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용기였을까
짜다. 얼얼하게 짜다. 소금의 스무 배는 짜다. 차다. 깊이 들어갈수록 차다. 처음엔 숨이 가쁠 정도로 차다. 하지만 2분쯤 지나면 추위에 무뎌진다. 깊다. 모래사장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벌써 발밑이 휑하고 아득하다. 수영장에선 사람들과 멀리 떨어지려 안간힘인데, 바다에선 모르는 사람들 곁에라도 머무르고 싶다. 넓다. 수영장에서는 눈치껏 해야 하는 접영, 배영, 평영. 여기서는 마음껏 할 수 있다. 망망대해가 다 내 수영장이다.
잘 뜬다. 발장구치지 않아도 저절로 뜬다. 모든 근육에 힘을 빼라 지시하고 누우면 마치 최고급 매트리스에 누운 것만 같다. 가끔 큰 파도가 일렁이면 공중부양하듯 몸이 붕 뜨는데 꼬리뼈가 간지러워서 웃음이 터진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경험은 둘셋씩 짝지어 다니는 물살이들과 함께 헤엄치는 것. 얇은 수영복 한 겹만 걸치고, 수온 조절 따위 없는 냉정한 바다에 뛰어드니 내 자신도 자연의 일부로 녹아든 느낌이다.
말로만 듣던 맹그로브 고성에 도착. 무작정 방문해도 곧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쾌적한 업무 환경이 마련되어 있어, Day Pass로 몇 시간이고 일만 하다 떠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니터 너머로 보이는 소박한 해변을 빼놓고 이곳을 설명하긴 어렵다. 관광지 해수욕장에 흔히 보이는 지저분한 경고문이나 현수막 하나 없이 자연 모습 그대로인 무명의 작은 해변. 색색의 파라솔, 튜브, 텐트가 적절히 조화로워 해변이 어딘가 빈티지한 느낌까지. 이렇게 창너머로만 바다를 구경하자니 두시간 넘게 달려 동쪽 끝까지 온 게 아까웠다.
‘발은 담가야겠지’가 ‘머리까지 담가보자’는 마음으로 도약하기까지 무슨 용기가 발동했나 아직도 의문이다. 샤워실도 없는데 말이다. 아마도 건물 입구에 모래를 씻어낼 수 있는 수돗가와 야외 분사기, 탈의실이 따로 필요 없는 내 거대한 붕붕이, 툴툴 털어내면 그만인 내 짧은 머리카락 덕분인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극에 달한 물 공포증을 극복하고자 영등포구민체육센터에서 시작한 발차기. 올해로 딱 10년 차에 접어든 수영 생활을 기념하듯 감행한 첫 바다 수영기. 이번 속초 나홀로 여행에서 <절대 안 해 리스트> 중 항목 하나를 삭제하게 됐다. 우연이란 늘 계획도 예상도 없이 찰나의 순간 날 찾아오지만, 우연한 경험 몇몇은 영원한 취미와 취향으로 내 곁에 머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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