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수월봉
어릴 때는 아직 간지러워서 못 쓰고, 그 또래가 되면 괜히 싱거워서 안 쓰고, 시간이 지나면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못 쓰는 단어.
청춘.
By 문상훈
나 역시 어느 시절에도 청춘이란 단어를 실컷 써 보지 못했다. 누군가는 부러움에, 누군가는 비아냥에, 누군가는 내 게으른 육신에 불 붙일 요량으로 쓰는 걸 많이 들어보긴 했다. 이미 청춘이 아닌 이들로부터.
하루하루 커가는 아이의 탱탱한 볼을 비비며, 윤기 나는 검은 머리칼을 만지며,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다리를 보며 나는 내 청춘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이미 알고 있는데도 자꾸 깨닫는 건 뭘까.
바람의 언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수월봉은 높이가 77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오름이다. 하지만 이곳은 세계 화산학의 교과서이자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으로 인증되었다. 이곳에 유명한 화산층이 있다. 종이를 쌓아 올린 듯 검고 섬세한 결의 화산층은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퇴적층이 아니라 짧은 시간에 화산 분출물이 쌓여 생겼다.
칠순이 훨씬 지난 어머니의 빈틈없이 자잘한 주름도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난 어머니의 무엇을 보며 대화를 했을까.
“엄마 밤에 크림 바르고 자?”
“ 뭐 하러 사와. 지난 전에 사 온 것도 아직 남았는데. “
“그건 버려. 오래되면 못 써.”
화장대 위에 크림통은 차고 넘치는데도 어머니의 주름을 마주한 나는 만족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고맙다며 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딱딱해진 손으로 내 볼을 쓰다듬던 어머니가 말했다.
“너나 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