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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y Apr 03. 2017

이제 우리의 아몬드에 빨간불을 켤 때. 아몬드

손원평 / 창비

우선 이 책의 첫 장을 열면서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재밌다'를 연발하게 하는 책이다.
비극적인 상황들과 입체적인 인물들, 고통과 두려움 밝음과 어둠의 감정들이 이야기를 빠른 템포로 이끌어 간다.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 있다.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그런데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워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윤재는 다른 사람들보다 감정을 느끼는 편도체의 크기가 작아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엄마와 할머니의 사랑 속에서 감정을 연습하며 나름 '평범한' 인생을 살아간다. 하지만 윤재의 열여섯 번째 생일날 한 남자에 의해 할머니를 잃고 엄마는 식물인간 상태가 되면서 윤재의 '특별함'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비극적인 사건 후 만나게 되는 심박사와  곤이, 그리고 도라의 만남으로 조금씩 성장해가는 윤재. 그리고 윤재를 통해 우리는 제대로 된 감정을 느끼며 살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지만 엄마와 할머니의 사랑으로 자란 윤재와 불우한 어린 시절로 인해 부정적인 감정만을 배워버린 곤이. 이 세상의 문제아는 없고 문제아를 만드는 부모와 사회만이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이 떠오른다.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폭격에 두 다리와 한쪽 귀를 잃은 소년이 울고 있다.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관한 뉴스. 내 인기척을 느낀 그가 고개를 돌렸다. 나를 보자 다정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중략) 
하지만 묻지 않았다. 왜 웃고 있느냐고. 누군가는 저렇게 아파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등지고 어떻게 당신은 웃을 수 있느냐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누군가의 고통을 보며 웃고 있는 심박사와 '너무 먼 불행은 나의 불행이 아니'라는 엄마의 모습을 윤재는 이해할 수 없다. 심박사와 엄마의 모습이 나의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흠칫했다. 감정을 느낄 수 있어도 타인의 불행에 행동하지 않고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책은 단순히 한 아이의 성장기라고 하기엔 생각해 볼 문제들이 많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사회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사회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책이다.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우리는 너무 쉽게 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해진 건 아닐까. 누군가의 고통을 보며 함께 아파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함께 아파했더라도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는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이제 우리의 아몬드에 빨간 불을 켤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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