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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산담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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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문희 Oct 04. 2024

널 응원해

응원 유전

  


  “아니야, 틀렸잖아.”

  아이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입이 댓 발 나온 채 춤을 추는 모습이 가관이다. 영상을 멈추고 내가 직접 시범까지 보였다.

  “이게 뭐야. 아직도 박자를 못 맞추면 어떡해.”

  한번 시작한 잔소리는 정점을 찍어야 멈춘다.

  “솔아, 너 이러다 망... “

  나는 필사적으로 내 입을 막았다.

  ‘안돼!’

  서둘러 방으로 들어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이의 초등학교에서 가을운동회가 열린다. 2년마다 열리는 대운동회는 그동안 코로나와 날씨 때문에 밀렸다가 6년 만에 부활했다. 학부모는 물론 동네 주민들까지 참여하는 큰 행사여서 학교에서는 방학 전부터 준비하기 시작했다. 5, 6학년을 대상으로 치어리더를 모집했고 설마 했는데 아이가 지원했다.


  아이는 초등학교의 마지막 추억을 남기고 싶어 했다. 단순하고 의욕이 앞서는 이 아이를 말릴 이유가 필요했다. 나를 닮아 겅중거리는 몸짓과 미세하게 반 박자 느린 박치란 걸 알기에 나서서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불안했으니까. 다행히 지원자가 많아 오디션으로 치어리더를 선발한다는 공지가 떴다.


  며칠 후, 어찌 된 영문인지 아이는 오디션에 통과했다.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나 역시 6학년 때의 일이다. 도내 배구 대항이 있어 학교에서 치어리더를 모집했다. 관심받길 좋아했지만 끼가 부족한 아이였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제법인 친구가 같이하자고 꼬드겼고 쉽게 넘어갔다. 우리는 시합 전까지 안무를 완전히 익혀야 했다. 순서를 외우는 게 무엇보다 어려웠다. 그래도 하교 후에 친구들과 모여 연습하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드디어 시합 날이 되었다. 전교생이 모두 체육관으로 이동했다. 전년도 우승팀의 함성이 경기장 분위기를 압도했다. 우리도 질세라 응원단장의 주도 아래 전교생 앞에서 신나게 응원을 이끌었다. 경기가 무르익고 승리를 갈망하는 응원 소리와 금빛으로 반짝이는 수술, 악을 쓰듯 노래하고 춤을 추는 우리들이 만든 그 장면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가끔 나의 기억이 여기까지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다. 아이에게 엄마도 초등학교 때 치어리더였단 걸 당당히 밝히고 그건 멋진 추억이었다며 응원해 줄 수 있다면.


  나의 아버지가 학부모 임원이었는지 아니면 딸이 치어리딩을 한다 해서 보러 온 건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친구분들과 스탠드 맨 뒤에 서서 팔짱을 끼고 계셨다. 응원 중간중간 펼쳐지는 플래카드 때문에 아버지의 얼굴이 밝았다 어두웠다 했다.

  그날 우리 학교가 이겼는지 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땀에 흠뻑 젖고 기운이 다 빠졌지만 뿌듯함이 몰려왔다. 그렇게 나의 몫을 다 해낸 것 같은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나보다 먼저 와 있었다. 내심 칭찬을 기대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무엇에든 나서는 것은 용기가 있다며 좋아하셨고 작은 장점도 찾아내실 줄 아는 분이었으니까.

  “오늘 그게 뭐냐. 기왕 남들 앞에서 할 거면 자신 있게 해야지..쯧”

  지지를 받고 싶었던 마음이 곤두박질쳤다.

  “정면을 봐야지. 도대체 어딜 보면서.. 나 참.”

  나도 알고 있는 나의 부끄러운 데를 들켜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우두망찰 해서 멈출 듯 끝나지 않는 충고를 계속 들었다. 경기장에 오셨던 아버지는 응원하는 아이들을 보며 무심코 내뱉은 친구분의 한마디가 마음에 걸렸던 게다. 소심한 그의 자존심은 아주 쉽게 상처가 났고 그 때문에 부끄러워했고 고스란히 상처를 자식에게 옮겼다. 잠자리에 들며 내일도 있을 응원을 걱정했다. 아버지가 오지 말았으면 싶었다.


  다음 날 아침 등교하는 나에게 또다시 신신당부했다.

  “오늘은 제대로 좀 해봐.”

  첫날처럼 흥이 나진 않았지만 열심히 해서 아버지를 안심시키고 싶었다. 그날 저녁에도 아버지는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전날과 비슷한 몇 마디를 더 하셨다.

  그날 아버지가 딸의 미흡한 모습을 보았어도, 친구의 시답잖은 소리를 들었어도 개의치 않고 어린 딸에게 귀엽다는 듯 잘했다고 애썼다고 말해줬으면 어땠을까. 비록 서툴렀지만 치어리딩에 지원했던 용기와 응원하며 느꼈던 보람을 후회하지 않았을 텐데. 아버지의 응원을 받지 못한 나는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아버지처럼 부끄럽다.


  그런 일을 겪고도 지금 나는 당시 아버지와 닮아 있었다. 아이가 그저 좋아 시작한 걸 나는 애가 타도록 안절부절못했다.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하느니 차라리 나에게 혼나며 배우는 게 낫다는 구질구질한 생각이 치고 들어왔다. 아버지의 응원을 받지 못했다고 내 아이에게조차 응원하지 못하는 엄마가 될까 한없이 두려웠다.

  입을 틀어막고 들어온 방 안으로 여전히 응원가와 몸을 바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를 온전히 응원할 수 있을까.’


  운동회는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잠시 물러나 있기로 했다. 거실에서 남편이 안무를 봐주는 동안 방에 들어가 있다가 연습이 다 끝나면 나왔다. 그리고는 말없이 아이를 껴안았다.

  ‘우리 딸, 엄만 널 응원해.’

  땀범벅이 된 아이도 나를 꼭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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