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구제 옷 쇼핑
구시가지에 남아있는, 지나온 세월을 은은하게 발하는 반광 적갈색 벽돌 건물. 혹은 색 바랜 상아색이나 민트색 타일로 외장한 건물. 좁은 아치, 넓적한 아치 등으로 맘껏 솜씨를 뽐낸 창문. 나무를 곡선으로 깎은 뒤 반들반들 광택 낸 난간 손잡이. “나 신경 좀 썼어요”라 말하는 코너 타일 마감.
개성보다는 가성비가 우위를 점한 차가운 건물의 시대에 시간의 흐름을 잊은 듯 천진난만하게 재잘대는 파사드를 한, 폭 좁고 오래된 오륙 층짜리 건물. 몇 단계 건너 뛴 비유지만, 빈티지 옷을 입으면 을지로에 잔재하는 그런 옛 건물이 된 것 같다.
옛날 옷의 디자인엔 ‘의도’가 보인다. 이 옷들 또한 대량생산의 산물이겠으나, 세상의 많은 것이 자기다움을 상실하고 자·타의 통제 속에 획일화되는 가운데 그 옷들은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보인다.
패스트 패션이 쌓아 올린 폐의류 쓰레기산 사진을 보았다. 이제 인류는 새 물건을 더 만들어도 되는가? ‘나 하나쯤이야’가 ‘나 하나라도’ 쪽으로 기울던 차, 엑스가 요란한 블루종을 입고 나타났었다. 양팔엔 골드 체인, 등판엔 호랑이 얼굴이 커다랗게 프린트된 검은 블루종. 나만큼이나 무채색 인간인데, 내일모레 마흔 아저씨가 무슨 바람? 계속 보니 힙해보이기도 하고 만듦새도 좋았는데, 어느 빈티지샵에서 내 예상의 1/10 정도 가격에 샀다는 거다. 멋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아저씨네? 나는 그렇게 돌아올 수 없는 빈티지 바다로의 항해를 떠나버렸다.
불현듯 빈티지에 열광하던 과거가 떠올랐다. 첫 내돈내간 해외 여행지인 핀란드 헬싱키의 골동품점 ‘Helsinki Secondhand’ (아직도 있다) 에서 데려온 녹슨 틴케이스는, 여러 번의 이사를 거치며 많은 물건을 버렸음에도 절대 버리지 않는 물건 중 하나다. 사연 있는 물건을 좋아하고, 거기에 내 사연을 덧칠하길 좋아했다. 해외 여행에서 늘 세컨핸드 소품이나 헌책을 그 나라를 추억하는 기념품이라며 사 들고 왔다.
기후 행동의 일환으로 시작한 구제 옷 쇼핑. 하지만 이제 매달 나를 설레게하는 짱재밌는 월례행사. 옛날 옷의 디테일에는 요즘 옷에서 찾아보기 힘든 정성이 있다. 꼭 사지 않더라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처음엔 한 벌에 30,000원을 웃도는 옷들을 구매했다면, 지금은 다양한 사이트의 대폭 세일 기간을 기다렸다가 30,000원 안팎으로 4~5벌을 구매, 아니 득템하기도. ‘이 옷이 내 옷이 될 상인가’ 판단하는 속도와 정확성은 갈수록 향상되고 있다. 모아 놓고 보면 나의 취향은 결국 멀리 가지 못하고 블랙과 그 언저리에 머문다. 하지만 까마귀들은 안다. 검정과 껌정과 까만색과 검은색과 블랙은 다르다는 걸. 가끔 낮은 가격과 빈티지라는 핑계로 과감한 패턴과 유색에 슬쩍 도전하기도 한다. 멀리 가봤자 카키나 데님이지만.
남이 입던 옷에 귀신이 붙어있다는 괴담도 있지만, 귀신이 좋아할 만한 빨갛고 노란 원피스나 분홍 구두 같은 건 구매할 일이 없다. 우리마저 이 버려진 옷들처럼 언젠가 생명을 다하기는 마찬가지, 버림받아 꺼져가는 생명을 누가 다시 주워 살려준다면 나라도 그 옷에 붙어 있고 싶겠다.
‘5OO벌 업데이트!’
‘1,5OO벌 업데이트!’
빈티지가 지금 우리 시대에 주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 단골 구제 쇼핑몰 여러 곳에서 매주 날아오는 이 문자들. 이 문자들은 인류가 처한 오랜 딜레마를 상기시킨다. 매일 이렇게 많은 옷이 버려지는데, 한편에선 다시 버려질 1OO배 1,OOO배의 옷을 공장에서 찍어내고 있는, 우리가 뻔히 다 아는 모순. 그 모순을 극복해보려는 지구인으로서의 노력이기도 하지만, 빠르고 값비싼 트렌드보단 오래된 의도를 걸치고 싶은 욕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