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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션 Sep 28. 2018

익숙해졌다고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다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고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다

쨍그랑!


승우가 또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흐음... 숨을 고르며 점원과 눈이 마주치길 기다린다. 테이블에 있는 벨은 굳이 누르지 않는다. 다행히 눈이 마주친 점원에게 최대한 미안하다는 듯 다소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떨어진 숟가락을 보인다.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닌 듯 점원은 재빠르게 새 어린이용 숟가락을 내게 건넨다.


어느새 승우의 그릇은 비워졌고, 나는 자연스레 휴지 한 장을 뽑아 승우가 앉아 있는 아기 의자와 테이블 사이 바닥에 쭈구려 앉는다. 녀석... 많이도 흘렸다. 아까 승우가 먹었던 밥의 반 정도 되는 양이 흩뿌려져 있다. 승우가 먹지 않은 것도 있는 듯 하지만 모조리, 휴지와 이미 합체한 손바닥으로 아무렇지 않게 스윽 닦아 재빠르게 말아 쥐는 나다. 그새 들고 있던 과자를 또 떨어뜨리는 승우. 이 정도 쯤이야 하며 떨어진 과자는 가볍게 손으로 집어, 아까 음식물과 함께 말아 쥔 휴지에 포개어 수면... 아니, 테이블 위로 돌아온다.


익숙해졌다. 나는 이 상황을 수없이 많이 겪었다. 녀석에게 먹을 것을 주기 전에 이미 각오했던 상황들이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내 아이가 흘리지 않았지만 내 아이가 흘렸다고 의심하기 딱 좋은 음식물까지 말아 쥐었던 내가 아무렇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닌가.


맘충,

-소위 무개념인 엄마를 벌레에 비유하며 비하하는 기분 나쁜 그 말- 행여 그 소리를 들을까, 행여 나의 사소한 실수(!)가 단지 아이와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꼬투리 잡을 게 없나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그들의 먹잇감이 되진 않을까... 언제부턴가 나는 모르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승우가 더 어렸을 때 유모차에 태우고 혼자 집 근처 커피숍에 자주 갔었다. 승우가 유모차에서 잠이 더 잘 든다는 이유로 나갔던 거지만, 잠시나마 콧바람 쐬고 싶은 마음이 더 컸으리라. 어쨌든 나름 안전하게(!) 아이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커피숍에 들어갔었다. 하지만 운이 좋지 않던 어떤 날엔 갑자기 승우가 깨서 울었고, 혹시 몰라 갖고 다니던 아기간식 몇 가지를 차례대로 꺼내어 달래도 울음이 그치지 않았을 때 나는 죄인이 되어 갓 나온 커피를 들고 도망치듯 나왔었다. 한 모금 겨우 마신 커피는 유모차 컵홀더에 끼워졌지만 질질 흐르는 통에 한 손으론 유모차를 밀고 다른 한 손은 우아하게 커피를 들며 집까지 가는 걸음을 재촉해야만 했다. 그당시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한 손에 라테를 들고 한 손으로 여유 있게 유모차를 미는 유럽의 여느 근사한 아빠들과 내 모습은 달라도 참 많이 달랐다.


어떤 공간에서는 아기 우는 소리보다 더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유식 냄새는 비할 수 없이 지독하게 니코틴 쩔은 내를 풍기는 사람들도 있다.  유모차를 세워둔 공간보다, 짐이 많아 공간을 더 차지하는 사람들도 있을테다.


유독 아이와 함께 있는 사람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세우고 있지는 않은가.


이미 익숙해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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