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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09. 2022
주부는 뭐 노나요?
세상에 집에서 노는 주부가 있나?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 하고, 빨래 개고, 바닥청소, 화장실 청소, 장보기, 재정관리, 자녀들 씻기기, 먹이기, 입히기, 놀아주기, 식구들 약과 영양 챙기기 등..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다재다능 재주꾼이다.
재주꾼인 주부는 이 모든 걸 해내려고 하루 종일 집 안팎 곳곳을 발 동동 구르며 다닌다.
결혼 전 장보기는 즐거움이었다면, 결혼 후 장보기는 하나의 일..그런데도 주부인 나는 왜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할까.
언젠가부터 스스로 초라하다고 느꼈다. 아니, 사실 결혼하고서부터 쭉 그랬나 보다. 아이가 생기고는 초라하다 못해 집안 구석에 박혀서 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불쌍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한때 그런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싶고, 스스로 돈도 벌고 싶어 이일 저일 시도해봤었다. 그럴 때마다 옆에서 한 친구가 나를 지지해줬었는데, 그땐 진정한 친구는 역시 다르다며 참 고마웠다. 그렇지만 나의 경제활동을 반대하는 가족들과는 원망이 가득한 대화와 갈등이 난무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도, 가족도 누가 맞다고 할 수는 없다. 모두 '주부'인 나를 위한 조언이었을 테니까.
전업주부로써의 생활에 그럭저럭 만족하고 완벽한 적응을 한 지금도 문득 초라한 나를 마주할 때가 있다.
길에서 우연히 아이 친구의 엄마를 마주쳤을 때. 워킹맘인 그분은 예쁘게도 차려입고 아이를 하원 시키러 간다고 했다. 오늘 너무 바빴는데 집에 가면 또 집안일까지 해야 한다며 나에게 힘듦을 토로했다. 그래도 이렇게 벌어서 아이들 사주고 싶은 거 사주고, 시키고 싶은 공부시킨다며 스스로의 위안을 나에게 던지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또각또각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그 당시엔 그냥 '그렇구나'하며 별생각 없이 집에 왔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이 오니 워킹맘인 그분이 떠올랐다. '내가 낮에 집안일을 다 해놓고 밤에 쉴 동안 그분은 잠자기 전까지 집안일을 하다 지쳐 쓰러져 자게 되는 걸까.' 하며 대단한 워킹맘과 나를 비교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열등감인 건지, 슈퍼 워킹맘 앞에서 작아진다. 스스로 비교하고 자꾸만 나를 저 밑으로 내렸다.
성실하게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대단한 일을 하면서 조금의 우울함도 가지지 않았던 주부가 있을까. 주부는 절대 초라하지 않다. 그러나 '주부인 내가' 됐을 땐 다르다.
언젠가 외할머니가 항상 하셨던 말씀이라며 엄마는 이런 말을 했다.
"잠은 자서 뭐해? 어차피 죽으면 영원히 잘걸."
그땐 외할머니도, 엄마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그저 자랑스럽고 멋져 보였다. 학창 시절 그 말을 듣고 마음에 새겨 밤낮으로 부지런히 살았었다.
주부가 되어서 그 말을 다시금 곱씹어 보니 외할머니와 엄마가 참으로 안쓰럽게 느껴졌다. 외할머니가 하셨던 말은 쉬지 못하는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말이 아니었을까. '집'이라는 쳇바퀴 안에서 열심히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초라하게 여기지 않으려고 그 말을 몇 번이고 되뇌며, 잠과 쉼을 참고 포기하고 주부의 삶을 살아내신 게 아닐까.
오늘도 스스로 다독여본다. 괜찮다. 잘하고 있다. 아이 둘을 이만큼이나 무탈하게 잘 키워놓고, 낭비하지 않으며 그럭저럭 집안을 잘 꾸려나가는 주부인데,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하고 말이다.
6살! 어린이집으로 가라!! 엄마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