을 안 해도

그냥 자꾸 눈물이 나서 그래.”


아버지는 그냥, 그저 눈물이 흐른다고 하셨다.

하얀 마스크 위로 눈물이 뚝뚝 흘렀다.

아버지가 그렇게 우시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어떤 위로도 가 닿지 않는 것 같았다.


병원에 도착해 작은 어머니와

사촌 동생들을 만난 아버지는

마지막에 작은 아버지가

‘우리 큰형’을 언급하셨다는 이야기에,

가슴속에서 무언가 터져 나오시는 듯,

다시 휘청이며 우셨다.


그날은  눈이 참 많이 왔다. (사진: unsplash)

작은 아버지가 가신 다음 날.

눈이 펑펑 내렸다.

아버지 대신 내가 사흘간 빈소를 지켰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빈소에만 겨우 들르실 수 있는 상황이었다.


눈길에 걷기 힘든 엄마는 빈소 방문도 힘들었지만,

친절한 병원 직원의 도움으로

휠체어와 폐쇄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겨우 빈소에 다녀가셨다.


작은 아버지 댁과는

워낙 가까운 거리에 살아서 왕래가 잦았다.

작은 아버지는 가끔 우리 집에 들러

엄마에게 용돈을 주시곤 했다.

젊었을 때는 권투 챔피언을 하셨을 만큼

힘세고 불 같은 '삼촌'이었던 작은 아버지였다.

거짓말처럼 시간이 흐르고

자꾸만 그 등이 작아진다, 싶었는데

그렇게 허망하게 가셨다.


빈소는 동네에 있는 작은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사흘 동안 그곳을 오가며

작은 아버지의 입관식과 발인,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지켜보았다.


새삼, 죽음이 한없이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우리 집 문을 두드리시던

작은 아버지셨는데.


그렇게 장례를 치르고 돌아왔다.


동생의 죽음을 겪으신 아버지는

한동안 기운이 없으셨다.

낮에는 오래도록 주무시기만 했다.

거실에 걸려있던 작은 아버지 댁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은 당장 치우라고 하셨다.

얼굴만 봐도 괴롭다고 하셨다.

거실에 가만히 앉아계시는데

아버지 어깨에 내려앉은 슬픔의 무게가 보일 정도였다.


그러시다가도 상태가 안 좋은 날에는,

‘작은 아버지는 아직 퇴원을 안했냐고,

여태 소식이 없냐고’ 묻기도 하셨다.

그만큼 동생의 죽음이란

아버지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나 보다.

물론, 치매라는 병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잊고 싶었기에,

현실을 자꾸만 부정하고 싶으셨던 건 아니었을까.


그럴 때면 엄마는

‘ㅇㅇ 아버지 하늘나라 갔잖아.’라고

안타까움을 담아 답해드리곤 했다.


아버지를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아. 목욕을 시켜드려야겠다,

싶었다.


치매를 앓으시면서

아버지는 씻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다.

매우 귀찮아하시고, 싫어하시고,

짜증 내시는 경우도 많았다.

기본적인 세수는 잘하시지만,

목욕이나 양치는 스스로 하기 싫어하셨다.

그래서 내가 자연스럽게 아버지 목욕을 시켜드리게 되었다.

그나마 딸인 내 말은 들으시기 때문에.


목욕하자고 하면

언제나 싫어하시지만

끝나고 나면

언제나 너무 기분 좋아하시는 아버지다.


처음 목욕을 시켜드리기 전에는

내가 아들도 아니고 딸이다 보니

서로 불편할까 걱정이 많았지만

생각보다 금방 익숙해졌다.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를 둘러싼 슬픔,

어두움을 조금이나마

씻어 내릴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따뜻하게 목욕하고 보송한 타월을 두를 때.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사진:unsplash)


그렇게 그날의 목욕이 시작되었다.


우선 온풍기를 미리 틀어두어

욕실의 공기를 훈훈하게 덥혀야 한다.

목욕 전에 원하시면 먼저 용변을 보시게 한 후

아버지를 목욕 의자에 앉힌다.

대야에 따뜻한 물을 담아 아버지의 두 발을 담그면

본격적으로 목욕이 시작된다는 신호다.


심장에서 먼 곳부터 샤워기로 따뜻한 물을 뿌린다.

“자, 이제 비누칠할게요.”

아버지의 몸 구석구석에 비누칠을 한다.

그러면서 목욕에 관련된 대화가 오간다.

주로 나의 목욕 협조 요청에 아버지가 응하는 식이다.

“이쪽 팔 살짝 들어보세요.” 같은.

그렇게 비누칠을 하고, 따뜻한 물을 끼얹고,

가볍게 때를 벗겨내고,

다시 따뜻한 물을 몇 번 끼얹다 보면

어느새 ‘하이고, 시원하다.’ 하신다.

최대한 존중하고, 안심시키며 목욕을 진행하려 애쓴다.


다음엔 머리 감기다.

“자, 이제 머리 감을게요.” 말씀드리곤

손으로 물 온도를 체크한다.

“머리에 물 올라가니까 눈 꼭 감으세요.” 한다.

마치 아이처럼 눈을 꼭 감으신

아버지의 머리 위로 따뜻한 물을 끼얹는다.

눈을 감고 계시기 때문에

머리 감는 동안에는

꼭 다음에 뭘 할 건지 미리 이야기해드려야 한다.


“이제 샴푸 할게요.”

“자, 이제 물로 헹굴게요. 눈 꼭 감으시고.”


중간중간에 물 온도 체크는 필수다.

뜨거운지, 괜찮은지. 차가운지.

"아, 온도가 딱 맞아." 하는

그 온도를 서로 이야기하며

잘 맞춰가는 것도 목욕의 재미다.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목욕을 하면

아버지도 잘 따라주신다.

머리를 감겨드리고는 마지막엔 꼭  

아버지가 직접 당신의 두 손으로 세수를 하시게 한다.

마지막으로 발을 닦아드리고 나면 목욕의 과정이 대충 끝난다.


그렇게 그날의 목욕을 마치고 나니

한없이 무겁던 아버지의 얼굴도 한결 가벼워졌다.


몸이라는 게

마음과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깨끗하게 몸을 닦고

새 속옷과 파자마와 셔츠를 입고 난 아버지는

한결 편안해 보였다.


나에게도 왠지 이 목욕의 과정은 위로가 되었다.

아버지가 조금이나마 슬픔에서 벗어나시고

괜찮아지는 모습을 보는 게.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목욕하는 손길에라도

마음을 담을 수 있어 다행이다.


사실 아버지를 목욕시키는 날이 올 줄은

1년 전만 해도 생각조차 못했던 일인데.

어느새 내겐 이상하지 않은 일,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날, 그 목욕으로부터 시간이 꽤 흐른 지금.


여전히 목욕하자고 하면 싫어하시지만,

역시나 다 마치고 나면

"몸이 깃털 같다, 날아갈 것 같으다." 고 하신다.


햇살이 환히 내리는 거실에서

목욕을 마치고

보송보송해진 얼굴로 앉아계신

아버지를 보면

나도 조금은 행복해진다.

아버지의 흰 머리카락 위로

반짝이는 햇살을 보면.

아버지 눈에 아직 기분 좋은 감정이 담기는구나 싶을 때면.


한결 가벼워진 그 얼굴 위로 내리는 햇살을 오래오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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