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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Jun 06. 2022

우리 집에는 잠자는 바이올린이 있다



깨어있거나 잠을 자지 않지만 쓰이지 않고 자리에 오래도록 있는 사물을 '잠자고 있다'라고 하는데 우리 집에 있는 바이올린이 그렇다.


나는 바이올린 전공자다.

우리 집에서 잠자고 있는 바이올린은 15년 전에 나에게 오게 되었다.  

지금 집에 있는 바이올린은 두 번째 바이올린인데, 첫 번째 바이올린은 내가 부모님과 직접 악기점에 가서 구입했다. 취미에서 전공으로 바꾸려 한다고 하니 악기점 사장님이 적당한 가격으로 골라주셨다. 사장님은 이 정도는 싼 편이고 입시 전에는 더 비싼 악기로 바꾸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해줬다.

악기점 사장님이 싼 악기라고 추천해주신 바이올린을 우리 부모님은 아끼고 아껴 모아둔 쌈짓돈과 맞바꾸셨다.


입시가 다가오고 학원 원장님은 악기점에서 몇 개 가져왔다며 바이올린들을 학원에 늘여놓았다. 악기를 켜보고 그중 마음에 드는 거 사야 한다면서 말이다.  

그 악기들 중 하나를 집에 가져가니 부모님께서는 기가 막혀하셨다. 한두 푼도 아니고 몇천만 원짜리 악기를 이렇게 쉽게 들고 와서는 무조건 사야 한다는 딸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셔야 했을까.

아마도 대학교 학비 모아두신 것으로 바이올린을 구입하신 듯했다. 음대 입시 체계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라서 그랬는지 그때는 그 정도 악기는 사야지만 음대에 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두 번째로 나에게 온 바이올린은 지금도 나의 곁에 있다. 몇 달간이나 꺼내지지 않은 채로 말이다.




위부터 아이의 바이올린, 나의 첫 번째, 두 번째 바이올린이다.





바이올린 케이스 안에서 나오지 않바이올린을 보고 나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더 안타까워한다.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해 보는 건 어떤지, 학생들 레슨을 조금이라도 시작해보는 게 어떤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손사래를 친다.

 

바이올린을 꺼내지 않게 된 데에는 육아의 영향이 컸다. 흔히들 독박 육아라고 하는 것을 계속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은 남편, 멀리 계셔서 도와주시지 못하는 시부모님, 일을 하고 계신 부모님, 군인가족의 특성상 잦은 이사까지 한몫했다. 오롯이 나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일과 육아의 병행은 꿈도 못 꾼다.

이런 이유로 나의 바이올린은 케이스에서 잠만 자고 있는 시간이 벌써 몇 해째이다.




사실 팔아야지 마음먹은 것이 1년도 넘었다. 다른 우선순위의 일들을 핑계로 바이올린 판매를 미루고 있는 중이다.

그토록 소중하게 관리했었고 바이올린과 함께하는 삶을 사는 동안 나의 분신처럼 아꼈던 악기를 팔기란 마음처럼 쉽지 않다. 팔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쉽사리 실행에 옮길 수가 없다.


오늘도 팔아야지 다짐만 했다. 바이올린에 대한 꿈을 포기 한지 오래되었지만, 바이올린을 파는 것이 내 과거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 같아서 오늘도 다짐만 한다.

이렇게 우리 집에는 계속해서 잠만 자는 바이올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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