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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Apr 25. 2021

엄마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아이처럼 좋아했다

부모님을 위한 안전한 욕실 만들기

3월 초부터 두어 달 동안 부모님을 위한 욕조 찾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싶다는 엄마의 바람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말 필요한 때가 왔기 때문이다. 거동이 불편한 엄마에겐 목욕이 점점 힘든 일이 되어갔고,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로 대중목욕탕 이용은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 계속됐다. 게다가 아버지도 알츠하이머 치매 증상으로 점점 씻기를 귀찮아하시기에 집에 목욕 시스템을 갖추는 게 필요했다. 시스템이라 적으니 너무 거창해 보이지만, 연로한 부모님을 위해선 정말 목욕 ‘시스템’이 필요하다. 욕조가 있었다면 접근 방식이 조금 달라졌을 테지만 없었기 때문에 우선은 욕조부터 찾아야 했다.


욕조를 고려할 때 가장 먼저 걱정한 건 낙상이다. 어르신들의 경우 집에서, 특히 미끄러운 욕실, 화장실에서 넘어져서 낙상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불행히도 많은 경우 그 낙상은 치명상이 된다. 욕조 자체를 들이지 말아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지만, 거동이 가능하실 때 누릴 수 있는 것들은 다 누리게 해드리고 싶었다. 거동이 불편한 엄마가 욕조를 힘들게 넘어가지 않아도 되는 욕조를 찾고 싶었다.


처음에는 문이 달린, 문이 열리는 욕조를 찾아보았지만, 아직 문 열리는 욕조는 보편화돼있지 않았다. 문 열리는 욕조를 찾기는 했지만 문의해본 결과 부모님 집의 욕실에는 맞지 않는 큰 크기였다.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포기했다. 그다음엔 조적 욕조, 히노끼 욕조를 알아보았다. 조적 욕조를 설치하기엔 공간이 좁아 애매했다. 히노끼 욕조는 미끄러울 수 있고 관리가 어렵다는 말에 포기했다.


고심 끝에 최종 선택한 욕조는 이동식 반신 욕조다. 플라스틱 욕조가 아니라 일반 욕조 소재와 같은 소재를 사용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높이가 40cm로 높지 않아서 엄마도 충분히 넘어서 들어갈 수 있었다. 키가 작은 엄마도, 키가 165cm 정도 되는 아버지도 다리를 쭉 뻗을 수 있는 길이라 마음에 들었다. 또 사용하고 나서는 세워서 보관할 수 있어서 좁은 우리 욕실에는 딱 맞았다. 가격도 처음에 생각했던 문 열리는 욕조보다 40배 정도 저렴했다.


좀 더 좋은 이동식 욕조를 찾아봤지만 무거워서 좁은 욕실에 그대로 세워둬야 하니 세면대 사용이 불가한 점, 높이가 너무 높은 점 때문에 포기하고 최종적으로 이 욕조로 선택했다. 대체로 만족스럽다. 다만 물 빼는 곳 마개가 약간 잘못 만들어진 것인지 끼우기가 조금 어렵다. 바로 부드럽게 맞아 들어가지 않아 잘 맞춰야 해서 좀 불편한 점이 아쉽다. 다만 내 기준에서 큰 불편함은 아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조건들이 충족되기에 만족하고 사용 중이다.  


최종 선택한 욕조. 높이가 40cm정도로 낮으면서도 부모님이 다리를 쭉 뻗을 수 있어서 좋았다. 저 토끼 모양 연두색 집게는 샤워기 걸이다. 욕조 옆에 바로 샤워기를 걸어둔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다.


집에 욕조가 생기고 목욕을 할 수 있게 되신 건 좋지만 계속 걱정되는 것은 역시나 안전 문제였다. 그때부터 ‘안전한 욕실 만들기’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우선 욕조 구입 후 바로 미끄럼 방지 매트를 세 개 샀다. 투명한 매트 두 개 중 하나는 욕조 아래에 깔고, 또 다른 하나는 욕조 위에 깔았다. 흰색 매트 하나는 욕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깔았다. 안전바는 필수다. 몇 년 전,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안전바를 욕실에 두 개 설치했다. 하나는 변기 옆에 ㄴ자로 생긴 안전바고, 하나는 현재 욕조 위에 있는 기다란 스테인리스 재질의 안전바다.


이 욕조 위 안전바는  지금 목욕할 때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목욕시키며 아찔한 경험을 했다. 왼손에 스테인리스 욕조 손잡이를 잡고 오른손으로 세면대를 잡고 일어나시려던 엄마가 순간적으로 미끌, 하신 거다. 세면대가 미끄러웠던 것이다. 내가 옆에서 씻겨드리고 있었는데 정말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아찔했다. 너무 놀랐다. 절대로 혼자 계실 때 목욕하시면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안전바도 몇 개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존에 설치한 변기 옆 ㄴ자 모양의 안전바.
새로 설치한 욕조 옆에 갈색 ㅣ자 안전바. 기존에 설치해둔 아래 스테인리스를 잡고 일어나서 갈색 안전바를 잡으시면 된다. 매트는 사용 후 간단히 세척해서 걸어두고 말린다.

바로 다음날 안전바를 추가로 세 개 더 설치했다. 욕실로 들어가는 입구 쪽에 두 개, 욕조가 있는 스테인리스 안전바 위에 하나. (참고로 안전바는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은 경우 훨씬 저렴하게 설치할 수 있다.)


목욕 후 욕실을 정돈하는 것도 중요했다. 물바다가 되면 화장실에 가다 미끄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욕실이 물바다가 되는 것을 최대한 막아야 했다. 일단 ‘물막이’를 구입했다. 단단한 실리콘 소재의 물막이는 설치하면 이름 그대로 물을 막는 벽 역할을 한다. 목욕 후 욕조에서 물이 빠질 때 배수구 반대쪽으로 흘러가 급격히 물바다가 되는 것을 막아준다. 거세게 흘러오던 물이 물막이에 막혀 배수구 쪽으로 가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렇다고 욕실이 물바다가 되는 것을 100% 방지할 순 없지만 그나마 정도가 좀 덜하다.


직접 설치한 물막이. 생각보다 높아서 어느 정도는 막아준다. 그래도 물바다는 피할 수 없긴 하지만 그나마 감당할만한 수준이다. 실리콘 쏘기는 재미나다.

목욕이 끝나면 물을 빼고 어느 정도 내려가길 기다린다. 그 후에 스퀴즈로 물을 밀어낸 후, 바닥에 남은 물은 밀대에 극세사 걸레를 걸어서 훔쳐낸다. 미끄럼 방지 매트를 욕실 전체에 시공하는 것도 생각 중이지만 일단은 이렇게 하고 있다. 아무튼 안전, 안전이 최우선이다. (21.12.11 수정 내용 - > 어르신들 용으로 나온 미끄럼 방지 매트 완전 추천한다. 왜 진작 안 깔았나 후회중이다. 장기요양등급이 있다면 정말 저렴하게 살 수 있고, 직접 깔았는데 맨발로도 안전하게 화장실을 쓰실 수 있어서 매우 매우 만족스럽다. 다만 한번씩 벗겨서 닦아줘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다.) 


어르신들이 몸을 담그는 목욕물 온도도 신경써야 한다. 탐침 온도계를 사용해서 37-38도 정도로 맞추고 있다. 외부와 너무 온도차가 크면 오히려  좋을  있고, 겨울엔 위험할 수도 있다는 글을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욕실에 히터를 틀어둬서 공기를 데운다. 지금 집을 다시 리모델링할 수 있다면, 욕실에도 보일러선을 깔 텐데. 욕실에 좀 더 신경을 쓸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아직도 완벽한 욕실은 아니지만 계속 보완해가려고 한다.


그렇게 욕조를 들이고 이런저런 준비를 마친 후...


처음으로 따뜻한 물을 받아서 엄마를 목욕시켰던 날.


엄마는 ‘아이고, 너무 좋다’를 연신 반복하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이제 목욕탕은 안 가도 되겠다고, 우리 집이 1등 목욕탕이라고 하면서. 이 소박하디 소박한 욕조에 기뻐하는 엄마를 보니 왠지 모를 미안함에 콧날이 시큰해졌다. 엄마를 목욕시키는 일이 힘들 줄만 알았는데, 뿌듯함이 훨씬 컸다. 엄마는 작은 몸을 욕조에 담그고 그저 최고로 좋다며 행복해했다.


엄마의 몸은 언제 이렇게 작고 가벼워졌을까 생각하며 동그란 어깨에 비누칠을 하고, 살살 등을 밀고,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며 머리를 감기는 그 시간. 중력으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된 엄마가 두 손을 열심히 놀리며 몸을 구석구석 닦아내는 모습을 볼 때, 엄마의 입가에 가득한 미소를 보면 나도 절로 행복하다. 손목과 허리는 점점 아파오지만,  마음엔 기쁨이 넘친다. 그래도 아직은 엄마가 움직이실 수 있고, 안전바에 의지해서 스스로 욕조에 앉으실 수 있음에 정말 감사하게 된다. 혹시라도 나중에 거동을 아예 못하게 되시면 이렇게 욕조를 사용해 나 혼자 목욕시켜 드리는 건 불가능하겠지.. 그런 생각이 들면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목욕을 마치면 엄마는 항상 날아갈 것 같다는 말을 한다. 몇 번이고 ‘날아갈 것 같으다.’, ‘날아갈 것 같으다.’ 한다.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흐뭇한 표정이다. 그 모습을 보면 잘했다 싶다. 그 한 시간이 엄마에겐 아이처럼 물놀이를 하는 시간이자, 일주일의 묵은 때를 벗기는 시간이며, 딸과 함께 행복해지는 시간인 것이다.


내게는 아직 아이가 없다. 하지만 아이를 목욕시키며 행복한 기분을 느낀다면 이런 비슷한 기분이 아닐까 종종 생각한다.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엄마가 된 것 같고, 반대로 부모님이 작고 약한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순간이 많아졌다. 엄마가 건강이 제일 안 좋았던 때, 병원에서 기저귀를 갈아드리거나 소변을 받아내던 때나, 늘 씩씩하게만 지내던 엄마가 직장에 있던 내게 전화를 걸어 병원에서 못 나갈 것 같다고 엉엉 울던 날이 그랬고, 아버지가 자꾸 같은 질문을 반복하실 때, 외부에서 소변을 흘리시던 날이.. 그랬다.


앞으로는 그런 날이 더 많아지겠지. 처음에는 마음 아프기만 했지만 어린아이가 돼 가는 부모님과 공존하는 법을 익혀야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알던 젊은 날의 엄마, 아버지를 떠올리며 힘들어하기보단,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그 분과 행복하게 공존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나날이 약해지는 부모님의 모습이, 뭔가를 잃어버린, 전에 비해 무언가 부족해진 사람처럼 느껴져 슬퍼하지 않기를.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과 함께하며 웃을 수 있길 기도한다. 그 과정에서 불편할 수 있는 부분을 발견하면 시스템을 만들고, 또 고쳐가며 살아갈 수 있기를.  내게 그런 지혜가 있기를 바란다.


십 년 전쯤, 엄마가 문제가 생긴 자궁을 들어내던 날. 그 자궁 안에 살았던 시간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왠지 집이 사라진 것 같은 묘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가는 건 결국 그와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이 지어준 집이 어느새 사라지고, 힘들어도 내가 집을 지어야 하는 시간이 오는 것. 그리고 그 집에서 내가 받았던 돌봄을 또 누군가에게 돌려주는 것. 그렇게 집이 무너지고 또 세워가는 시간을 이겨내는 것. 언젠가 내가 고단하게 지은 집도 사라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것... 지금 내게 산다는 건 그 중간 어디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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