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물건이 아니라서

'이게' 아니고 제 아들입니다

by 문영

“OO아, 저기 봐, 멍멍이다!”


출근하는 사람들의 숨 가쁜 발걸음도, 유치원 버스와 부모님들의 배웅 행렬도, 청소차들의 수거도 끝나고 아파트 단지가 약속한 듯 잠잠해지는 시간. 오전 11시와 12시 사이는 아파트 단지에서 개들을 산책시키기 가장 완벽한 시간이다. 12시가 지나면 단지 내 어린이집 친구들이 식후 산책을 시작하고, 4시부터는 초등학생 친구들이 하교 후 공터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6시 이후는 볕이 모자란다.


서울에서 겪은 굵직한 산책 시비로 생긴 소셜포비아. 이 나쁜 에너지가 개들에게 전이될까 미안해 시골로 떠났던 것이고, 서울에 살아야하는 지금은 최대한 사람이 없는 시간, 사람이 없는 공터만 찾아 산책을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 한 번도 산책 시비가 없었는데, 혹시 내가 숏컷을 해서 ‘기존쎄’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좀쎄’처럼 보이는 걸까 싶어 기특한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걷던 중. 멀찍이서 우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유모차 탄 어린 손주에게 강아지 구경을 시켜주고 싶어 하는 할머니를 마주치고 말았다. 동체시력이 뛰어난 나의 곁눈은 그 무례한 손가락질을 일찌감치 파악했고, 경계 태세로 온몸의 털은 바짝 섰다.


다행히 우리는 목적지가 달라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이런, 잠시 고민하던 유모차는 불행하게도 방향을 틀어 우릴 뒤쫓아왔다. 오지 마, 제발 오지 마요. 화단 풀냄새 삼매경에 빠져있던 계피는, 낯선 이가 궁둥이 뒤에 바짝 다가와 뭐라 말을 거니 놀라 맹렬히 짖는다. 하지만 계피의 쇳소리가 위협적일 리 있나.


“OO아, 이게 뭐야? 멍멍이지?”


고민의 시간은 딱 0.5초였다.


“‘이게’ 아니고요, 저한테는 자식 같은 애들이라서요. 물건이 아니라서.”

Screen Shot 2023-06-07 at 9.37.31 PM.jpg 배 아파 낳은 제 아들들입니다


갑분 #동물은물건이아니다. ‘이게’ 라고 불리운 게 그렇게 속상해서, 속말을 정리하지 않고 생각의 흐름대로 쏟아냈다. 언성 높이지 않고, 나이스하게, 웃으면서. 물론 썩소였다. 민망함인지, 어이없음인지, 혹은 미안함인지. 뭔지 모르겠는 감정에 휩싸여 할머니의 눈썹은 아래로 쳐졌고, 그 외 모든 얼굴 부위는 정색한 게 틀림없었다. 할머니는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갓난 손주에게 괜시리 말을 걸며 떠난다.


“OO아, 물건이 아니래...“


그 할머니는 아주 우아하고 선한 인상을 지녔다. 드물게 선한 얼굴을 무안함으로 일그러지게 하다니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나 내 새끼들이 내 눈앞에서 ‘이것’이라 불린 걸 정정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가는 것보다 불편하겠는가. ‘괜한 말을 했나?’, ‘오바했나?’, ‘어른한테 버르장머리 없었나?’ 와 같은 속쓰림은 몇 분 후면 휘발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지만, 여든 버릇이 세 살에게 옮겨갈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자라날 손주는 동물을 ‘이것’이 아니라 ‘그들’이나 ‘친구들’이라 부를 줄 아는 어른이 되길 바란다. 할머니가 앞으로 개들을 ‘이것’이라 지칭하지 않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 산책 중에 개들을 마주치면 껄끄러웠던 오늘 일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오늘도 나는 잠깐의 낮잠 중에 시골집에서 개들과 뒹구는 꿈을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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