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가 불을 삼키러 온다

12장 오귀헌

by 수연


오귀헌은 배낭을 메고 쟁반을 옆에 낀 채 대기하고 있었다. 기둥을 타고 천장에 뚫린 구멍을 넘어간 뒤였다. 오귀헌은 방의 움직임을 일종의 신호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응해 보려는 시도로 올라갔던 것이다. 천장의 구조로 인해 구멍은 다소 경사져 보였다. 그러나 막상 머리를 안으로 밀어 넣자 차곡차곡 고르게 쌓인 콘크리트 벽의 연속이었다. 어깨가 쓸릴 것같이 비좁았지만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오귀헌은 꾸준히 몸을 끌어올려 고개를 내밀었다. 둘레가 콘크리트로 빈틈없이 메워진 기둥 끝이 올려다보였다. 바닥은 미동도 없었다. 아랫방을 움직인 힘이 윗방에는 작용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그 힘이 지금 막 정지한 것인지는 모호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떻게도 알 수가 없는 일이라고 오귀헌은 생각했다. 도로 내려가 아랫방이 정지해 있는 걸 확인한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윗방의 상태를 새로이 미지로 돌려놓는 데 불과했다. 내려가든 올라가든 미지의 순환을 부추기는 것으로 귀결될 뿐이었다. 하지만 오귀헌은 일단 빠져나오고 싶었다. 그래서 바닥으로 팽개치다시피 몸을 빼내고 실내를 둘러보았다.

사면의 벽 전체가 천장과 똑같이 노출콘크리트로 마감돼 있었다. 가구라고는 맞은편 벽의 붙박이 의자들이 전부였다. 오귀헌은 제일 가까이에 있는 의자에 몸을 부려놓듯 앉으며 고개를 들었다.

‘수연역’이라고 써 붙인 자그마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간판의 널빤지는 뒤틀리도록 삭았고, 붓글씨체로 적힌 이름은 지워질 듯 획이 바래 마치 누군가 불러주길 애타게 기다리다 잊힌 것 같았다. 수연. 오귀헌은 자기도 모르게 읊조리며 비스듬히 매달린 간판의 그 애처로운 이름자에서 눈을 뗐다. 기다렸다.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장소가 무작정 기다리게 만들었고 오귀헌은 누군가 불러주길, 아니 데리러 와주길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고, 허기만 찾아왔다.

배낭에 팔을 쑤셔 한입쿠키를 꺼내 씹었다. 만일을 대비해 챙겨온 것이었다. 쓸데없이 외지인인 걸 들켜 곤란을 겪고 싶진 않았다. 마침 턱시도 재킷에는 ‘한입쿠키소년’이라 새겨진 빛나는 명찰까지 달려 있었다. 당분간은 한입쿠키소년의 외양이 안전한 보호색이 되어 자신을 지켜줄 것이었다. 오귀헌은 쟁반을 집어넣느라 펑퍼짐해진 배낭의 반도 여미지 못한 지퍼 헤드를 잡고 속 시원히 내렸다. 먼지투성이 잠바를 벗고 턱시도 재킷을 내어 입었다. 어깨와 팔뚝이 몹시 끼었다. 오귀헌은 잔뜩 굽어지고 움츠러든 자세로 오른쪽 측면의 닫힌 창문을 내다봤다.

밖은 캄캄해져 있었다. 어둠을 입고 전파를 받는 송신탑에서만 꼬박꼬박 펀치로 뚫은 것 같은 빛을 보내왔다. 오귀헌은 크게 하품을 했다. 하품을 하느라 눈이 감겼다. 다시 눈 떴을 때 깜빡이는 붉은 점이 보이지 않았다. 기다려도 빨갛게 되살아나지 않았다.

오귀헌은 이렇게 완전한 어둠 속에 남겨지는 것이 믿기지 않아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밖을 응시했다. 다시 나타날 거란 기대 없이 견딜 수 있을까. 자문했을 때였다. 창유리로 밝고 또렷한 납작한 것이 내려와 구워지듯 부풀어 오르더니 눈부시게 휘황찬란해졌다. 달이었다. 달은 아주 크고 둥글었다. 어느새 눈높이에 다다른 달이 더 이상 가라앉지 않기를, 제발 이대로 있어주기를 바라였다. 달은 자신을 마주보고 있었다. 성난 표정이다가도 염려하는 듯, 또 돌연 감동받은 미소로 바뀌는 불안정한 얼굴이었다. 오귀헌은 그런 달의 세모난 입이 쓱 잘려 시무룩하게 허물어지는 광경을 절망적으로 지켜보았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 방은 올라가고 있었다. 멈춰있던 순간이란 애초에 없었던 걸까. 그나마 아랫방이 이 방과 한 기둥에 꿰어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올라가도 같이 올라가고 있을 테니. 그래, 나만 겪는 일은 아니야. 혼자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일개 외지인이 타향에서 복잡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낯선 조건들을 다 어떻게 입맛대로 꿰맞출 수 있겠어.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랬다고, 마텔법을 따라야겠지. 아, 그러나 언제까지. 이미 많이 지체했는데.

밖은 칠흑이었다. 답답해진 오귀헌은 아껴둔 담배를 꺼내 물었다. 라이터의 기름이 불꽃으로 피어오르기 무섭게 갖다 댔다. 눈앞이 허예지며 가슴이 푹 꺼져들었다. 그러나 마지막 한 모금마저 연기로 바뀌어 사라지도록 창밖의 어둠은 깨지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별들이 유리를 채우는 일은 없었다. 오귀헌은 꽁초를 내던져 짓밟았다. 쟁반을 더듬어 잡고 무릎에 세웠다. 방패처럼. 손가락으로 튀기며 소리를 내보기도 했다. 악기처럼. 하지만 어김없이 시선은 밀폐된 창으로 가 닿았고 침울하게 거두어졌다. 또다시 눈길을 돌리려던 참이었다. 홀연, 어둠이 깨졌다. 까마득한 언저리에서 한 움큼 빛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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