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중은 없다

엄마도, 대통령도, 그 누구도 보장 못 해주는 ‘나중’

by 문영

엄마도, 대통령도, 그 누구도 보장 못 해주는 ‘나중’.

맛있는 반찬은 아껴뒀다 마지막에 먹는 편이었는데, 최근 들어서 그 습관이 점차 내 곁을 떠나고 있다. 밥을 다 먹은 뒤에는 배가 부르고, 맛있는 반찬도 처음의 그 맛이 사라진다는 것을, 속된 말로 ‘아끼다 똥 된다’는 걸 30년 넘게 겪고 나서야 이해하게 됐으니까.


계피와 마지막일 줄 알았던 그날 이후일 것이다. 즐겨보는 <한블리>나 <그알>에서 간접 경험하며 안타까워하던, 모르는 이들의 사건사고와는 다른 충격적인 경험. 나와 계피 사이에 주어진 시간의 차이와, 그 속도의 대비를 몸소 겪은 날. 개든 인간이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나 유한하고 또 유한하던지.


숙원사업이던 집 짓기가 본격화되자 엄마는 어이없어했다. “돈도 모자라면서 대출까지 받으면서 왜 집을 짓니? 그런 건 나중에 나이 들어 퇴직하고 여유 있을 때 하는 거야.” 당신의 지분도 있는 사업인데다, 자식이 은행에 빚지고 사는 데 대한 안타까움의 잔소리. 당시엔 ‘아 그런가’ 싶었지만, 시간의 유한성을 경험한 자는 이제 이렇게 생각한다.


첫째, 직접 해보니 지금 나이와 지금 체력 아니면 나중엔 땅 보러 다닐 에너지 절대 없다. 운전대나 잡을 수 있을지. 둘째, 슬픈 얘기지만 나중에는 과연 여유가 생길까? 스무살에는 서른살의 여유를 꿈꾸었건만. 셋째, 그 나중은 정말 있기는 한가? 엄마도, 대통령도, 그 누구도 보장 못 해주는 ‘나중’.


‘이렇게 죽을 순 없어 / 버킷리스트 다 해 봐야 해 / 짧은 인생 쥐뿔도 없는 게 / 스쳐 가네 파노라마처럼’


헤드폰을 타고 더 뚜렷하게 들려오는 이찬혁의 노래 가사.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무명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