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기 위해 살기를

채식 개밥 레시피

by 문영


C2A73C6C-A975-448E-8586-C3B360DE361B.JPG 정확히는 폴로베지테리안(?) 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근잎을 곁들인 오늘의 개밥. 끓는 물에 코코넛 오일 풀어 데친 당근과 브로콜리. 촉촉하게 삶은 블랙 렌틸콩. 입가심을 위한 생 파프리카. 햄프씨드 토핑. 육류는 혼선을 주기 위해 거들 뿐.


채식한 지가 햇수로 7년이니 개들 밥에 변화를 준 것도 그정도 되었다. 처음엔 죽은 동물의 살을 으깨 만든, 누구 손을 거쳤는지 모르는, 정확하게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는, 유통 과정에서 산패된 가공 사료 대신 ‘좋은 에너지’를 개들 뱃속에 집어 넣자는 의도로 시작한 식단.


개들 식단에 큰 위기가 찾아온 적이 있다. ‘역시 단백질이 부족하지?’ 싶겠지만 영양 면에서 부족함은 없었다. 해마다 건강검진에서 단백질이 과하다는 소린 들었어도 부족하단 소리는 못 들었다. 습식이다 보니 치석이 많이 끼는 것이 문제였다. 수의사 선생님은 양치를 가끔 시킬 거면 다시 건사료를 먹이는 게 낫다고 했다. 계피는 올해로 18세가 되었는데 스케일링 한다고 매년 마취시킬 수는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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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새로운 루틴이 생겼다. 개 양치 시키기. 루틴은 이제 강박이 되었다. 양치를 시켜야 하니 외박도 찜찜해서 못 하겠고, 여행은 말할 것도 없다. ‘개밥에 그렇게 돈과 시간을 쏟냐’던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내가 평소 먹는 채소를 나눠 먹는 것이라 경제적인데다, 사흘 정도에 한 번씩 끓여 놓기만 하면 되니 썩 번거롭지도 않고, 이 또한 요리라 재밌다. 매일 양치시키는 게 힘들지. 아, 개 양치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힘듦이야.


새로운 재료로 식단에 변주도 주는 요즘. ‘집사가 오늘은 뭘 주려나’ 하는 표정으로 밥 차리는 날 졸졸 따라다니는 개들을 보면 이제 이런 생각을 한다. '계피와 치토가 더 늙어서도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해 하루를 더, 한 주를 더, 일 년을 더 살았으면 좋겠다.' 마치 내가 내일 아침으로 뭐 먹지 고민하며 흐뭇한 잠에 드는 것처럼. 먹기 위해 산다는 건 꽤 괜찮은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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