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더에서 친구를 만났다.
C와의 연애가 끝난 몇 달 후, 나는 오랜만에 틴더에 접속했다. 회원가입을 다시 하고 틴더를 헤엄치던 중,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대학교 때 나와 같이 학교 근처 카페에서 알바 했던 남자 D. 그는 같은 학교 학생이었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볼까. 대학교 때 D는 종종 나에게 놀자며 연락하거나, 뮤지컬 티켓이 생겼다며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이었다. 나는 Z를 만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연락이 오면 학교 수업 후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하곤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종종 연락을 주던 다정한 친구였다. 나는 틴더 화면 속, 오랜만에 보는 D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그는 호탕하고 장난기 넘치는 스타일이었고,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D에게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틴더에서 동네 친구라도 찾나 보지?’
D는 크게 당황하는 기색 없이 자신을 틴더에서 봤느냐고 물었고, 곧이어 전화가 걸려왔다. 얼마 전 오픈한 자신의 카페로 놀러 오라는 D의 전화였다. 나는 역시나 가벼운 마음으로, 며칠 뒤 D가 열었다는 카페에 놀러 갔다. D는 마침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곰처럼 덩치가 크고 수염이 있는 남자. 나와 알바 할 때도 그 큰손으로 커피를 참 잘 내리던 사람이었다. 특유의 호방한 웃음을 보이며 나에게 인사하는 D를 보니 반가웠다.
우리는 ‘얼마만이지?’라는 으레 하는 인사로 대화를 시작했다. D는 나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그와 나의 집은 걸어서 십분 거리에 있었다. D는 마감하고 집에 데려다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나와 D는 자연스럽게 집 근처에서 술을 한잔 하게 되었다. 나는 조금 헷갈렸다. 우리는 지금 친구로 만난 걸까? 아니면 틴더를 징검다리 삼아 남녀로 만난 걸까? 틴더에서 우연히 만났지만 술자리에 앉기까지 모든 게 자연스러웠고 묘한 기분이었다. 익숙한 듯 하지만 새로운 자리였다. 생각해보면 D와는 한 번도 술을 같이 마신 적이 없었다. 나는 늘 Z를 사귀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와 어떤 가능성이 열린 상태로 마주하는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D는 종종 나에게 연락을 해왔었지만 나는 한 번도 D와 만나야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그는 그래도 종종 나에게 연락을 했었다. 지금에서야 D의 목적 없는 연락, 핑계가 되는 뮤지컬 티켓 같은 것들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날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고, 나와 D는 키스를 나눴다.
다음날 출근길, D는 우리 집 앞에 찾아와서 나를 회사 앞까지 태워주었다. 맞다. D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에게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자주 내어주던 친구. 밥을 잘 사주던, 나에게 주저 없이 연락하던.
그러나 키스라니. 섹스도 아니고 연애도 아닌. 애매했다. 해석할 길 없는 스킨십이었다. 나는 출근길에 D에게 전날 새벽에 한 키스의 의미에 대해 묻지 않았고, D도 그냥 운전을 할 뿐이었다.
그날 D는 우리 회사 근처 카페에서 일을 하다가 나와 함께 점심도 먹었다. 며칠 후 일이 끝난 시간에도 나를 데리러 오거나, 카페에 오라고 했으며 나는 그와 정의할 수 없는 몇 주를 보내게 되었다. 어느 날, 그가 자기 집 옥상으로 나를 초대했다. 밤이었고 나는 털레털레 걸어서 맥주를 사들고 그의 집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는 그가 쉬는 벤치와 테이블이 있었고 그는 거기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일을 하고 있었다. 나도 벤치에 누워 그의 옆에서 음악을 들었다. 가을바람을 쐬고 있자니 없던 로맨스도 스멀스멀 피어오를 것 같았고, 결국 그날 나와 D는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
원래 알던 친구와 섹스를 하는 건 좀 웃기기도, 동시에 지나치게 로맨틱하기도 했다. 서로를 새삼스럽게 쓰다듬는 일, 서로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일이었다.
나는 혼란에 빠졌다. D는 분명 좋은 친구였다. 자주 연락하진 않지만 가끔씩 오래 볼 것 같은 사람이었다. D와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