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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Mar 10. 2021

아파도 엄마니까, 밥 주세요!

늦둥이가 아픈 엄마에게 밥 얻어먹는 이유

오늘도 아주 잘 얻어먹었다.


여든이 넘은 엄마에게 며칠 전부터 김밥을 해달라고 졸라서 결국 맛있는 김밥을  터지도록 얻어먹었다. 매우 보람찬 날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김밥을 만들어주신 엄마에게 따봉을 날렸다.


엄마의 집 김밥.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한 입 물면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신다.


엄마가 그저 엄마가 아닌 환자로 보이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내가 보호자 타이틀을 얻기 시작한 2010년부터였을 것이다. 그때부터 엄마는 참 많은 병을 앓아오셨다. 가장 큰 건 뇌경색이었지만, 지난 글에 썼듯이 병원을 밥 먹듯 드나들었다. 병원이란 곳은 참 신기한 게, 밖에선 괜찮아 보이던 사람도 입원해서 환자복을 입는 순간 몇 배는 무기력해진다. 말 그대로 환자가 된다. 아파서 병원에 들어가지만 병원에 들어가서 환자가 되기도 한다.


엄마는 본래 간호사가 혈관을 못 찾아 주사를 몇 번이고 찔러대도 유쾌하게 '내 피값 내놔'라고 농담하며 간호사의 긴장을 덜어줄 만큼 엄살이 없는 분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병원에 입원해서 환자복을 입으면 정말로 환자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환자의 얼굴이 되었고 환자가 하는 행동을 했다. 그것이 설령 정기적인 추적 검사를 위한 입원이었을지라도. 병원이란 그렇게 무서운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공간에 머무는 일이 늘어날수록, 나도 엄마를 환자로만 보는 날이 늘어갔다.


병원에 입원할 일도, 치료할 일도 많았다. ‘김숙자 환자'로 불리는 엄마는 뇌와 심장의 망가진 혈관에 스탠트 시술을 받았다. 장기를 들어내기도 했다. 내가 '김숙자 환자 보호자분'으로 불린 횟수만큼 엄마가 환자가 되는 날도 늘어만 갔다.


엄마는 그동안 엄마를 설명해주던 많은 정체성을 조금씩 잃어갔다. 여장군 같은 유쾌한 식당 사장님, 귀여운 할머니, 베스트 드라이버, 자전거 라이더, 무엇보다 최고의 엄마... 같은 여러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말이다. 자전거를 타고 장보기를 즐겼던 엄마는, 언젠가부터 자전거를 타지 않게 되었다. 베스트 드라이버로 겁 많은 딸을 조수석에 태우고 액셀을 밟던 엄마는, 언젠가부터 운전대를 놓게 되었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 아픈 곳이 많아진다는 것은 결국 나라는 존재를 이뤄온 말들의 시제가 과거형이 되어가는 것이다. 나의 정체성, 나를 채우던 것들, 나를 이뤄왔던 것들을 하나둘씩 내려놓는 일이다. 옆에서 보니, 그렇더라.


나도 모르게 점점 엄마를 환자로만 대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병원을 벗어나서도 엄마는 언젠가부터 환자로 보였다. 얼굴을 보면 어디 아픈 데는 없어, 몸은 괜찮아, 가 제일 먼저 튀어나왔다. 마치 시한폭탄을 대하듯. 위험요소를 '관리'하듯.  


병원에서 환자가 된 엄마는 병원 밖에서도 돌봐드려야 할 대상이 되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이가 드시니 단순한 은행 업무를 보는 것도 어려워졌고, 공과금 내는 것도, 사람들에게 연락해 일을 조율하는 것도, 집안 청소도 어려운 일이 되는 거였다. 엄마의 환자로서의 정체성에만 집중하게 되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늘어갔다. 나도 모르게 과묵하게 엄마의 많은 일을 대신하는 딸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소한 일도 내가 대신해드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솔직히 말하면 설명하는 것보다 해드리는 게 편한 경우도 많았기에 더 그랬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내게 환자이고 싶을까, 아니면 엄마이고 싶을까.


아버지 때문에 병원 진료를 받던 중 그런 말을 들었다. 보호자가 너무 환자의 일을 대신해주면 그 능력을 잃게 된다고. 본인이 할 수 있는 건 본인이 하게 두어야 한다고. 그래야 그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게 어디 아버지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일까. 엄마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때부터 엄마에게 자주 밥을 얻어먹으러 다닌다. 뭘 해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그럼 엄마는 내 퇴근 시간에 맞춰 음식을 해놓고 기다린다. 잘 걷지도 못해 보행기를 밀면서 집안을 다니는 분이, 팔 한쪽을 싱크대 위에 올려두어야만 중심을 잡고 움직일 수도 있는 분이, 그렇게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낸다. 아주 간이 내 입맛에 딱 맞다. '지금이라도 김밥 몇 줄씩만 말아 아침에 공장 앞에서 팔아보시는 게 어떠냐'는 농담을 건네면 정말 좋아하시며 '이젠 못하지' 한다. 진지하다. 그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우리 엄마. 내가 엄청 맛있어하면서 먹으면 고맙다고 한다. 진짜 맛있어서 맛있게 먹었을 뿐인데 무엇이 그리 고마울까. 그리곤 행복해한다. 딸한테 밥 해주고 잘 먹는 걸 보면 그렇게 행복하다며.

 


저 손으로 얼마나 많은 음식들을 만들어내었을까.


엄마는 환자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엄마를 조금 더 엄마답게 대하자, 생각했다. 밥도 얻어먹고, 자꾸 고민거리를 나누려고 한다. 귀도 잘 안 들리시지만, 내가 얘기하면 연신 고개를 끄덕이시며 진지하게 듣고 나름대로 당신의 의견을 제시하신다.


일이 힘들다고 하면 '원래 일은 힘든 거다'라고 하시며, 당신께서 예전에 옷장사하다가 '쓰리' 맞아서 홀라당 다 날린 이야기를 해주시기도 한다. 이야기는 점점 절정에 다다르며 6.25 때 피난을 나온 이후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엄마가 장사에 얼마나 타고난 분이었는지, 그리고 아버지의 소심함 때문에 얼마나 많은 투자 기회를 잃었는지 등등 활기차게 흘러간다. 그런 이야기를 신나게 하는 그 순간만큼은 엄마는 환자가 아니다. 소싯적 당당하게 제 발로 사무소로 걸어 들어가 '김일녀'에서 '김숙자'로 이름을 바꾼 당찬 소녀로 돌아간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다시 다짐한다. 엄마가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게 하자. 너무 다 도와주지 말자. 그래서 밥만 홀라당 얻어먹고 설거지도 안 하고 온다. 진짜다. 알아서 해~ 하고 온다. 엄마는 주기적으로 다녀야 하는 진료과만 다섯개인, 병원에서는 누가 보기에도 환자인 분이지만,  앞으로도 환자로서의 정체성은 아주 아주 작은 부분으로 느껴지도록 최대한 김숙자 씨의 일들을 그대로 두려고 한다. 엄마로서의 일도 포함해서.


언젠가, 엄마의 99%가 '환자', 혹은 '병'이라는 이름으로 채워지는 그 날이 오더라도 엄마는 엄마다. 김숙자는 김숙자다.


오늘 엄마에게 얻어먹은 집 김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집에서 하기 가장 번거로운 음식 중 하나가 아닌가. 나는 한 번도 집에서 만들어본 적이 없는 그 김밥을 속이 체하도록 열심히 맛있게 먹었다. 행복했다. 아직도 이렇게 맛있는 김밥을 만들어낼 수 있는 분인 걸. 그러니 언제까지라도, 응석도 부리고, 먹고 싶은 것도 얘기하고, 해달라고 졸라대는 늦둥이 자식으로 남겠다. 오늘도 늦둥이는 엄마 밥에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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