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첫날, 그러니까 휴가가 시작되며 나는 서울 여행을 계획했다. 지하철 타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어디든 정확한 목적지를 알려주는 지하철 노선도를 맹신하다 걸어가도 되는 거리는 두 번이나 갈아타며 다다랐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동료가 쉬운 방법을 알려 주었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광화문 역에 갈 때마다 몸을 고생시켰다. 어쩔 수 없는 거라 생각했다.
경복궁에 가서 한 일은 근정전을 보았거나 경회루를 걸었을 테지만 그날 무엇을 보았고 느꼈는지 기억이 없다. 사람은 걱정거리를 가득 안고 있으면 아무리 좋다는 걸 보여 줘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실감했다. 생소한 풍경으로 가득 찬 이곳이 생각보다 더 불편했고 귀찮았다. 경복궁의 출구는 어디일까. 집으로 돌아갈 지하철 방향은 잘 찾을 수 있을까. 괜히 왔나 피곤했다. 아마 걱정거리 때문에 풍경을 보지 못한 게 아니라 이 불편하고 낯선 풍경을 보지 않으려는 내가 온갖 근심을 끌어모았던 것 같다.
그날로 나의 여행은 끝났고 남은 휴가 동안 집에만 있었다. 남들이 즐겁게 온몸으로 부딪히는 경험을 포기하고 집에 머물기만 하는 나의 머리는 결국 고향을 행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낯익은 곳으로 돌아가라고 부추겼다. 그리운 부모님과 따뜻한 밥상, 언제나 함께 할 친구들이 있는 곳. 그와 동시에 나에게는 익숙한 것을 떠나는 여행, 긴 여행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몇 년에 걸쳐 하루에서 이틀 그리고 사흘로 점차 늘리며 포기와 도전을 반복했다.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한 번 갔던 곳을 또 가도 언제나 새로웠다. 반복되는 새로운 모습이 점차 친근하게 바뀌며 편안해졌다.
세월이 흘러 인샹의 반을 서울에서 보내고 있다. 여전히 고행을 그리워하면서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낯선 거리와 사람들은 익숙해졌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순박한(착각일 수도) 고향의 피가 흐르고 문득문득 개방적이지 못한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다정하면서도 깐깐한 그 서울 사람은 나의 소울 메이트가 되었다.
지금도 짐을 싸며 다음 날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지 않을까 몰래 기대하기도 한다. 여행지는 여전히 나에게 도전인 셈이다. 길치에 무계획적인 데다 익숙한 걸 선호할지라도 작은 낯섦에 감탄하며,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흡족해하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나의 목적은 어려움과 귀찮음을 극복하고 집을 나서는 순간 이루어졌으니까.
어느새 나는 여행이 주는 선물을 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