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 안녕>
'동물의 생명은 인간의 생명만큼 중요할까요?'
얼마 전 강의하러 갔던 사서교사 연수에서 그림책 <잘 가, 안녕>의 토론 주제로 제시했던 문장 중 하나이다.
참가자들은 소그룹으로 나뉘어 토론을 진행했다.
그 중 한 그룹의 토론은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동물의 생명이 인간의 생명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라는 어떤 선생님의 의견으로 시작되었다.
이 책을 읽은 직후라 참가자들의 의견이 한쪽으로 쏠릴까 염려했던 나로서는 반가운 첫마디였다.
<잘 가, 안녕>은 로드킬 당한 동물들을 거두어 정성스럽게 염한 후 장사지내주는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이다.
트럭에 치인 강아지, 사람들이 온 몸을 동강낸 뱀, 날개가 부러지고 배에 상처가 난 부엉이...... 모두 사람에 의해 생명이 끊어진 존재들이다.
처참한 몰골이 된 동물들을 할머니는 리어카에 싣고 집에 데려온다.
하나하나 정성스레 씻기고 빗질해주고 꿰매준 후 깨끗한 이부자리에 뉘어준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조각배에 고이 모셔 꽃 몇 송이와 함께 멀리멀리 저승으로 보내준다.
'잘 가, 안녕.' 작별인사와 함께.
할머니는 동물들의 존엄을 지켜주었다.
그들이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운전 중 동물사체를 발견할 때 가끔 생각한다.
'저기에 누워있는게 인간 시체여도 사람들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쌩쌩 지나갈까? 시체가 덜 훼손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조치라도 취하지 않을까?'
동물권 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이라는 용어가 쓰인다.
당연하게도, 인간 역시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 맥락에서 볼 때 내가 처음에 제시한 질문, '동물의 생명은 인간의 생명만큼 중요할까요?'는 틀린 문장이다.
당연히, 인간 역시 동물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을 우리는 잊고 지내거나, 혹은 애초에 배우지 못한다.
또는 긴가민가하기도 한다.
어렸을 때 나는 벌레 뿐 아니라 인간이 아닌 모든 생물을 무서워했었다. 심지어 강아지와 고양이도.
집에서 모기나 파리를 발견하면 투덜거리곤 했다.
"그냥 쟤네들은 쟤네들끼리 따로 살고 우리는 우리끼리 따로 살면 얼마나 평화롭고 좋아? 그러면 나도 쟤네를 싫어하지 않을건데."
이게 얼마나 부적절하고 위험한 생각인지 진지하게 깨달은 건 동네 길고양이들을 돌보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저 생각이 소수자를 향한 온갖 혐오의 바탕이라는 걸 알게 된 후로는 그때의 내가 섬뜩하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새벽에, 밤에, 몰래몰래 고양이 밥을 주고 고양이 집을 옮겨놓다가 문득 생각했다.
왜 얘네는 집이 없어야 하지? 얘네도 원래는 집이 있어야 되는 거잖아.
인간이 숲을 밀어내고 아파트를 짓기 전까지, 논밭 위에 아스팔트를 부어 도로를 만들기 전까지, 고양이들에게는 각자의 보금자리가 있었을 것이다.
많은 생명이 공존했던 곳을 인간이 빼앗았다면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지낼 곳을 제공하는 건 당연한 도리가 아닐까.
그리고 피치 못하게 그들을 다치게 했을 때, 또는 죽게 했을 때, 그들이 존엄하게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인간으로서 혹은 같은 생명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도리가 아닐까.
아까 그 그룹의 토론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여덟 명의 참가자가 각기 다른 의견을 조심스레 그리고 거침없이 내었다.
결국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으려면 모두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 그 그룹의 결론이었다.
그분들의 토론을 지켜보면서 서로 다른 생각이 겹겹이 쌓여 아름다운 무지개 케잌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잘 살다 잘 가는 것,
그 대상이 나와 내 주변의 모든 생명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당연해졌으면 좋겠다.
[Tip]
로드킬 당한 동물을 발견하면 <지역번호 + 120> 으로 신고하면 됩니다. (예: 서울은 02-120 / 경기도는 031-120)
동물 사체를 발견했다고 말하고, 동물의 종과 정확한 위치를 말하면 신고 끝!
그럼 관할지역에서 동물 사체를 수거해갑니다.
깨끗하게 염해서 장사지내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사체가 더 심하게 훼손되는 일은 막을 수 있어요.
<잘 가, 안녕>
김동수 지음.
보림. 2016. (46쪽)
추천 대상 : 유아 이상
관련 주제 : 생명. 존엄. 동물. 죽음. 더불어살기.
* 그림은 모두 알라딘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