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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산담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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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문희 Oct 08. 2024

나의 여행 극복기 I


  “여행 좋아하세요? “

  예스나 노를 바라는 질문이 아니었다. 좋았던 여행지를 들으려 시작한 물음이었다. 나는 그것을 알아도 망설이다 이렇게 대답해 버렸다.

  “그닥 좋아하지 않아요.”

  “여행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나요?”

  그는 뜨악해하다가 곧 초기심에 차 다시 물었다.

  “ 왜 안 좋아하세요?”

 

  여행 붐이 일기 시작했다. 방송사마다 여행 예능을 내보이고, 인천공항은 늘 붐빈다고 들었다. 티브이 속에는 유명인이 자신을 아는 이 없는 낯선 곳에 가서 생소한 음식을 먹고, 길을 잃고 헤매다 말이 안 통해 어색하게 웃고, 갖은 고생을 다 하고, 숙소로 돌아오면 또 다른 이상한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종종 그런 경험을 하고 싶었다. 여행이 주는 선물을 나도 받고 싶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이사 한번 없이 살았다. 이웃들은 같은 동네에서 자라고 늙어갔다. 어머니는 매일 같은 바다, 같은 밭에서 같은 사람들과 일했고 아버지는 매일 같은 분들과 술을 드시고 같은 분들과 취했다. 익숙한 방식으로 성실하게 돈을 아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서 공부하겠다는 큰딸을 기어이 눌러 앉혔으니 그 밑으론 줄줄이 꼼짝 못 했다. 어쩌다 부모님과 외출이라도 하게 되면 얼른 집에 가자고 성화였다. 우리 집에 ‘여행’은 무척 생경한 말이었다. 부모님은 나이가 있으니 그렇다 쳐도 자식인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는 고삐 풀린 듯 돌아다니고 싶기도 한데 나 역시 그러지 못했다.


  우연한 기회에 서울에 와 살게 되었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의지만으로는 가질 수 없는 운명적인 변화였다. 여섯 식구 복작거리는 곳에서 살다가 처음으로 낯선 곳에서 혼자 자취를 시작했으니 이것만으로도 매 순간이 도전이었다. 집에 혼자 있으면 어디선가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비가 오면 나도 모르게 담에 널린 빨래가 걱정되었다. 부모님은 통화할 때마다 내가 무사한지 확인했고 쓸데없이 돌아다닐까 전전긍긍했다. 게다가 이곳 서울 사람들은 참 이상했다. 다정하다가도 새침하고, 깐깐하면서도 너그러웠다.


  무엇보다 나는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지독한 길치였다. 익숙한 걸 좋아한다는 건 어쩌면 익숙하지 않은 건 어려워서겠지.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회사에 매일 다른 길로 도착했다.


  “전 지금이 여행 온 것 같거든요. 모든 게 낯선 게.”

  그가 이해한다는 듯이 끄덕였지만 돌아서면서 다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취업을 했으니 여름휴가가 있었다. 동료들은 무더운 나라를 탈출해 일 년 내내 여름인 나라로 떠날 계획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난 이미 친숙한 고향으로부터 이역만리인 이곳을 여행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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