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밥상
영등할망은 제주 신화에 나오는 바람과 바다의 여신이다. 음력 2월 초하루 제주로 들어와 바다에 미역, 전복, 소라 등의 씨앗을 뿌린다. 어머니는 이 시기에 바닷일을 멈추고 영등 신에게 한 해의 복을 빈다. 이 너그러운 여신이 제주로 들어와 먹는 음식이 있다. 바로 ‘보말’이다. 보말은 제주도에서 나는 작은 고둥이다.
7월 첫날, 모처럼 나흘간의 휴가가 찾아왔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이를 아침 일찍 학교에 보내고 나서 나도 바로 공항으로 출발했다. 엄마와 아내를 벗어 놓을 장소로 만만하게 제주도를 선택할 수 있었던 건 그곳에 나의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오늘 둘째가 내려간다는 걸 기억하고 계실까? 탑승 전에 전화했더니 받지 않았다. 그래, 그녀에게 낮은 전화를 받을 수 없는 노동의 시간이지. 배가 고팠다. 아침에 아이에게 끓여 준 된장찌개가 떠올랐다. 몇 시간 후면 바다맛을 듬뿍 담은 어머니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급해졌다. 비행기에서 내려 차를 렌트하고 집으로 달렸다. 차창 밖에는 누렇게 나이 든 종려나무가 바람에 머리를 흔들고 초록 밭 사이로 흑룡만리라 불리는 밭담이 구불구불 늘어졌다. 차에서 내리자 훅 바다 냄새가 밀려왔다. 올레길 돌담을 막 지나니 얼마 전 어미를 잃은 메리가 ‘멍’ 소리도 없이 꼬리를 흔들었다.
현관문을 열고 마주한 건 동그랗게 등을 말고 보말을 까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그토록 그립던 여름날의 엄마다.
어머니는 종일 보말을 잡았겠지. 자식이 오기 전에 서둘러 삶고 손질하고 간장, 참기름에 풋고추를 썰어 넣어 짜잔 하고 보말 밥상을 완성하고 싶었을 게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딸을 보자 마술을 들킨 듯 쑥스럽게 웃었다.
소매를 걷고 앞에 앉았다.
“이걸 혼자 다 하려고? 밤새도 못하겠네.”
요 작은 알맹이를 먹기 위해 바늘로 빙글빙글 돌려 속살을 꺼내고 얇은 딱지 떼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그렇게 손이 많이 가도 멸치볶음처럼 여름만 되면 밥상 위에 올라왔다.
영등할망이 제주를 찾아와 먹는 음식이 이렇게 소박한 보말이라니. 수개월 전 할망이 다 먹어 텅 빈 보말들은 이제 살이 통통하게 올라 7월 첫날 나의 첫 끼가 되었다. 여신이 만들어 준 풍요로운 바다에서 어머니가 잡은 보물이다. 짭조름한 바다가 내 입에 흠뻑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