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쓸모없는 사람 같아."
상담 초반에는 생각보다 첫째가 꾸준히 잘 다녀왔다. 상담 선생님과 어떤 내용들을 주고받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상담 내용은 전부 철저하게 비밀로 유지되며 부모에게 알려할 사항이라 판단되는 심각한 수준의 내용이라 판단될 때에만 따로 연락을 준다고 했다. 3-4회 즈음 지났을 때에 지금 상담 상황에 대해서 알려주고 아이에게 어떤 특별한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알아보기 위해 상담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상담 선생님 말씀으로는 의외로 첫째가 이야기를 잘해서 놀랐고, 지금 특별히 크게 문제 될 만한 상황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고 하셨다. 그렇구나. 역시 제삼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편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하늘이 내려준 동아줄만 같았던 심리 상담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너무나 싱겁게 끝나버렸다. 첫째는 자신의 속마음을 절대로 남한테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였다. 부끄러울 수도 있고 자존심이 센 것일 수도 있고 타인과 내적 친밀감을 깊게 나눠 본 경험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지금 첫째가 원하는 모습은 그런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상담 선생님도 아이와 라포를 형성하고 속 깊은 대화를 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셨겠지만 결국엔 내담자인 아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지 아닐지는 전적으로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다. 일주일 한 번, 40분에서 50분 정도의 상담 시간 안에서 사춘기 아이가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12회가 주어지는 상담에서 아이가 정말로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다 판단되지 않다면 다음 대기자를 위해서 센터에서도 더 일찍 종료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아이는 그렇게 하길 원했다.
하지만 내가 본 첫째는 조금씩 조금씩 다시 예민해지고 냉소적으로 변해갔다. 반 아이들에게 무시를 당한다고 했다. 게임을 못해서 무시당하고 이제는 무슨 말을 꺼내도 자신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학교 담임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이 대체적으로 그런 식으로 서로에게 말을 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짙다고 말씀하시며 첫째는 그래도 유연하게 잘 받아주고 넘어가는 편이라고, 본인이 보기엔 반 아이들과 웃으며 잘 지낸다고 하셨다. 첫째는 문제가 생기면 회피하거나 꾹꾹 참기만 하는 아이인 것이다. 마음에 들어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 그렇게 만든 건 바로 나라는 것은 아이도 나도 잘 알고 있다.
엄마인 나는 다시 한번 아이와 솔직한 대화를 해야 했다. 아이의 마음이 다칠까 봐, 나를 원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아이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이 두려워서 나도 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아이를 위해서, 이제껏 상처만 준 아이의 마음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나서야 했다. 그날따라 게임을 하면서 엄청나게 화를 내고 무지막지한 욕을 마구 내뱉는 아이를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쓸모없는 것 같아."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다 병신 취급만 당하니까. 나는 정말 쓸모없는 사람 같다고요."
"나도 알아. 엄마가 하는 말 다 아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냥 이렇게라도 해야 애들이랑 어울려서 지낼 수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요."
도대체 요즘 애들은 어떤 식으로 생활하는 거지? 첫째는 학교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걸까. 억장이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