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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산담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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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문희 Oct 01. 2024

1 / N 의 사랑

온전한 사랑을 받기 위한 발버둥

 

  

아이가 하나 남은 바나나 껍질을 벗겨 냉큼 입으로 넣는다. 볼이 부푼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퍼졌다.


  오래전 일이다. 어머니가 친척 결혼식에 다녀오셨다. 우리 사 남매를 마루로 부르더니 검은 봉지에서 무언가를 꺼내셨다. 단내가 훅 풍기는 노랗고 길쭉한 것이 어머니 손에 들려 있었다. 분명 바나나였다. 당시 바나나는 지금처럼 수입되지 않았고 서귀포에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아주 조금 재배되었다.  결혼식 답례품으로 품고 온 바나나를 먹기 위해 군침을 흘리며 어머니 곁으로 모였다.

  

어머니는 티브이에 나오는 사람처럼 부드럽게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는 바나나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로 가운데를 뚝 잘라  두 동강 난 그것을 다시 반으로 나눴다. 언니, 나, 남동생 그리고 여동생이 한 조각씩 입에 넣었다. 이국적이고 폭신한 식감이 한입에 사라져 버렸다.

  

형제가 많은 집에서 자란 우리는 한정된 부모의 사랑을 나눠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온전한 하나의 사랑을 주지 않고 일부의 사랑만 잘라 주시는 어머니에게 늘 목이 말라 있었다. 그러나 제비 새끼들처럼 입을 벌려 바동거리는 우리들이 넷이나 있었으니 모든 걸 나눠줄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다. 때때로 이 조각나고 공평한 사랑은 변덕스럽기까지 했다. 둘째인 나에게는 종종 부당한 양보도 요구했다. 하긴 둘째라는 어정쩡한 존재는 어쩔 수 없는 거라 여겼다. 충분한 사랑을 받고 싶다는 욕구와 별 수 없다는 체념 사이에서 투정 부리고 후회하기를 반복했다. 나에게 온전한 사랑은 사치였다.

  

자식이 많아도 한 아이, 한 아이에게 오롯한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 알게 되었다. 부모의 사랑은 샘물과 같아서 아무리 퍼내도 계속 솟아난다는 것을 부모가 되어 알았다.

  그리하여 나는 그 옛날 어머니에게서 받아야 했던 나머지 사랑을 지금이라도 돌려받고 싶다. 이제 와서 다 늙어버린 어머니, 한량 같은 아버지를 대신해 쉬는 날 없이 일만 하신 어머니, 자신이 알고 있는 한 온 힘으로 우리를 돌보신 어머니, 바나나 한 개를 가져와 모조리 자식 입에 넣어주시는 어머니에게 더 이상 무엇을 바라느냐고 물을지라도.

  나는 그런 어머니가 이렇게 해주실 것을 요구한다.

  

  나를 몰래 불러,

주머니에서 꺼낸 바나나 하나를 조심스럽게 벗겨,

한 입 두 입 손수 먹이고,

나에게 흐뭇한 미소를 보이며.


   ”더 먹어라, 문희야. “


라고 말해주길 간절히 원한다. 그러면 나는 뻔뻔하게도 마지막 한 입까지 남김없이 먹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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