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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Jul 07. 2024

건축, 쓰레기, 비거니즘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 보면 아름답지 않은 집 이야기

더 이상 이사 다니기 싫어 나와 개들의 삶에 최적화된 마지막 집을 짓겠다는 생각을 담아 ‘끝집일기’라는 이름으로 집짓기 이야기를 글로 적어두고 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지은 별명인데 이젠 진심으로 끝집이고 싶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



첫째, 너무 많은 쓰레기를 만들고 있다.


콘크리트 건축이 탄소를 발생시킨다는 점 외에도 정말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발생한다. 내게 남는 것은 아름다운 집뿐, 이 집을 지으며 발생한 건축 폐기물은 내 곁을 감쪽같이 떠난다. 집 짓기의 어두운 이면. 쌓여가는 쓰레기를 목격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집게를 들고 쓰줍을 한 지도 3개월이 되어 간다. 공사에 방해되지 않게 일과가 끝난 뒤 현장을 두세 바퀴 돌며 분리수거 가능한 쓰레기를 줍는 식이다.


그러면 현장에 계신 분들은 ‘어차피 나중에 한꺼번에 버리니 안 그래도 된다’고 하셨다. 그럼 분리수거는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현장을 정리하고 난 뒤 건축 폐기물이 모인 마대 자루를 보니 답이 나온다. 내가 미처 줍지 못한 재활용 쓰레기까지 건축 폐기물과 한 데 섞여 있다. 분리수거가 될 리 없다. 멀쩡한 재활용 자원도 재활용 기회를 얻지 못하고 폐기물과 한 데 섞여 진짜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완공 전까지 부지런히 집게를 들어야만 한다.


집 짓기 현장에서 줍는 쓰레기들. 3일 정도면 봉투 하나가 꽉 찬다.



둘째, 집 짓기로 인해 간접적 육식을 하고 있다.


집 짓기는 단기간에 고강도의 노동이 필요한 일이다. 집을 제대로 짓기 위해서는 전문 기술자들의 노동력을 구입해야 하는데 대한민국 인구 대부분이 그렇듯 대부분의 기술자도 육식으로 노동에 필요한 열량을 만들어 낸다. 실제로 예산 중 적지 않은 금액이 육식에 쓰였다.


가끔 내 집 때문에 살생된 동물의 수와 종(species)을 머릿속에 나열하곤 한다. 건축 폐기물을 떠올릴 때와는 비교되지 않는 부채감.


혹자는 ‘확대 해석’이라고 할 수도 있고, ‘어차피 소비될 고기’라며 죄책감을 일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나의 채식이 혼자만의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생기는 가치 갈등이다.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기본, 비인간 동물을 착취하는 ‘산업’에 대한 저항과 불매운동이기 때문이다. 집 > 건축 노동 > 노동력 > 열량 > 식사(메뉴). 서로의 거리가 멀어 그 긴밀한 관계를 체감하지 못할 뿐, 집 - 식사의 관계는 필연의 사슬로 이어져 있다.


건축 기술자의 식사를 채식으로 전환하는 것은 가능할까? 시공 계약 단계에서 “이런 이유로 현장의 식사는 채식 식당과 채식 도시락으로 준비했습니다”라는 말을 했다면, 우리 집은 착공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기술자들의 식사 메뉴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위는 나처럼 물렁한 비건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운 일이다.


고백하자면 나의 피 같은 건축 예산이 육식에 사용되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 나는 건축과 비거니즘을 심도있게 연결짓지 못했다. 현장에 구비해두는 간식과 음료 정도만 최대한 유제품이 없는 것들로 준비했다. 뒤늦게 그 긴밀한 상관관계를 알아차렸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서울에서 건축가 샘들과 미팅하고 난 뒤에는 비건 식당에서 회식을 하지만, 우리 집 공사 현장 근처에는 그 흔한 두부집이 없다.


그러나 미리 알았다고 해도, 현장 근처에 채식 식당이 있어도 풀기 어려운 문제다. 건축 기술자들의 식사는 속도와 효율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육식은 단시간 안에 고단백 고열량을 보충하는 방법으로 흔히들 믿고 있다. 전문 기술자들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면서, 비용과 시간의 효율까지 바라는 건축주가 기술자들의 식사 메뉴 선택을 문제 삼는다면 모순이 생긴다.



멀리서 보아도 아름답고, 가까이 보아도 아름답지만, 모든 면면이 아름답지는 않다.


친환경 건축에 대한 연구와 시도는 활발하지만, 집 짓기와 비거니즘이 양립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구글에 ‘vegan architecture를 검색하면 건축 ‘재료’가 비건인지에 대한 이야기만 보인다. 비거니즘과 건축 ‘과정’ 사이의 관계까지 의식한 비건 건축주가 관련자 모두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진정한 ‘비건 건축(vegan architecture)’도 가능해 보인다. 형태, 내용, 결과, 과정 모두가 흥미로운 건축적 시도일 것이다. 이론적으로 당장 방법이 없지는 않다. 채식하는 건축주가 채식하는 설계자와 채식하는 기술자와 협업하는 것이다. ‘친환경 채식 건축 공동체’가 생긴다면? 상상만으로 재미있다.


집을 지으며 죄인이 된 나는 앞으로 할 일이 많다. 이 집이 오랜 시간 건재하여 다음 세대에도 오래 쓰일 수 있도록 집 관리를 성실히 해야 한다. 생활 쓰레기도 대폭 줄여야 한다. 집이 나의 친환경 실천과 비거니즘 운동의 좋은 배경이 되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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