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도 꿈을 꾸십니까

백야행白夜行이 월륜행月輪行으로

by 수연


매미가 허물을 벗는 요즘, 나는 더없이 초조하다.


날이 샐 무렵이면 알람보다 쟁쟁한 울림이 잠을 깨웠다. 매미는 내 방 맞은편 주방의 베란다 창문 바깥 철망에 붙어 이쪽을 마주하고 있었다. 길고 툭 불거진 가시 같은 다리를 벌려 촘촘한 철망 틈새에 끼운 모양이 백운대 암벽을 탈 적 내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바위 틈새에 정강이를 꽂아 넣고 온힘을 다해 매달리던 때의 고독하고 맹렬한 집중. 나는 높은 곳이 그리웠다. 배낭 멘 등을 구름 흰 공중으로 향하고 납작한 바위 벼랑 새에 붙어 목숨을 건 한달음을 노리던 그때. 뛰는 심장 하나로 가득히 채워졌던 한순간. 내 전체가 살아 숨쉬며, 눈앞의 삶과 등 뒤의 죽음을 온전히 독대한 순간.

귀가 먹먹해지도록 매미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다시 산에 가야했다.

가을의 봉정암까지는 너무 멀었다.

짧게는 6년, 길게는 17년에서 19년 간이나 매미는 땅속에서 유년기를 보낸다. 그런데 땅을 뚫고 허물 밖으로 나온 매미는 그 오래고 지난한 유충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아니, 벗고 나면 그만인가?!

지난 여름 밤 숲에서 돌아오는 길, 가로등 불빛 너머 어둠 속에서 아주 힘겹게 몸을 끌듯 기어오고 있는 매미 유충을 보았다. 나는 그 유충의 몸체에 비해 가분수인 얼굴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그 얼굴은 머리 크기와 상관없이 기묘하게 뚜렷하고 생생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가만 보니 너무 사람 같았다. 더욱이 앞만 바라보며 느릿느릿 최선을 다하는 그 얼굴의 고독하고 집중된, 그리고 애면글면하는 표정은 믿기지 않게도 나와 닮아 있었다.


유충은 자죽자죽 내가 서 있는 불빛 안쪽을 향해 다가왔다. 나는 불안하였다. 오랜 기다림과 간절한 기도로 시작된 이 찬찬한 행보를 지켜주고 싶었다. 바쁜 행인들 발길에 채이거나 밟히지 않고 무사히 다다를 수 있을까. 나는 냅다 손으로 집어 들어 적당히 크고 무성한 나무 둥치에 붙여주려다 그만두었다. 유충의 단호해보이는 표정이 내 손길을 막아세웠던 것이다. 나는 유충의 뜻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우두커니 지켜보았다. 다행히 유충이 불빛 아래를 지나 맞은편 나무 밑으로 보이지 않게 숨어들 때까지 낯선 발자국이 끼어드는 일은 없었다. 나는 비로소 안도하였다. 두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라 제 한 몸 기대어 마음껏 소리를 쥐어짜내 완전 연소할 그 나무를 스스로 찾아내겠지. 나는 유충의 의지를 믿었다.


이따금 무리에서 외따로 떨어져 나무보다 높이, 아파트 꼭대기 층 가까운 우리 집까지 날아올라 보란 듯 철망에 터잡고 휴식하듯 매달린 매미들 가운데 그 유충이 있지 않을까 상상한다. 그리고 그 자리가 도로 비면, 무리가 모인 숲의 나무 둥치로 돌아간 유충이 자신이 어느 높이에까지 이르렀는지, 그 쾌거를 무용담 삼아 자랑스레 풀어놓지 않을까, 기대하며 웃어도 본다.

이제 매미가 된 유충에게 이 높이는 내가 닿고자 그리는 봉정암 정도일지 모른다. 봉정암은 설악산 꼭대기에 있다. 이 깊고 높은 암자의 법당엔 불상이 아닌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 이름하여 적멸보궁이다. 나는 미증유의 적멸로 향하는 원도 한도 없이 걷고 오르는 그 길 위에서 완전 연소하고 싶다. 아니, 그 정진의 꿈길로 이미 들어섰다.


지난 주중, 잠시 짬을 내어 내 생애 첫 등산화를 샀다. 이후로 나는 먼 곳이든 가까운 곳이든, 평지, 숲길, 산길 구분하지 않고 등산화를 신고 간다. 신을 발에 맞게 길들이기 위해서다. 내가 밟는 모든 길이 마치 산길이 된 듯하다. 아니, 실제로 지난 토요일, 반갑게도 산길이 펼쳐졌다.

강원도 낙산에 있는 낙산사였다. 산과 동명의 사찰 이름 모두 관세음보살이 머무신다는 '보타락가 산'에서 따온 것이다. 이 이름엔 절을 창건한 의상 조사의 간절한 서원과 그리움, 사무치는 의지가 서려 있다. 절벽 아래 바다로 투신하면서까지 만나뵙기를 간구한 관세음보살 님을 비로소 친견한 곳이 바로 여기인 까닭이다.

그 님을 모신 '보타전'은 추녀 끝이 깃을 치고 날아오르는 까치 날개를 닮아 있었다. 나는 천수천안, 십일면 등 여러 이름과 형상을 지닌 관세음보살 님의 금빛 찬란한 모습이 어우러진 그곳에서 스승의 법문을 들었다.


스승과 우리 제자들은 먼저 상단에 모셔진 관세음보살 님께 삼배를 올리고 방석에 앉았다. 법좌에 오르기 전, 두 무릎을 꿇고 놀빛 가사를 여미는 스승의 옆모습이 숙연하였고, 까닭없이 뭉클하였다.

이윽고 법좌에 앉으신 스승께서 제자들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지셨다.


"첫째, 깨달음을 얻으면 생사를 벗어나는데, 생사를 벗어난 그 자리가 어디인가."


나는 속엣말로 '지금 말하는 그 자리'라고 웅얼거렸다.

누군가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내 마음 속'이라고 답변했다. 스승께서는 이 말을 잡아채 특유의 정확하고 미소로운 어조로,


"내 마음 속"


하고 툭 옮기신 뒤 사이를 두고 말씀을 이으셨다.


"이라고 말하면 초등학생 대답이지."


"전등,"

하고 또 툭 던지신 스승은 불법을 전해듣고 공부하는 것을 예로부터 '전등傳燈'이라 부른다 하셨다. 그런 다음 고개 돌려 불단 가득 불 밝혀진 초를 가리켜보이시며, 공부를 하고 수행을 한다는 것은 이와 같이 스스로를 밝히는 일이기에 '전등'이라 한다고 일깨워주셨다. 어두워지면 수행도, 공부도 하기 어려우니 밝을 때 정진하라는 당부도 보태셨다. 그리고 다시 물으셨다.

"(......), 생사를 벗어난 그 자리가 어디인가."

"밝혔습니다."

사슴이 가락을 뽑듯 푸르고 적막하게 울려퍼지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스승이었다. 침묵하는 제자들을 대신해 스승이 직접 대답하신 것이었다. 바로 달을 드러내보이는 시원한 한마디, 내게는 명치 아래로 서글픈 울림과 정조를 자아낸 이 말의 여운이 좀처럼 가시지 않아 스승의 이어진 설명을 얼마간 놓쳤다.

"둘째, 생사를 해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순간 말문이 턱, 막히는 걸 느꼈다. 그러다 어렴풋이 백운대를 건너던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기이하게도 나고 죽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극히 드문 한때는 생사의 기로에 놓인 순간이었다. 당시 북한산에서 길을 잘못 들었던 우리 일행은 천만다행으로 산악인 동호회에서 나온 온갖 장비와 등산복으로 완전무장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안내를 받아 백운대까지 구물구물 나아갔다. 공중을 향해 판판하게 깎아지른 비탈면에 조난자의 숫자와 위치를 표시한 붉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일행 중 하나가 고개를 숙이고 멈춰섰다. 움츠린 어깨가 조용히 들먹이고 있었다. 챙이 넓은 카키색 모자를 눌러쓴 한 여성 산악인이 베낭에서 흰 약병을 꺼내 알약 한 알을 건네주었다. 신경 안정제라고 했다. 글썽이던 친구가 우리들의 부축을 받아 약을 삼킬 동안 산악인 중 몇 분이 백운대 중간 지점에 로프를 걸어 붙잡고 건널 수 있도록 도왔다.


우리는 두 패로 나뉘었다. 로프를 잡고 건널 사람과 그냥 암벽을 타넘을 사람. 나는 후자였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다. 내게는 예전부터 죽음을 각오하는 성미가 있었다. 나는 탄탄하고 날렵한 체구에 무척이나 단련되어 보이는 서글서글한 인상의 아저씨를 따라 암벽에 매달렸다. 손이나 발이 조금이라도 삐끗, 해버리면 그대로 공중으로 자유 낙하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저씨가 내 바로 위쪽을 가리키며 그 사이로 정강이를 푹 꽂아 넣으라고 소리쳤다. 그때까지 암벽에 몸을 찰싹 붙인 채 옆 돌아볼 생각조차 못하고 있던 나는 무슨 말인지 제대로 못 알아듣고 어리벙벙하게 멈춰 있었다. 아저씨는 불호령을 놓듯 단호히 "거기, 다리를 끼워!" 고함쳤다. 퍼뜩 정신을 차려 대각선 위쪽을 올려다보니 길쭉한 바위 틈새가 까맣게 보였다. 다리 하나 정도의 폭에 무릎까지 파고들 만한 깊이의 빈틈이었다. 나는 아저씨의 서슬 퍼런 일갈에 두들겨맞고 내쫓기다시피, 왼쪽 정강이를 서둘러 틈새에 쑤셔박았다. 다리가 충분히 고정되어 몸의 균형이 잡혔을 즈음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벼린 듯 도사린 경사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발밑으론 응결된 수중기와 구름이 깔려 있었다. 등줄기가 서늘했다. 그러나 더 크게는 후련했다. 의지할 곳 한 점 없는 공중이 내 옆과 뒤를 텅 에워싸고 있었다. 정상이 코앞이었다. 동시에 죽음도 코앞이었다. 이 깎아지른 벽을 건너냐, 중간에 미끄러지고 마느냐에 내 생사가 달려있었다.


두려움에 심장이 뼈를 잡고 흔드는 괴수처럼 고동쳤다. 이 한 발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나는 하늘을 바라다보았다. 유년기의 어느 여름, 절체절명의 공포와 권태 속에 쳐올려다본 그 하늘이 그대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먼 데서 내가 나를 관찰하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두려움보다 빠르게 내 몸을 움직였다. 나는 두 손과 오른발에 힘을 주어 버티며 적시에 왼다리를 쑥 빼올렸다. 한순간 내 몸이 비스듬히 섰다. 나는 이때다, 냅다 걸었다. 다다다, 내처 걸어 깎아지른 벽을 순식간에 건너갔다.


앞뒤 재지 않고 오로지 다다다, 걷던 이때만큼 생사에 가까이 닿아 있고 동시에 자유롭던 순간이 있었을까.

스승께서는 '정진'에 대해 말씀하고 계셨다.

제자들의 게으름을 은근한 어조로 채근하시며, 천 여년 전 낙산사에 오신 의상 조사 님이 관세음보살을 친견키 위해 해안 절벽 너머로 몸을 던진 그 순간의 간절하고 용맹한 정진을 일깨우셨다.

문득, 나가세나 존자와 밀린다 왕과의 문답으로 이루어진 <밀란다왕문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사람은 (......)

정진에 의해 괴로움을 뛰어넘고

-제 1편 대론對論 1장, 10. 지혜를 돕는 것(신앙), 79쪽,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정진과 관련하여 다시 없을 명언을 남겼다. 바로 자신의 묘비명에 스스로를 완전 연소시킬 때 도달하는 최고의 경지를 가감없이 드러내보였다. 마치 이 땅과 땅 위에 발 붙인 모든 사람들을 향해 두 나래를 펼치며 날아오르듯,


나는 바라는 것이 없다.
나는 자유다.


라고 시원하게 노래한다.


나는 매미를 응시한다. 나무 둥치에 몸을 딱 붙이고 주름진 꽁무니를 있는 힘껏 조였다 풀며 속에 고인 소리를 비처럼 쏟아내는, 한여름 소나기같이 퍼붓는 그 울음과 틈틈이 인근의 작은 산을 오르내릴 적 불어오는 한 줄기 산들바람. 모두 여름의 날씨와 다르지 않은 정진의 조각들이다. 그런데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듯, 이 정진 너머엔 뭐가 있을까. 때마침 스승의 질문이 들려왔다.


"셋째, 생사를 해탈한 뒤 이 몸이 죽으면 그 사대四大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속으로 되물었다. 생사가 없으면 내가 없다. 그렇다면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가 불가사의한 인연화합으로 먼지처럼 뭉쳐 있던 이 몸이 무너지고 흩어져 향할 곳, 그 어디일까. 나는 잠시 내가 그토록 우러르던 하늘을 떠올렸다. 이때, 스승께서 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로 가긴. 사라지지."


묘하게도 '사라지지'의 끝음은 부러 스승이 그 효과를 노리고 소리 내신 양 연기처럼 애잔히도 가늘어지며 사그라들었다. 촛불의 심지가 모조리 타들어가 자연히 꺼져버리듯,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 사라짐에 대한 스승의 비유가 이어졌다.

머릿속으로 루시드 폴의 <레 미제라블>에 수록된 곡 '평범한 사람'의 노랫말 중 하나가 맴돌았다. '어차피 우리는 사라진다.'

나는 이 '사라진다'라는 동사를 마치 그 뜻을 처음 알게 된 사람처럼 곱씹고 또 곱씹었는데, 그대로 삼키자니 도중에 목이 메어 울먹이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아직 못다 태운, 불완전연소 중인 유충인 까닭일까.


스승은 생사에서 해탈로, 해탈에서 열반으로 이어지는 우리네 삶의 흐름이 '연기롭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연기롭다'는 이 표현을 특히 유념하여 기억하길 당부하며 법문을 맺으셨다. 나는 처음에 원치 않는 역에서 내려야 했던 경험들이 사무쳐 잠시 눈꺼풀을 내리덮었다 문득 그때 내렸기에 이리로 올 수 있었구나, 환기하였다. 그렇게 백야행白夜行이 월륜행月輪行이 되었구나, 천천히 납득하며 스승의 '연기롭다'는 말씀을 새겼다.


새길수록 이 여름이 더욱 초조해졌다.

좌복에 앉아 다리를 맺고, 매미가 힘껏 꽁무니를 조였다 퉁기며 매앰, 남김없이 쥐어짜듯

이뭣고, 화두를 들며 올 여름엔 허물을 확 벗어볼까 노리고 있는데

아,

허물 벗은 이들의 색깔은

회색,

매미의 보호색이 나무 둥치와 구분이 가지 않듯

희고 검은 양 극단에서 놓여나

'연기롭게'

스스로를 사르는 향의 잿빛과 혼연일체다.

나는 기어이 무지개를 쫓는다

'꿈에서도 꿈을 꾸십니까'

넌지시 묻는 소리 들려와도

낙조로 물든 허물 속을 배회하며 덧칠하고 하얗게 지우고, 또다시 덧칠하길 되풀이한다


허나 우리는 태초에 무명無明을 타고났다

속 빈 무지개로 향하는 길이 깨달음에 이르게 하며

회색 장삼 위에 걸치는 가사의 색조는

슬픈 꿈같이 타오르는 놀빛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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