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더에서 친구를 만났다.
D와 나는 어떤 식으로든 이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렸고, 우리는 선택을 앞두고 있었다. 연애를 시작하느냐, 이대로 쿨하게 안녕 하느냐. 나는 쉽사리 그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연애도, 안녕도 싫었다. 나는 그와 다시 친구로 지내고 싶었다. 나와 D는 그 후로도 몇 주를 더 연락했다. 섹스는 없이, 친구처럼. 그러나 한번 밤을 보낸 사이에서 생긴 텐션이 다시 사라지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나는 그와 친구도 연인도 아닌 채 긴장감 넘치는 몇 주를 보냈다. 결국 어느 날, 내가 그에게 물어왔다.
‘어떻게 할까?’
그도 나도 연애할 마음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이런 관계가 마음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더는 만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했고, 그도 받아들였다.
다시 혼자 남은 나는 D와의 시간에 대해 곱씹었다. D와 옥상에서 함께 음악을 듣던 밤은 유난히 날씨가 좋았다. 밤 도시, 별은 보이지 않았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차 소리가 왜인지 내 마음을 들뜨게 했었다. 아름다운 밤이었고, 나는 D가 좋았다. 그런데도 나는 왜 D와의 관계에 어려움을 느낄까?
Z는 D를 싫어했었다. 종종 D에게서 오는 전화를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나와 D의 관계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같은 과도 아닌데 왜 그렇게 친한 거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Z는 원래 나의 친구 관계에 대해 잔소리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볼멘소리가 유독 기억에 남았다. Z는 그때 알았던 걸까? 나와 D의 관계가 친구 이상으로도 발전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한 달 후, D에게 연락이 왔다. 밤 열한 시였다. 그는 우리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별 말없이 그와 드라이브를 나섰다. 창문을 열고 달리는 동안 D와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참나. 그날도 어쩜 그렇게 날씨가 좋은지. 우리는 삼십 분 정도를 달려서 서울 외곽을 지나 근교에 도착했다. 큰길 옆으로는 길게 늘어선 가로수를 따라 호수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바람에 머리칼이 흐트러지게 내버려 둔 채,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밤늦은 시간이라 차가 거의 없었고, 어두운 호수의 물빛이 조명을 받아 반짝거렸다.
‘조정경기장이래. 낮에는 여기서 조정 연습하는 거 종종 보여’
그가 운전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D와 친구가 아니게 된 순간부터 우리가 만나는 날들은 지나치게 로맨틱했다. 나는 그걸 이길 도리가 없었다. 나와 D는 편의점 앞 벤치에 음료수를 들고 앉았다. 그곳에서 뒤늦은 한 달간의 안부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결국 연애를 시작했다.
그러나 D와의 연애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는 얼마 안가 금방 헤어졌고, 결국 친구였던 우리 사이도 그때 종지부를 찍었다.
D와의 만남에서 내가 한 번 더 배운 건, 어떤 관계는 절대 되돌릴 수 없다는 것. D와 어느 선을 넘은 시점에서는 우리 관계를 돌이킬 수 없었다. 친구로는 돌아갈 수 없는, 선을 넘은 사이. D는 내가 좋아하는 친구였다. D를 잃고 나서 우습게도 나는 Z와의 이별을 떠올렸다.
Z는 나의 연인이기 이전에 나의 친구였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Z와의 섹스나 Z에 대한 이성으로서의 기억보다는 Z가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는 점이 가장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서로의 일상을 누구보다 시시콜콜 알고 있는 사이였고, 고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서로에게 털어놓는 내밀하고 친한 친구였다. 그런 사람과 하루아침에 연락을 끊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Z와 헤어진 후,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말할 곳이 없어 당황했다. 지난 5년간 단 한 명 만은 늘 나의 일상을 알고 있었다. 이별 후 힘든 감정이 다름 아닌 Z에게서 왔음에도, 나는 Z에게 얼른 연락해서
‘들어봐, 나 너랑 헤어지고 나서 오늘은 이런 게, 저런 게 힘들었어.’
라고 털어놔야 하루가 마무리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제 Z는 없다. 나는 이제 힘든 순간, 기쁜 순간이 왔을 때 Z가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제 그 사실에 익숙해져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