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더라는 바다
나는 여러 번의 연애를 틴더를 통해 시작했다. 분명 틴더에는 매력적인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틴더에 대한 흔한 오해를 불식시켜주었다. 그들은 적어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만큼만 위험하거나 이상했다. 안심해도 괜찮다.
그러나 이 글을 보고 누군가가 틴더를 시작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몇 가지 조언을 하고 싶다.
세상엔 다양한 바닷가가 있다. 바다마다 수심도 해변의 크기도 다르다.
어떤 바다는 얕다. 상상해보자. 무턱대고 철퍽 앉아도 배꼽 위로는 바닷물이 차오르지 않는 바다. 눈앞으로는 한없이 넓은 수평선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그런 바다가 있는 해변에 가면 우리는 한 번쯤 가벼운 마음으로 발을 담궈 본다. 곳에 따라 깊은 곳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바다에 깊은 곳이 조금 있다고 해서 우리가 그 바다를 깊은 바다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여전히 그 바다는 ‘얕은 바다’라고 불릴 것이다. 틴더는 그런 곳이다. 당신이 틴더라는 바다에 발을 담그고자 한다면, 너무 많은 걸 기대하지는 않길 바란다.
그 바다에서는 바나나보트도, 유람선도 탈 수 없다. 어떤 배를 끌고 간들, 모래에 배가 처박혀버릴 것이다. 당신이 하기 가장 좋은 것은 그저 그곳에서 발장구를 몇 번 쳐보는 것. 그 바다에 발을 담그고 쉬는 것. 만약 그곳에서 깊은 바다를 만나 당신이 배를 띄울 수 있게 된다면, 그건 틴더라는 세계가 깊어서가 아니다. 당신의 운이 좋아 그 해변을 걷다가 깊은 바다를 마주쳤을 뿐.
이곳에 쓰지 않은 많은 사연들이 있다. 그중에는 즐거운 기억도 있지만 불쾌했던 기억들도 상당하다. 당신이 틴더를 시작하려 한다면, 불쾌한 사건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위험부담 정도는 인지를 하고 시작하는 게 좋다. 모르는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는 일은 마냥 매일이 유쾌하기만 한 일은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틴더를 ‘즐거웠다’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2년 전의 나는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볼 필요가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Z와의 연애를 복기했다. Z에 대한 어떤 결정은 맞았지만, 어떤 결정은 틀렸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틴더에서 만났던 남자들이 모두 나의 전 연애를 위해 소모된 인물들이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나는 그들과 열과 성을 다해 연애 했다. 그들과의 연애에서도 Z에 대한 복기처럼 조금씩 테잎을 되감아야 했던 순간들이 있다.
어떤 남자가 나에게 결혼관에 대해 물을 때, 나는 새삼 나의 결혼관과 그와의 연애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고민했고, 그 고민은 다음 연애에 도움이 되었다. 어떤 남자가 나를 두고 이틀간 연락이 끊겼을 때, 나는 결정해야 했다. 그 사람의 힘든 상황을 이해할 것인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를 끊어낼 것인가.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해 일어난 일은 다음 연애에 분명 영향을 끼쳤다.
마치 이어달리기처럼, 전 연애가 다음 연애에게 바통을 건네주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틴더를 하면서 그들에게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각자 다른 성향을 만나보았다. 열심히 발장구를 치다가 나왔다. 그 얕고 투명하고 넓은 바다는 그때 충분히 즐거웠고, 나는 아마도 다시는 틴더를 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